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맛있는 된장 꿈을 꾸었어요. 엄마의 엄마는 맛있는 된장 꿈을 꾸며 코를 골았어요.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꿈도 꾸지 않고 맛있게 잠들었어요. 내년에도 엄마는 콩을 심을까요? .. (38쪽)
책을 좋아하고 글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다음, 책과 글로 한삶을 마무리한 사람들 이야기를 부지런히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수백 권에 이르는 책을 찬찬히 살피면서 여러모로 비슷한 대목을 많이 느낍니다. 모두들 아기를 안 낳고 살거나 혼인을 안 하고 삽니다. 혼인도 하고 아기를 낳았어도 집살림은 자기가 안 하고 다른 사람 몫입니다. 소설쓰는 공선옥님처럼 집살림과 아기 돌보기를 껴안는 글쟁이나 책쟁이는 몹시 드뭅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나라안 사람도 그렇고 나라밖 사람도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우리들한테 두루 사랑받는다는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분들인데, 정작 이분들 삶에서 ‘살림’이 보이지 않아요. 틀림없이 이분들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서 고운 목숨 하나 받아서 이 땅에서 사랑과 믿음을 넉넉히 누리면서 컸을 텐데, 그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믿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땅에 발붙이는 느낌이 보이지 않고, 땅에 깃드는 얼이 나타나지 않으며, 땅에 배인 넋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땅과 함께하는 삶이 느껴지지 않고, 땅과 어깨동무하는 매무새를 찾을 수 없으며, 땅하고 어울리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합니다.
알쏭달쏭한 일입니다. 참 아리송한 노릇입니다. 다만 한 가지, 제 깜냥으로 헤아리기로는, 나라 안팎 숱한 훌륭한 글쟁이와 책쟁이 분들께서는, 한 사람이 한 목숨 얻어서 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길에서 그지없는 아름다움이요 거룩함이요 즐거움이 될 한 가지를 놓치거나 버리거나 잃거나 잊거나 멀리하거나 모르지 않느냐 싶어요. 아이가 다 크고 난 다음 ‘어릴 때 좀더 많이 안아 주지 못해 아쉽다’고 하는 늙수그레한 아저씨들마냥, ‘어릴 때 당신 아기 똥기저귀 갈아 주는 고단함이 기쁨이었음’을 못 느끼고 만, 하늘이 내려준 고마운 살림살이였음을 못 부대끼고 만, 우리 나라 남자들(요새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또 글쟁이와 책쟁이 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림책 <세 엄마 이야기>를 읽고 봅니다. 먼저 제가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즐겁게 읽고 봅니다. 다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고 책값을 셈해 집까지 들고 와서 옆지기한테 보여줍니다. 그런 뒤 옆지기는 아기를 품에 안고 글을 읽어 주면서 그림을 보여줍니다. 아직 갓난쟁이인 우리 아기가 이 그림책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무늬나 빛깔은 느끼고 있지 않느냐 싶어요. 뭐, 아무것도 못 느껴도 괜찮습니다. 아기로서는 지 엄마가 자기를 품에 안고 있는 따스함이 좋을 테고, 지 엄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싱그러움이 좋을 테니까요.
모두 네 여자(주인공인 어린아이, 어린아이네 엄마, 어린아이네 엄마한테 엄마, 어린아이네 엄마한테 엄마인 분한테 엄마)가 나오는 <세 엄마 이야기>는 네 세대에 걸쳐서 저마다 어떤 삶을 꾸려왔고 무슨 삶을 소담스레 여기면서 지냈는가를 곱씹게 해 줍니다. 엄마네 딸은 엄마가 꾸리는 삶을 보면서도 배우고, 엄마가 딸아이한테 가르치는 삶도 배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힘들 때면 언제나 엄마가 달려가마’ 하는 삶을 배워요.
가만히 보면, 딸네 엄마뿐 아니라 아들네 엄마도 당신 아이한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옵니다. 부리나케 찾아옵니다. 아무리 홀로 일어서서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 하더라도, 어머니로서 당신 사랑은 팔짱 끼는 삶이 아니라, 곁에서 ‘잘하고 못함을 가리지 않고 너그러이 굽어살피면서 한손 거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큰일이 아니고, 함께할 수 있음이 큰일이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딸아이가 엄마가 되어도 아직 모자라거나 어수룩한 데가 있기 마련이고, 이 모자람과 어수룩함은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어수룩한 줄 깨달은 당신’이 돌봐 주면서 따뜻하게 가르쳐 주면서 찬찬히 물려줄 대목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맺어지는 사이가 아니라 사랑으로 맺어지는 사이입니다. 지식으로 맺어지는 사이가 아니라 믿음으로 맺어지는 사이입니다. 다 함께 땀흘리니 흐뭇하고, 다 함께 누리니 뿌듯합니다. 다 함께 모여 수다를 떠니 신나고, 다 함께 모여 밥술을 뜨니 세상 부러울 일이 없습니다.
그림책 <세 여자 이야기>는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긴 젊은 엄마가 밭에 콩을 심어 거두는 이야기 하나로 살뜰하게 꾸며졌습니다. 비록 젊은 엄마는 딸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이지만, 낳기만 낳았을 뿐 엄마 노릇은 젬병인 분이시기에 뾰족구두를 신고 밭일을 합니다. 젊은 엄마네 엄마는 집일을 많이 하셨던 분이라 젊은 엄마와 달리 운동신을 신고 밭일을 합니다. 젊은 엄마네 엄마한테 엄마인 분은 농사꾼이라서 고무신을 신고 밭일을 합니다. 일을 마치고 난 다음에도, 젊은 엄마는 얌전을 떨며 손과 낯을 씻으나, 젊은 엄마네 엄마는 손발을 씻고, 젊은 엄마네 엄마한테 엄마인 분은 농사 연장을 말끔히 씻습니다.
다 다른 삶이요 다 다른 넋입니다. 그러나 이 다 다른 삶과 넋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서로 허물이 없습니다. 오붓합니다. 이 허물없음과 오붓함, 여기에다가 살뜰하고 웃음나는 이야기 한 자락이 그림책 <세 엄마 이야기>가 우리한테 베푸는 고마운 선물보따리입니다.
(3) 그러나 아쉬운 대목
즐거운 선물보따리인 <세 엄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러 대목에서 아쉽습니다. 이야기 얼거리를 살피면, 이 그림책이 나오게 된 큰 밑그림은 ‘철없’기는 했어도 ‘인절미를 먹고 싶은 젊은 엄마가 콩을 심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고단하게 밭일을 해서 콩을 거둔 다음, 처음 젊은 엄마가 꿈꾸었듯 인절미 해 먹는 일이 나와야 옳습니다. 젊은 엄마는 틀림없이 떡하는 일을 하나도 모르는 채 그저 인절미만 먹고 싶었을 터이니 콩고물을 내고 떡을 찧고 할 때마다 또다시 엄마를 부르고 그 엄마는 다시 엄마를 부르는 일이 되풀이되었을 테고,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면서도 재미가 넘치게 되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끝마무리에서는 엉뚱하게 ‘된장 담그기’로 나아갑니다. 젊은 엄마는 그토록 먹고파 했던 인절미인데 아무 거리낌없이 된장 담그는 일에 빠져듭니다. 바라보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림책 흐름에서는 매끄럽지 못합니다. 나중에 <다시, 세 엄마 이야기>라고 해서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와, 인절미 해 먹는 이야기를 새롭게 펼쳐 주면 좋겠다고 느낍니다.
다음으로, 그림책에서 잘못된 대목 여섯 가지입니다. 다음 여섯 가지는 이 그림책이 다음 쇄를 찍을 때 꼭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ㄱ) 3쪽을 보면, 도시에서 시골로 옮길 때 타고 간 자동차가 풀빛입니다. 그런데 5쪽에서는 빨강 자동차로 바뀌어요.
(ㄴ) 9쪽에서 ‘엄마의 엄마’가 나오는데, 할머니인 ‘엄마의 엄마’는 ‘경주용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매무새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탄 자전거는 경주용 자전거가 아닌 ‘산악자전거와 같은 1자 손잡이’예요. 엄마네 엄마가 경주용 자전거 타는 매무새로 두고프다면 자전거도 경주용 자전거(바퀴가 가느다랗고 손잡이는 양불처럼 생긴 자전거)를 타고 나오게끔 그려야 합니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매무새로 그리겠다면 할머니 매무새를 고쳐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그림처럼 여느 생활자전거를 타고 나타나는 모습으로 그리겠다고 할 때에도 할머니 매무새는 고쳐야 합니다. 경주용 자전거와 산악자전거와 생활자전거 타는 매무새는 모두 다릅니다. 덧붙이자면, 산악자전거를 탈 때에는 안장을 아무리 올려도 9쪽 그림에 나오듯이 허리를 앞으로 잔뜩 숙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허리를 앞으로 잔뜩 숙이고 타면 대단히 위험하게 되어요. 더욱이, 손잡이가 1자이기는 하나, 그림에 나오는 자전거는 ‘여느 생활자전거’입니다. 게다가, 페달 발구르기도 잘못되었습니다. 오른 페달이 위로 가 있으면 왼 페달은 밑으로 가 있어야 하는데 왼 페달은 밑이 아니라 가운데 크랭크축에 있습니다. 자전거 좋아하는 아이들이 이 그림을 보았다면 어떻게 생각할는지 아찔합니다.
(ㄷ) 19쪽에 ‘엄마의 엄마’가 두 손에 ‘낫’을 들고 나타납니다. 그런데 20쪽에는 “엄마와 엄마의 엄마는 호미로 열심히 풀을 뽑았어요” 하고 나옵니다. 더욱이 21쪽에서 ‘엄마의 엄마의 엄마’도 ‘낫’을 들고 나타나시는데, 22쪽에서는 ‘괭이’를 들고 풀을 캐냅니다. 그림과 글이 똑같이 어울려야 하지 않을까요? 낫을 들고 나타나서 호미질을 했다거나, 낫을 들고 날아와서 괭이질을 했다니, 아무래도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해 한다거나, 농사 연장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은 ‘호미가 어떻게 생기고 낫이 어떻게 생긴 줄을 잘못 받아들일 걱정’이 있습니다. 조금 더 덧붙여 보면, 가장 큰 할머니가 괭이질을 하는 손 매무새도 잘못되었습니다. 그림책대로 괭이질을 하면 괭이자루가 부러질 뿐더러 밭을 일굴 수 없습니다.
(ㄹ) 23쪽을 보면, “엄마의 엄마의 엄마도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웃었어요” 하고 나옵니다만,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아주 쪼글쪼글 볶은 머리라서 ‘쓸어내릴’ 수 없어요. 이때에는 ‘쓸어올린다’고 해야 올바르다고 느낍니다.
(ㅁ) 3쪽 그림에서 집 뒤에 복숭아나무로 보이는 꽃 또는 열매가 발그스름한 나무가 서 있는데, 5쪽에서는 이 나무가 사라지고, 그냥 푸른잎나무로 바뀝니다.
(ㅂ) 21쪽에서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낫을 들고 짠 하고 날아옵니다. 이때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고무신을 신고 있는데, 고무신 바닥이 운동화 바닥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지난날 고무신을 신고 다니신 분들은 모두 알 터인데, 검정고무신은 바닥이 판판합니다. 다만, 요사이 나오는 자주빛 고무신은 바닥이 운동화처럼 ‘1111’과 같이 빗살이 새겨져 있어서 덜 미끄러지게끔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그림책에 나오는 고무신이 자줏빛이어야 할 텐데 검정빛입니다. 흰고무신도 바닥에 빗살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무신을 그리려 했다면 마땅히 알맞는 빛깔로 그려야 합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할머님들은 검정고무신을 잘 안 신습니다. 검정고무신을 신다 보면, 처음 한 달 동안 뒷꿈치나 앞꿈치가 나가게 마련이라, 말랑말랑하면서 잘 안 닳는 자주빛 고무신을 훨씬 많이 신으셔요.
저로서는 아쉬운 대목을 여섯 가지 들었습니다만, 좀더 꼼꼼히 살피면 더 많은 아쉬움이 드러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 몇 가지가 있다 해서 그림책 <세 엄마 이야기> 빛이나 값이 떨어질 수 없습니다.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아름다우며 웃음 묻어나는 즐거운 그림책입니다. 그저, 앞으로는 이와 같은 잘못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 이처럼 살아가는 기쁨이 짙게 묻어나는 그림책이 꾸준히 나와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 책이름 : 세 엄마 이야기
- 글ㆍ그림 : 신혜원
- 펴낸곳 : 사계절 (2008.6.27.)
- 책값 :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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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0 13:3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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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엄마 이야기
신혜원 지음,
사계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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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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