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안부가 이미 지난 10월에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는데 거부했다. 이를 두고 정관 위반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10월에 이사회 소집하면서 심의 안건을 '이사장 해임건'이라고만 했다. 해임 사유도 없었다. 그래서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사실 (행안부의) 이사회 소집요구를 보면서 한편으론 놀랐고, 분노와 배신감 때문에 힘들었다."
- 행안부는 이번 달 18일 또 한 차례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계속 거부하는게 맞는가.
"이 문제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임기제 원칙을 깨려는 부당한 움직임을 단호하게 거부했고, 개인적 불이익도 감수했다. 보복을 당할 줄 알면서도 해왔고, 실제 보복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버티는 게 당연하다. 불법이 벌어져도 원만한 관계, 처세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그냥 순응해 오다보니 사회의 변혁, 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 행안부 관계자들이 직접 찾아와 사퇴를 종용한 적은 없나.
"지난 달 27일 행안부 고위관계자들이 찾아와서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묻더라. 그래서 해임 사유를 말해보라고 하니까 '그냥 기관의 뜻인데 나가 달라'고만 하더라. 그 자리에서 행안부 관계자들에게 '내게 무릎 꿇고 살 거냐, 서서 죽을 거냐고 물으면, 서서 죽겠다'고 했다. 노예같이 살고 싶지 않았다. '너희는 목을 쳐라, 나는 이렇게 꼿꼿한 선비같이 살겠다'는 얘기도 했다. 요구사항이 뭐냐고도 묻더라. 그래서 요구사항이 없다, 그냥 내 임기(2009년 7월 24일)까지 단 하루도 더 하지 않고, 덜 하지 않고 정확히 마치고 싶다는 얘길 했다."
- 사퇴 압박은 계속 들어올 텐데, 본인의 거취를 아직 결정 안 했나.
"설령 내 목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어떻게 할지 못 정했다. 심사숙고 해보려고 한다. 주변에서는 치사하니까 다 던져버리고 나오라고도 했다. 그럴려면 이미 지난 4월에 사표를 냈다. 나는 새 정부가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임기제 기관장의 임기는 반드시 보장돼야 된다. 원칙의 문제다."
- 사퇴를 종용하는 행안부 관계자들이 사실상 공직생활 후배들이다. 정권 바뀌었다고 태도를 바꾼 후배들 모습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내가 초임 사무관 때 전남도청 사회과 노정계장을 했다. 그 때 도지사가 파업이 난 사업장의 노조위원장을 해임 요구하라고 지시했지만, 내가 거부했다. 파업의 책임은 단체협약을 어긴 사장에게 있는데, 사장을 구속시키지 않으면서 노조위원장만 해임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 뒤 그 도지사가 나를 많이 아껴줬다. 행자부 기획관리실장 때도 윗사람에게 듣기 싫은 말씀 많이 드렸다. 윗사람이 들어주건 말건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위공직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 행안부 고위공무원들이 청와대나 장관 눈치만 살피면서 부당한 일을 하고 있다는 지적인가.
"그렇다. 직언을 해야 한다. (이사장 해임요구를) 시킨 사람도 문제지만, (행안부 공무원들이) 왜 이렇게 부당하다는 말을 못하는 것인가. 왜 이렇게 기백이 없는 것인가, 안타깝기 짝이 없다. (행안부 공무원들은) 거대한 흐름에 내가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시킨 대로 하는 게 아무런 잘못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정의의 편이다. 그 사람들이 불의의 편에 서서 양심의 가책도 못 느낀다면 큰 문제가 있다."
- 과거 인수위 시절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자조가 생각난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세상에 저렇게 부끄러운 소리를 대놓고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이 나왔을 때도 공직사회에 반성이라는 게 없더라. 깜짝 놀라고 실망했다. 나라의 명운을 쥐고 있는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이 그 따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공무원노조도, 고위간부도, 왜 영혼이 없다는 것이냐. 그런데 이번에 내 해임 요구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아,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개탄했다."
"기관장이 정치권과 술·밥 먹어가며 처세 ... 공공기관 망한다"
- 문광부 등 다른 부처 기관장들도 다 나갔다. 불안한 마음은 없나.
"사실 기관장들이 감사를 하겠다는 말에 대부분 그만 둔다. 그래도 버티는 사람은 감사를 하면 옷을 벗는다. 나는 부끄럽지 않은 선비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 내가 고 서재필 박사의 외증손이다. 지난 1994년 환국하는 서 박사의 유해와 영정을 모시고 오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죽은 다음에 나쁜 놈, 더러운 놈 소리 듣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 어떤 형태로든 압력이 심해질 텐데.
"공권력의 힘이 어떻게 보복할지는 모른다. 다만 공권력이 치사하게 사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비판받을 일이 있으면 비판받겠다. 두려움이 왜 없겠나. 하지만 설령 내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의 처세관이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불행이 더 있으면 안 된다. 또 더 이상 공권력이 나쁘게 사용돼서도 안 된다. 공권력이 더러운 공작을 해서도 안 되고, 거기에 고위 공직자들이 동조해서도 안 된다."
- 국제화재단이 생긴 94년 이래 최초로 임기를 못 채우는 이사장이 될 것 같다. 정치적 외압으로 산하기관이 흔들리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정치적 목적으로 임기제를 흔들고 나면, 이 정부에서 다른 사람을 발탁을 하고 난 다음 그 사람도 역시 임기에 문제가 생긴다. 그건 거대한 악순환이 된다. 기관장이 정치에 휘둘리면, 사실은 임기하고 전혀 상관없이 밖으로만 돌고, 정치에 손을 대고, 정치권 인사들하고 술, 밥 먹어가면서 처세하는 짓을 하게 돼 있다. 그러면 공공기관 망하는 거다. 정치적 목적으로 함부로 인사를 흔들어대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 오랫동안 논란이 됐는데, 왜 부당한 해임요구안에 대해 말을 하지 않고 있었나.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누구에게 부탁한 적 없었다. 행안부를 비판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친정 아닌가. 하지만 지금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한 해임요구를 중단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오랜 공직생활 하면서 여러 번 뒤통수를 맞았는데, 이번엔 뒤통수를 세게 맞았지. 하하."
실은 이번 국정감사 때 문제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 했다. 친정을 공격한다는 것 때문에. 또 내가 스스로 구명운동 한다고 오해 받을까봐 안 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대학교 동기동창이다. 사람이니까 부탁하고 도와달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행안부 관계자에게 힘을 쓰려면 쓸 수 있다고 했다. 차마 못했다. 자존심 때문에. 그런데 불의가 너무 횡행하니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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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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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표적' 감사 티를 내나?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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