엄마의 벗은 몸을 보여주는 게 싫었다

납관을 소재로 한 영화 <굿바이> 때문에 떠오른 기억들

등록 2008.11.07 09:59수정 2008.11.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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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가을이었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는 근 십 리 길이라서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그날은 친구들과 걸어오고 있었다.


포플러 나무가 양 옆으로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찻길이 들판 한가운데로 나 있었다. 들판이 끝나면 산을 끼고 강이 흘러갔다. 찻길은 강을 따라 또 계속 나아갔다. 그 강은 운문산 깊은 자락에서 시작되어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지도상에는 '동창천'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 있었지만 지나는 곳곳마다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당소, 기발소, 삼밭내를 비롯해서, 포구소, 뒷소, 무심디미를 거쳐 송림소, 기차방구, 말방우골 등 물이 흘러가는 모양새나 땅 모양새를 본따서 부르는 이름이 다 따로 있었다.

구경거리가 생겨서 뛰어 갔더니

'무심디미' 쯤에 오면 강은 소리없이 흘렀다. 강물은 어둡고 무거운 얼굴을 한 채 조용히 흘러갔다. 사람들은 무심디미에 귀신이 있다고 그랬다. 그래서 어린 우리들은 걸어서 집에 올 때면 강을 바라보지 않고 산 쪽으로 바짝 붙어서 오곤 했다.

무심디미에 막 접어들었을 때 앞서서 걸어가던 친구가 우리 쪽을 돌아보며 그랬다.


"저 앞에 사람이 죽었다 칸다. 물에 빠져 죽었다 칸다."

사람이 죽었다니, 이런 구경은 다시 없을 거란 생각에 발이 땅에 안 닿도록 정신없이 뛰어갔다.


무심디미 그랑(강) 가에는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뭔가를 보고 있었다. 사람들 틈새를 헤치면서 흘낏 보니 가마니떼기를 덮어놓은 뭔가가 보였다. 가마니떼기 끝으로 발이 보였다. 그 발은 맨발이었다. 검푸른 빛을 띠는 맨발이었다.

내가 본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날부터 어둠살만 끼면 문 밖 출입을 못했다. 저녁밥만 먹고 나면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졸졸 따라다녔다. 너무 너무 무서웠다. 어둠이 무서웠고 자꾸 그 발이 생각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시집을 간 그 해 겨울에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엄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는 이불을 덮어 쓴 채로 병풍 뒤에 누워 계셨다. 엄마를 찾으면서 목 놓아 울었지만 밤이 되면 무서웠다. 엄마가 누워있는 방에 혼자 있게 될 양이면 누가 뒤에서 목덜미를 잡아채기라도 하는 듯이 부리나케 방 밖으로 나오기 바빴다.

동네 어른들이 염을 하러 오셨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우리 형제는 둘러섰다. 이불을 걷었다. 엄마는 평소 입던 보라색 몸뻬 바지에 노란색 윗옷을 입은 채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자세로 엄마는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엄마의 벗은 몸을 보이는 게 부끄러웠다

a 영화 '굿바이'의 한 장면

영화 '굿바이'의 한 장면 ⓒ 케이디미디어


엄마가 새 옷을 갈아입었다. 살아서는 자식들 입히고 가르치느라 좋은 옷 한 벌 사입지 못하셨던 엄마가 돌아가셔서야 삼베옷 한 벌을 얻어 입었다.

여러해 앓으셔서 그랬는지 엄마 몸은 바짝 말라 있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했다. 엄마의 젖이 보였다. 엄마의 젖은 납작했다. 건포도 같이 까만 젖꼭지가 납작한 젖가슴에 붙어 있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엄마의 나신이 가감 없이 사람들 눈앞에 드러나는 게 부끄러웠다. 엄마의 앙상한 젖가슴이 부끄러웠고 까맣게 달려있던 젖꼭지도 부끄러웠다.

집안 어른들이 염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엄마 몸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다. 살아생전엔 남들 앞에 맨발도 잘 안 보이시던 엄마였는데 죽어 저렇게 맨 몸을 보인다는 게 나는 영 부끄러웠다.

염습과 납관이 주요 소재로 쓰였던 일본 영화 <굿바이>를 보자니 문득 그 때 일이 떠올랐다. 엄마의 벗은 몸이 떠올랐고 엄마 몸을 만졌을 때 딱딱하고 차갑던 감촉도 떠올랐다. 

염을 주도하던 아재가 우리 자매더러 엄마의 윗옷을 입혀보라고 그랬다. 언니는 엄마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정성스레 옷을 갈아입혔지만 나는 엄마 몸에 영 손을 못 댔다. 엄마 몸은 차갑고 딱딱했다. 엄마의 몸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온 몸으로 차가운 냉기가 휙 하고 스쳐갔다. 딱딱하고 또 약간 습한 것 같기도 한 엄마의 몸. 나는 마치 그 차가운 냉기가 내 몸에 옮겨오기라도 하는 양 두려운 마음으로 손가락 끝으로만 엄마 몸을 만졌다.

산 사람은 안 무서운데 죽은 사람은 무섭다. 그리고 피하고 싶다. 영화 <굿바이>의 전문 염습사들은 가까이 가기에 두려운 죽은 사람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만들어 준다. 그들은 죽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춰서 지극한 정성을 기울인다. 그들은 죽은 사람에게 존귀함을 돌려준다.

염습이 끝나면 유가족들은 죽은 사람을 다시 받아들인다. 갈등과 다툼을 끝내고 평화와 화해를 만난다. 그들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아름답게 이별한다.

영원한 이별, 하지만 사랑은 남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못 볼 곳으로 보내 본 사람이라면 그 아픔을 알 것이다. 애간장이 다 녹도록 운다는 말도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아무리 준비된 이별이라 해도 아프다. 남은 사람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다.

우리도 그랬다. 우리는 애간장이 다 녹도록 울었다. 하도 울어서 머리가 터질듯이 아팠다. 머리 아픈 거는 괜찮았다. 마음이 문제였다. 우리에겐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따뜻하게 기댈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 때 우리를 위로해준 분들이 계셨다. 엄마가 다녔던 절의 스님이 오셔서 엄마를 위해 목탁을 치며 경을 외워 주셨다. 그 분들이 오시자 우리는 마치 길 잃은 어린애가 엄마를 만난 듯했다. 엄마를 잃고 갈 바 없었던 우리 형제간들은 그 때 큰 위로를 받았다. 절에 다니지 않았던 우리였지만 그 순간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느꼈다. 엄마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굿바이>에서 남은 자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아빠, 수고 많으셨어요. 잘 가세요."
"여보, 참 고마웠어요."
"수고 많았네. 먼저 가 있게나 나도 따라갈 테니."

나는 그 순간 생각해봤다. 홀로 계시는 우리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도 그리 말하리라 생각했다.

"아버지, 그 동안 많이 외로우셨지요? 엄마 계신 곳으로 가셔서 외롭지 않게 잘 지내세요.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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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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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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