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추운데 소주 반 병에 닭꼬치 어때?"

[겨울 음식을 찾아서③] 가난했던 학창 시절, 친구와 찾은 포장마차

등록 2008.11.25 16:14수정 2008.11.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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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차가운 바람이 불 때면 유난히 포장마차가 발길을 붙든다.

차가운 바람이 불 때면 유난히 포장마차가 발길을 붙든다. ⓒ 조정래




요즘 같이 쌀쌀한 날씨에 밤거리를 걷다보면 유난히 포장마차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 포장마차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면 포장마차의 따뜻한 불빛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뎅 국물이 특히 사람을 잡아 끈다. 거기에는 오래 전 포장마차에 관한 나의 추억도 함께 얽혀있다.

펑크난 학점을 채우게 위해 시작한 도서관 생활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다. 당시 나는 (비록 방위였지만) 군생활을 마치고 대학교에 복학한 상태였다. 1, 2학년 때 나의 눈에 그렇게 칙칙하게만 보였던 예비역 복학생이 된 것이다. 복학하자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캠퍼스와 강의실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고, 전공과목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수준도 많이 상향조정된 상태였다.

군대 가기 전, 나는 전공공부를 무척이나 등한시했다. '전공은 군대 다녀와서'라는 생각도 한몫을 한 데다가, 학과공부보다는 동아리 활동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공과목이 여기저기 펑크난 너덜너덜해진 성적표가 내 앞에 놓이게 됐다. 게다가 유유상종이라고 내 주위에도 그런 친구들뿐이었다. 한 녀석은 '내 학점은 선동열 방어율과 비슷하다'라는 말을 자랑처럼 떠벌이고 다녔다.

복학하자 더 이상 그런 농담은 통하지 않았다. 대신에 수많은 리포트와 재수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등의 불을 끄려면 우선 펑크난 학점부터 메꿔야 하고 거기에 더해서 영어 토익공부도 빼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학교도서관 생활을 시작했다. 학기 중이건 방학기간이건 상관없이 아침 일찍 도서관에 나와서 자리 잡고 밤늦게까지 공부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었고 '삐삐'라고 부르는 무선호출기도 필수품은 아니었다. 자기가 의지만 있다면 외부의 방해를 최소화한 채 공부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기가 한명 있었다. 비록 전공은 다르지만 1학년 때부터 함께 동아리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학과친구 못지않게 절친한 친구다. 우리는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밥을 먹고 밤에는 역시 같이 지하철역으로 향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쯤이면 우리 둘 다 약간은 출출해진 상태다.


학교를 나와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그 몇백 미터 사이에는 왜 그리도 많은 술집과 실내포장마차들이 있는지. 떡볶이와 튀김은 입안에 군침이 돌게 만들고 파전과 막걸리는 언제나 우리를 유혹했다. 그중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닭꼬치구이였다. 자주 가던 호프집에서 새로 닭꼬치 메뉴를 추가하면서, 건물 앞 거리 한쪽에 작은 포장마차를 만들어놓고 주문받은 닭꼬치를 즉석에서 굽고 있었다.

물론 그 닭꼬치는 길을 가는 행인들에게도 꽤나 맛보고 싶은 대상이다. 하물며 우리같은 배고픈 젊은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닭꼬치를 먹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그 옆을 지나갈 때면 짙은 양념의 향이 코로 스며들면서 우리의 식욕을 자극했다. 그 집에는 '소주 반병'이라는 매력적인 메뉴도 함께 있었다.

닭꼬치 + 소주 반병은 최적의 조합

a  소주 반병의 유혹. 가난한 학생들에게 소주 2잔은 적당히 기분 좋은 만족감을 준다.

소주 반병의 유혹. 가난한 학생들에게 소주 2잔은 적당히 기분 좋은 만족감을 준다. ⓒ 김대홍

"배고픈데 닭꼬치에 소주 반병 어때?"
"그럴까? 그거 좋지"

그 친구도 나도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사정과 다음날에 대한 부담 때문에 많이 마시지는 못 한다. 그런 면에서 닭꼬치와 소주 반병은 우리한테 최적의 조합이었던 셈이다.

닭꼬치를 씹을 때 입 안 가득 퍼지는 매콤달콤한 맛, 그리고 입안에 남은 기름기를 없애기 위해서 차가운 소주 한잔을 들이킬 때의 그 짜릿함! 그때부터 나와 친구는 그 집의 단골이 되었다.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작은 포장마차에 들렀다.

소주 반병이면 각자 2잔 가량 마실 수 있고, 거기에 닭꼬치 하나면 시장기도 잊으면서 적당히 기분 좋은 상태가 된다. 펑크난 학점을 때우기 위해서 하루 종일 공부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길에 선 채로 마시는 소주 2잔. 지금 생각해도 참 괜찮은 기억이다.

그 닭꼬치와 소주 반병의 가격이 얼마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그 집 앞에 멈추어설 때 느꼈던 기대감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소주 한잔이 뱃속으로 들어가면,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무한한 시간과 가능성이 모두 우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몇 천원의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그때 이후로 강산이 한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다. 커다란 건설회사에 들어간 친구는 결혼해서 자식 낳고 잘 살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1년에 한두 차례 만나서 함께 술을 마신다. 닭꼬치와 소주 반병의 기억이 무색할 만큼 기름진 안주를 푸짐하게 먹고, 내일이 없다는 듯이 2차, 3차 옮겨다니며 퍼마신다. 시간이 지난만큼 우리의 음주습관도 변해간 모양이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서로 자주 만나고 연락하지는 못하지만 아직 우리가 친구라고 서로 믿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연말이 됐으니 또 그 친구를 만나서 즐거운 술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그 녀석은 아직도 닭꼬치와 소주 반병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이번에 만나면 이렇게 한번 말해봐야겠다.

"날도 추운데 포장마차에서 닭꼬치에 소주 반병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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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꼬치 #포장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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