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위기는 '해결사'를 부른다

[정치 톺아보기] 김대중·박근혜·반기문 역할론

등록 2008.11.27 12:29수정 2008.11.27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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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에서 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왼쪽에서 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남북관계가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 중단에 이어 개성공단 사업마저 위협을 받는 전면적 긴장관계로 들어선 가운데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그리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나서야 한다는 역할론이 솔솔 나오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3인의 역할론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까지 꾸준히 DJ와 반기문 총장의 역할론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역할론이 추가된 것이다.

창조한국당-민주노동당도 김대중-반기문 역할론 제안

이들의 역할론 논의에 물꼬를 튼 것은 창조한국당이다. 창조한국당은 지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반도평화와 남북상생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 총장이 나서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창조한국당은 지금의 남북관계가 매우 위태롭다고 진단하고 "우리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세계평화를 유지하고 이룩해야 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직접 나서 주실 것을 정식으로 제안한다"고 발표했다.

창조한국당은 이어 결의문에서 "남과 북은 물론 세계사회로부터 신뢰받고 있는 이분들이 남북을 왕래하면서 균열점을 접합시키고 불신을 화해로 이끌어 주실 것을 요청한다"며 "그래서 남북 사이에 '통미봉남'이니 '대북압박론'이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보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실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긴급회동을 갖고 급격히 경색되고 있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양당이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강 대표는 "현 정부에 대한 북한의 분위기가 정말 심각했다"며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야당들이 고임돌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 대표는 27일 오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해 심각한 북한의 분위기를 전하고 현재의 긴장관계를 해소할 김 전 대통령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

최성, DJ의 유엔 한반도 평화특사 및 반기문 방북 제안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양당 공조의 실무협의를 맡은 민주당 최성 정책위 부의장도 최근 발간한 <오바마와 김정일, 이명박의 위험한 선택>라는 제목의 정책 제안서에서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유엔과 미국, 그리고 남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특사가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해야 한다"면서 "DJ를 유엔 차원의 한반도 평화특사로 파견하든지 아니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직접 방북할 것"을 제안했다.

최성 부의장은 구체적으로 "유엔 차원의 평화특사에는 베트남전 종식을 위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파견 등 여러 사례가 있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유엔 한반도 평화특사 타드는 오바마의 입장에서도 환영할 것이고, 김정일 위원장도 쉽게 반대하기 힘든 입장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오바마 진영의 대북정책팀이 클린턴 정부 시절에 김대중 전 대통령 외교안보팀과 호흡을 맞춘 인사들로 짜여진 점과 서울 답방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김정일 위원장의 부채의식을 들었다. 또 반기문 총장 역시 자신을 청와대 외교안보특보로 발탁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DJ를 한반도 평화 정착의 적임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진실로 희망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모든 방도를 강구한다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혜를 구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고 국내 정치적으로 국민통합의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또 다른 대안으로 반기문 사무총장이 직접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왕 보내려면 박근혜보다 이상득이 더 낫다?

그는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의 특사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북한을 20여 회 방문한 그는 "북측 관계자가 이명박 정부가 공개적으로는 북을 비난하고 남북간 합의를 일체 이행하지 않으면서 뒤로 특사 파견이나 구두 메시지 전달을 협의하는 방식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을 뜻임을 분명히 했다"면서 "'박근혜 특사론'에 대한 북측의 반응도 과거와 달리 대단히 비판적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26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북특사로 적합하다"고 밝혔다. 당내 소장파를 대표하는 남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에 출연해 "막힌 것을 뚫는 의미에서 대북 특사가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북한이 개성공단을 두고 벼랑끝 전술을 펼치는 것이 이롭지 않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양쪽으로부터 모두 신뢰받는 분이 가야 한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반면에 최근 박진·권영세 의원 등과 함께 유엔을 방문해 반기문 총장을 만나고 온 서갑원 의원은 김대중-반기문 역할론과 관련 "당시는 개성공단 조치가 나오기 전이어서 남북문제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고 전제하고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 바꾸지 않는 상황에서 특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면서 "특사가 간다면 대통령 의중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이상득 의원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 의원은 또 "반기문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역할을 할 부분이 있지 않겠냐"면서 "직접적인 남북관계보다는 북핵문제를 들고 북한에 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당사자인 김대중-반기문은 특사 역할론에 부정적

이처럼 정치권에서 3인의 역할론이 제기되는 것은 세 사람이 긴장된 남북관계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클린턴 정부 시절의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내셔널 프레스센터(NPC) 연설을 통해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제안해 그의 방북을 이끌어냈고, 카터는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 카드라는 성과를 가져왔다.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대북특사 역할이 성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선 특사 파견의 주체인 이명박 정부가 이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또 당사자들도 자신이 특사 역할론에 부정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대북특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9월 김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숙소로 예방한 반기문 총장 역시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과 자주 만나 북한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서도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문제에 할 일이 많다. 측면에서 한반도 문제를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우회적 역할론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유동적이어서 이들이 평화특사로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위기는 늘 '해결사'를 부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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