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말 한마디, 열 주사 안부럽구나

병에 갇혀 사는 요즘 젊은이들에 따끔한 질책

등록 2008.11.23 15:38수정 2008.11.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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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내시경 대신 받아온 약 진료비 2500원에 약값 3450원. 내시경의 몇 배를 절약했다.

내시경 대신 받아온 약 진료비 2500원에 약값 3450원. 내시경의 몇 배를 절약했다. ⓒ 春塘

▲ 내시경 대신 받아온 약 진료비 2500원에 약값 3450원. 내시경의 몇 배를 절약했다. ⓒ 春塘

금요일부터 소화가 안 되고 몸이 좋지 않아 토요일(22일) 아침 동네 병원을 찾았다. 원래 좀 위가 약한 편이라 의사선생님이 인상만 좀 써도 바로 내시경 예약할 참이었다.

 

찾아간 곳은 동네 'ㅈ 내과' 선생님도 친절하고 가벼운 감기에도 20분 진료가 기본인 곳이다. 말 그대로 '동네 주치의'여서 아플 때마다 찾는다. 우리 어머니 또한 이 병원 단골이다. 어머니는 치료 기구를 선생님 책상 쪽이 아닌 환자 옆에 두고, 의사선생님이 환자 쪽으로 걸어나와서 치료하는 점에 반했다고 한다.

 

몸을 질질 끌다시피해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엔 나 말고 다른 환자는 없는 듯 했다. 소파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 분, 십 분이 지나도 내 이름을 안 불렀다.

 

'선생님… 주무시나. 손님도 없구만 왜 안 불러.'

 

십 분 조금 넘게 지났을까. 진료실에서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나왔다. 하도 조용해서 손님이 없는 줄 알았는데 진료중이었던 거다. 내 차례가 되서 들어가니 선생님이 어디가 불편해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여기도 아프고요 저기도 아프고요 원래 전 위가 약한데 어쩌구 저쩌구' 걱정 한움큼 담긴 눈빛으로 증상을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 왈, 위가 안 좋은 거는 오래 가져가야 할 거고 그렇다 해도 위험하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아플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요즘 젊은이들의 병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람이 살다보면 아플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서 금방 병을 단정하고 무조건 치료부터 하려고 해서는 안돼. 요즘 젊은 사람들은 '병'에 갇혀 있어. 내가 원래 어디가 아팠고 어디가 약하다면서 병명을 갖다가 붙이려고 해. 그런데 사람이 항상 건강할 수는 없는 것이거든. 놔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병에 너무 호들갑을 떤단 말이야."

 

아파서 간 병원에서 '아플 수도 있다'는 말을 의사선생님한테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선생님은 병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신다. 아까도 내 앞의 아주머니 아저씨에게 '병 인식'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요즘 사람들이 병에 갇혀있는 이유가 어머니들 탓이 크다고 했다. 아이가 감기 걸리면 열 나고 기침하는 것 이외에도 토하거나 설사를 할 수도 있는데 어머니들은 자신이 아는 병의 증상을 조금만 벗어나면 불안해 하고 너무 심하게 걱정한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나을 수 있는데도 아이가 아파하고 자신 스스로 불안하다보니 의사에게 병명을 '강요'할 때가 있다고 한다. 병명이 나와야 그에 따른 치료를 할 수 있으니 방법을 찾았다고 마음의 위로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런 가정교육은 굉장히 잘못된 병 인식을 키워준다면서 나보고도 절대 그러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내 증상 역시 '원래 위가 안 좋아'가 아닌 '감기로 인한 단순한! 소화불량'이라고 한다. 선생님은 일년에 소화 안 되는 것만 따져서 위가 안 좋다고 하면 대한민국에 위 좋은 사람 없을 거라고 하신다.

 

뭔가 맥이 풀렸다. 병증이 심각하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거늘 실망감이 스치는 것은 뭔가. 선생님 말대로 나도 나 스스로 환자라는 주문을 걸어놓고 '나는 원래 아퍼, 나는 원래 약해'라는 틀 속에 살려고 했던 것 같다.

 

'아플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쿨~ 한 의사선생님 앞에서 나도 아픈 척(?) 할 수 없었다. 병원문을 힘차게 열고 씩씩하게 집으로 갔다. 선생님의 말 한 마디가 열 주사 안 부럽구나!

2008.11.23 15:38ⓒ 2008 OhmyNews
#내과 #의사선생님 #병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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