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즘 19금, 아빠도 이해 못하겠거든"

[청소년 유해물 판정-부모] 지나친 간섭은 어른들 시각일 뿐

등록 2008.12.12 17:11수정 2008.12.1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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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건복지부 산하 청소년위원회가 대중가수인 비와 동방신기의 노래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판정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해당 가수인 비와 동방신기는 위원회가 지적한 부분을 수정한 '클린버전'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이런 문화규제는 게임과 음반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현재 19살인 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a  비 콘서트 홍보 사진

비 콘서트 홍보 사진 ⓒ v2b global


중학교 다닐 때쯤으로 기억됩니다. 텔레비전이 없는 집에 살았던 저는 이웃집을 기웃거리며 텔레비전 동냥(?)을 했었습니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많았는데, 내 집것이 아닌 이상 맘껏 볼 수 없었죠. 그러던 우리집에 텔레비전이 생겼습니다. 이젠 서러움(?) 안 받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다 볼 수 있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다름 아닌 아버지였습니다.


당시 저는 가요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새벽비' '제3한강교'를 부르던 혜은이의 리사이틀을 보러갈 정도였으니까요. 틈만 나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쇼 프로그램을 보는 게 저에겐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걸 싫어하셨습니다.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금세 채널을 뉴스로 돌려버릴 정도였죠. 그도 아니면 아예 꺼버렸습니다.

저와 아버지의 텔레비전을 둘러싼 갈등은 거의 날마다 빚어졌습니다. 그 때 결심했죠. 다음에 어른이 되고 아빠가 되면 절대 안 그러겠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쇼 프로그램을 같이 보고, 좋아하는 노래도 같이 듣는 이해심 많은 아빠가 되겠다고.

사춘기 아이와 제 사이 벽 없애준 대중가요

세월이 흘러 저는 아빠가 됐습니다. 아이들하고도 비교적 잘 어울려 노는 편입니다. 지금 큰아이는 중학교 1학년,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약간의 거리감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이해를 못한다거나 아빠는 몰라도 된다는 둥 하면서 핀잔을 주었습니다.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서운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며 짜증을 낼 때는 저도 모르게 같이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지나면서 보이지 않는 벽이 점점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딸들은 커가면서 엄마편이 되어 간다더니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렇게 돼가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벽을 허물어뜨리는 데는 대중가요가 한몫 했습니다. 딸아이가 가요를 들으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MP3에 다운받을 수 있도록 사이버머니 충전을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저는 두말없이 2000원씩, 3000원씩 해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딸아이가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 관심을 보였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다운받아 따로 저장해 두면, 그걸 다시 CD에 담아 차에서 들을 수 있도록 배려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대화의 주제 또한 자연스럽게 요즘 유행하는 노래와 가수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거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노래도 같이 흥얼거리고….


"아빠! 이 노래가 뭔 줄 아세요. 누가 부르게요?"
"……"
"여러 번 가르쳐 드렸는데 아직도 몰라요. '하루하루'."
"아. 그렇구나. 빅뱅이 부르는 노래."
"그럼 이 노래는요?"
"이건 아빠도 알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어쩌다'."
"맞다. 이건 아빠가 제일 좋아하시는 노래지."

"아빠, 동방신기 노래가 뭐가 선정적이에요?"

a  아이들이 mp3 파일을 다운 받는 멜론 사이트.

아이들이 mp3 파일을 다운 받는 멜론 사이트. ⓒ 화면캡쳐


빅뱅의 '붉은노을'이라도 흘러나오면 가족의 합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승기가 다시 부른 '여행을 떠나요'도 그랬습니다. 저희 부부가 익히 알던 노래인데다, 아이들도 좋아하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모처럼 네 식구가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죠. 큰아이가 동방신기의 노래 '미로틱'과 비의 '레이니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이 됐는데,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래는 요즘 딸아이가 샤이니의 '아미고'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뭐가 문젠데?"
"선정적이라고 해서 그랬대요."
"어떤 부분이?"
"떨리는 니 몸 안에 돌고있는 나의 매직스틱(Magic Stick),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를 느낀 보디셰이크(Body Shake)요."

두 눈 치켜들고 쳐다보는 아이한테 "매직스틱이 무슨 말인 줄 아냐"고 물었더니 "요술지팡이요"라고 대답합니다. "아빠도 특별히 뭐가 선정적인지 잘 모르겠는데, 왜 그랬을까"라고 반문했더니 아이는 더 흥분을 합니다.

"동방신기의 '미로틱'은 또 왜 그런데요? 친구들이 그러는데 이 부분 때문이라던데요. '한 번의 키스와 함께 날이 선 듯한 강한 이끌림, 두 번의 키스 뜨겁게 터져버릴 것 같은 네 심장을, 너를 가졌어, You know you got it. 넌 나를 원해 넌 내게 빠져 넌 내게 미쳐 헤어날 수 없어 I got you Under my skin."

"우리 딸, 언제 그렇게 가사를 다 외웠니?"
"이건 기본인데요, 뭘. 근데 뭐가 선정적이에요?"
"글세…."
"그렇죠. 역시 아빠는 저랑 생각이 통한다니까요. 저도 이해할 수 없어요. 친구들도 다 저랑 똑같은 생각이에요. 그리고 이미 친구들도 다 아는 노랜데. 이제 와서 뭘 어쩌자고…."

법으로 막아봤자, 더 음지로 들어갈 뿐입니다

a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판정된 동방신기의 '주문'이란 노래 제목 옆에는 '19금' 딱지가 붙었다.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판정된 동방신기의 '주문'이란 노래 제목 옆에는 '19금' 딱지가 붙었다. ⓒ 멜론화면캡쳐


최근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의 대중가요 선정성 판단기준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청소년들의 게임 심야 이용을 차단하는 것을 뼈대로 입법절차를 밟고 있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청소년들의 건강권을 고려해 중독가능성이 높은 게임의 심야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쪽에선 청소년의 권리를 침해하는 반인권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중가요의 선정성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아이들은 대개 음악을 즐기지, 가사를 분석하지 않습니다. '미로틱'이나 '레이니즘'의 노랫말이 선정적이라는 것은 다분히 어른들의 시각일 뿐입니다. 아이들은 전혀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결정으로 오히려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한 것이죠.

중독가능성이 높은 게임의 심야이용 제한도 매한가지입니다. 중독가능성에 대한 판단기준은 어른들의 눈입니다.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듯합니다.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선에서 끝나야 합니다. 법으로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은 어른들의 발상일 뿐입니다. 아무리 법제화하더라도 청소년들이 그 게임을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하고야 말 것입니다. 지능적으로 음성화되어 갈 것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똑같이 커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커서도 안 되고요. 말로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모든 것에 획일적인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문화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이가 탈이 날 것 같다고 해서 음식을 못 먹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불량식품을 먹으면 안 되는지, 먹고 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설명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가려 먹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소화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 아닐까요?
#선정성 시비 #동방신기 #레이니즘 #청소년보호위원회 #미로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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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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