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 송파구 삼전도에는 인조가 청태종에게 항복의 예를 행하는 모습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엎드려 있는 사람이 인조 임금이고 바로 뒤에 서있는 사람이 소현세자다.
이정근
인조에게 삼전도는 치욕의 땅이다. 거론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지명이다. 꿈에서도 가위 눌리는 악몽의 장소다. 조선 건국 250년. 오랑캐에게 항복한 선대왕이 있었던가? 자신이 유일하게 항복한 군주라 생각하면 그 수모는 뼈 마디마디에 파고들었다. 그러한 땅을 세자가 다녀왔다는 것은 자신을 능멸하는 것만 같았다.
"황공하옵니다."소현이 목소리를 낮췄다. 소현을 노려보던 인조가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호국에서 가져온 물건이 많다고 말들이 많다.""전하! 그것은 오해이십니다.""무엇 무엇이냐?""북경에서 구왕이 준 귀국선물과 서양인 천문대장의 선물, 그리고 심양에서 질가왕의 선물이 전부입니다.""일국의 세자가 신하들의 입에 오르내려서야 되겠는가?""황공하옵니다.""세자가 받은 선물은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호조로 돌려보내도록 하라.""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동궁으로 돌아온 소현은 채단(彩段) 4백 필과 황금 19냥을 호조로 돌려보냈다. 청나라에서 받은 선물을 몽땅 내놓은 것이다.
젊은 사람이 저녁 잘 먹고 갑자기 병이 났다. 왠 일?저녁 식사를 마친 소현이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달렸다. 고열을 동반한 예사롭지 않은 증상이었다. 세자가 급환에 시달린다는 보고를 받은 인조는 어의 박군(朴頵)으로 하여금 동궁에 들어가 진맥하도록 했다. 진맥을 마친 박군이 동료 어의들과 함께 양화당으로 향했다.
"세자의 병이 무엇이더냐?""학질입니다."어의 박군이 자신 있게 말했다. 학질이라면 오늘날의 말라리아와 임상증세가 흡사하다. 3일마다 견디기 어려운 고열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삼일거리와 4일마다 찾아오는 사일거리가 있는 일종의 열병이다. 열이 심하면 발작을 일으키고 정신이 혼미해질 수 있으나 뇌형 말라리아를 제외하고는 치사율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병원균을 옮기는 매개체는 학질모기다. 때문에 계절성 질환이다. 모기를 숙주로 한 학질원충이 자라는데 필요한 25도 이상의 기후가 2주 이상 지속되어야 전파될 수 있다. 동의보감에도 '여름철 더위에 상하면 가을에 학질이 생긴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개원인자를 알지 못하던 시대에도 계절병으로 분류했다. 소현의 발병 시기는 4월 하순이다. 사진(四診)과 안진(按診)이 진찰의 전부였던 당시의 상황으로 오진일 수도 있다.
"무슨 약을 쓰면 되겠는가?""학질에는 열이 많은 풍학(風瘧), 오한이 심한 한학(寒瘧), 비를 맞거나 습사가 침벌하여 발작하는 습학(濕瘧), 고질병이 된 노학(老瘧), 열도 오한도 미지근한 해학(解瘧), 산골 시냇가에서 생긴 장학(瘴瘧) 등이 있는데 쌍해음자, 지룡음, 강활창출탕, 장달환, 관음원을 쓰면 효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