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끝, 결행의 순간만 남았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118] 조여 오는 죽음의 덫

등록 2008.11.09 12:27수정 2008.11.0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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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암문. 평소에는 돌로 막아두었다가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산성의 비상구다.
남한산성 암문.평소에는 돌로 막아두었다가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산성의 비상구다.이정근

소현세자가 대궐을 빠져나와 남한산성으로 향했다는 소식은 조 소용이 동궁전에 심어둔 첩자를 통하여 즉각 소용 조씨에게 알려졌다.

"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호랑이 굴속으로 들어갔군. 아냐, 굴속이 아니라 입속이야, 아예 날 잡아 잡수셔군, 거기가 어디라고 들어가, 산성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주상을 몰라서 그러나? 알면서 그랬다면 순진해, 청국의 주구노릇이나 하던 이런 철부지가 돌아와 왕이 되겠다니 어림없는 소리야."


조 소용의 얼굴에 조소가 흘렀다.

"지난번 옥사에 심기원 일당이 일망타진되었다고 김자점이 보고했지만 아직도 그 잔존 세력이 남아 있는지 몰라. 산성은 음험하잖아, 녀석이 세를 얻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해. 암 그렇구 말고."

지난 해 6월이었다. '영남에서 두 패의 무리가 올라와 삼전도를 건널 것이다. 미리 배를 마련해 두었다가 일시에 건너 주도록 하라. 이는 수어사의 분부이고 총융사도 아는 일이다' 라는 괴문서가 산성에서 발견되었다.

인조에게 삼전도는 치욕의 땅이었고 산성은 반역의 땅이었다

반란을 암시하는 이 문서를 발견한 광주부윤 홍진문은 조정에 보고했으나 즉시 치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히려 되치기 당하여 추국당하고 수어사 이시백이 물러나는 소동을 겪었다. 이 사건으로 인조는 남한산성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일어났던 심기원의 역모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기원과 모의할 때 '거사가 성공하면 우선 중전에게 수렴청정 하도록 청하고 사신 한 사람을 심양에 급히 보내 청나라에 간청하여 세자를 귀국하게 한다면 명분이 서고 논리도 합당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심기원 옥사에 연루된 권억의 공초를 받아든 인조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던 것을 조 소용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심기원은 남한산성 수어사였고 권억은 광주부윤이었다. 회은군 이덕인을 옹립하려던 심기원과 그 일당이 복주되었는데도 괴문서가 발견되니 인조는 산성을 반역의 땅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 퇴출된 고물을 깨끗이 닦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이럴 때 쓰려고 했지 않았는가."

조 소용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병자호란의 책임을 지고 퇴출되었던 김류가 호위대장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있다. 당시 서로군 도원수로 청나라의 침공을 수수방관했던 김자점은 처형 위기를 모면하고 중도에 유배되었다. 우직한 충성심을 높이 평가한 여인에 의해 강화유수에 천거된 김자점은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불과 4년 만에 호위대장, 병조판서, 우의정으로 고속 승진했다.

"그를 그 자리에 앉혀 놓은 것은 장식품이 아니야."

조 소용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성혼(成渾)의 문생으로 조정에 출사한 김자점은 병조에서 잔뼈가 굵은 무골 통 문인이었다. 그가 어영청 수장을 거쳐 내의원 도제조를 꿰차고 앉아 있다. 환상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자리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다. 소용 조씨가 공을 들인 결과다.

통명전.  창경궁에 있는 중전의 침전이다.
통명전. 창경궁에 있는 중전의 침전이다. 이정근

통명전은 구중궁궐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중전의 침전이다. 연회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조용한 곳이다. 적막하리만큼 한적한 이곳에 소용 조씨가 들어앉은 이후부터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승차했다고 사례하러 오는 신료들. 지방 관아로 영전해 떠나는 관리들의 인사행렬. 통명전은 드나드는 내방객으로 섬돌이 닳을 지경이었다.

이형익이 조 소용의 부름을 받고 통명전에 들어섰을 때 소주방 김 상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
"네, 마마!"
"실수하면 죽음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마마!"

수라간.  수라간 현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수라간. 수라간 현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이정근
궁궐의 음식을 담당하는 기관은 수라간이다. 세자가 가례를 올리고 동궁전으로 독립하면 수라간 역시 대전 수라간과 동궁 수라간으로 분립한다. 병자호란 전까지는 각각 별도로 운영했다.

세자 볼모생활 8년. 동궁 수라간은 심양으로 이동하였고 귀국과 함께 창경궁에 자리를 잡았지만 모든 것이 부족했다.

임금의 음식을 전담하는 대전 수라간은 왕의 아침저녁 수라를 책임지는 내(內)소주방과 궐내의 크고 작은 잔치를 전담하는 외(外)소주방으로 나뉜다.

조리기구가 부족하고 밑반찬이 없는 동궁전 수라간 지원 임무를 외소주방 김 상궁이 맡았다. 그 김 상궁이 조 소용의 부름을 받고 후궁전을 다녀간 것이다. 이형익이 소용 조씨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네가 특명을 받은 날이 언제였느냐?"
"정월 초나흘이었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지러지고 뒤집어졌다

이형익은 소용 조씨의 친정집을 드나들던 침쟁이였다. 그는 침을 손으로 놓은 것이 아니라 혀(舌)와 손끝으로 놓은 술사에 가까운 침의였다. 환자들은 그의 세치 혀에 녹았고 손끝에 무너졌다. 특히 심약한 사람과 여자들이 현혹되었다. 혈을 찾는 그의 손이 피부에 머무르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지러지고 뒤집어졌다. 그를 왕도 한성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 소용 조씨다.

궁에 들어온 이형익은 번침으로 인조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왕의 주치의를 자처하며 안하무인으로 군림하던 그는 내의원 어의와 신료들의 질시를 받아 궁에서 밀려났다. 대흥 현감으로 나간 그는 소용 조씨 어미와 추문을 일으켜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그러한 그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인 것이 소용 조씨다.

청나라가 세자의 영구 귀국을 조선에 통보한 것이 지난해 12월 4일. 이형익이 인조의 특명을 받아 궁에 들어온 것이 1월 4일이었다. 세자의 귀국에 맞춰 이형익을 불러들인 것이다.

"내 명이 있을 때까지 성 밖에 나가지 말라."

이형익에게 금족령이 떨어졌다. 4대문 밖에 나가지 말고 대기하라는 것이다. 이형익은 금호문밖 가회방에 소용 조씨가 마련해준 집에 살고 있었다.

"네, 마마!"

머리를 조아리는 이형익에게 소용 조씨가 엽전꾸러미를 던져 주었다. 은화였다. 꾸러미를 소매 춤에 넣은 이형익이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덧붙이는 글 | 지금까지 독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왔던 <소현세자>가 도서출판 '책으로 보는 세상'(책보세)에서 책으로 나옵니다.


덧붙이는 글 지금까지 독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왔던 <소현세자>가 도서출판 '책으로 보는 세상'(책보세)에서 책으로 나옵니다.
#수라간 #소주방 #창경궁 #통명전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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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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