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맡기고 한판? 도박 유혹, 술로 이기다

술 고픈 요즘, '최고의 술자리'를 추억하다

등록 2008.12.12 17:33수정 2008.12.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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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0년 동안의 술자리 가운데가 대장 형

10년 동안의 술자리 가운데가 대장 형 ⓒ 김준희


그해 겨울, 우리는 두 대의 승용차를 끌고 강원도로 떠났다. 나보다 6살 많은 선배형이 대장이었고 나보다 3살 적은 후배가 막내였다. 다양한 연령이 뒤섞여 있지만 몇년 동안 함께 학교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우정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우리가 강원도로 향한 이유는, 강원랜드 카지노에 가서 가볍게 한번 땡겨주고(?) 강릉으로 넘어가서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판을 벌이기 위해서다. 우리가 특별히 도박을 좋아해서 강원랜드를 택한 것은 아니다.

선후배들이 모여서 가끔씩 포커판을 펼칠 때도 있지만, 그 판돈은 도박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미미한 수준이다. 그리고 돈을 딴 사람이 그 돈으로 술을 사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돈을 따건 잃건 그것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끼리 마주 앉아서 얼굴 들여다보며 하는 포커와는 달리 카지노에서는 기계를 상대로 할 때가 많다. 그런 도박은 별로 재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일확천금의 꿈을 품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냥, 단지 강원랜드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뿐이다.

강원랜드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한 사람, 도벽을 끊지 못해서 강원랜드 출입금지 조치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신문에서 종종 들려오던 시절이었다. 도대체 강원랜드가 어떻기에? 이런 호기심이 우리를 그 곳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1차는 강원랜드에서 가볍게 한 게임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서 도착한 강원랜드, 이미 사방이 어두워졌고 주차장에는 눈이 소복히 쌓여 있다. 내 눈길을 처음으로 잡아끈 것은 강원랜드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수많은 전당포들이었다. 이곳에 와서 자동차를 담보로 돈을 빌려서 카지노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어떤 심리상태가 되면 승용차를 전당포에 맡기고 그 돈으로 도박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강원랜드 입장료는 5000원, 우리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신분증을 검사받은 후에 휘황찬란한 실내로 들어갔다.


"1인당 만원씩이야. 그 이상 돈 쓰면 안돼!"

대장 형은 이렇게 엄포를 놓았고 우리는 넓은 실내로 뿔뿔이 흝어졌다. 내가 찾은 곳은 수십대 슬롯머신이 놓여있는 방이었다. 슬롯머신뿐만 아니라 이름도 생소한 여러가지 게임들이 있었지만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슬롯머신이 제격이었다. 방안에 들어서자 자욱한 담배연기가 천장으로 피어오르고, 빈 자리를 찾지 못할 만큼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슬롯머신보다 방안을 점령한 많은 사람들이 더욱 흥미로왔다. 슬롯머신 기계에는 만원짜리 지폐를 직접 넣을 수 있다. 그러면 총 20차례 버튼을 누를 수 있다. 한 판에 500원 그러니까 만원이면 20판, 참 계산하기 편해서 좋다. 땡기는 것을 상상하고 왔는데 기대와는 달리 가볍게 버튼을 누르는 형식이라니.

턱을 괸 한 손에 만원짜리 지폐다발을 들고 있고, 담배를 든 다른 손으로는 계속 버튼을 누르고 있는 한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잠을 못 잤는지 퀭한 눈에 기계적으로 버튼을 치는 동작만 반복하고 있다. 저 돈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소중한 무언가를 전당포에 맡기고 가정에는 거짓말을 한 채 저 자리에 앉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버튼 한번 누르고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채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대박이 터지지 않는 이상 만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는 20분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저 아저씨는 그 사실을 터득했는지 뭉칫돈을 들고 연신 슬롯머신으로 지폐를 집어넣고 있다.

가지고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고 대박 확률은 아주 낮다. 지금이야 머리 한 구석에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돈을 넣겠지만, 마지막 남은 돈마저 다 떨어지면 그 때는 어떡할까. 희망이 산산조각나는 순간 빈털털이가 된 자신의 모습도 직면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라 생각하고 가정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다시 전당포로 달려갈까.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돈을 넣었지만 결과는 역시 뻔하다. 슬롯머신은 돈 먹는 하마다. 이곳에 앉아있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다. 나는 같이 온 친구들을 찾았고 우리는 다시 모여서 밖으로 향했다. 대장 형의 말대로 모두들 만원 이내의 돈만 썼고 당연하게도 대박 근처에라도 간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서자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겨울 공기.

"형님, 자동차 담보로 돈 빌려서 한게임 하시죠."

옆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저음. 돌아보니 전당포 직원 같은 사람이 나에게 명함을 내밀면서 말한다. 이 제안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유혹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이 유혹을 거절 못 하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간이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2차는 강릉의 술집과 콘도에서

a 10년 간 이어져온 술자리 이들과의 술자리는 언제나 편하고 즐겁다

10년 간 이어져온 술자리 이들과의 술자리는 언제나 편하고 즐겁다 ⓒ 김준희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술을 더 좋아했기에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강릉으로 향했다. 한밤 중의 도로에는 차도 별로 없고 우리의 마음도 가볍다. 졸업과 동시에 IMF라는 직격탄을 맞았지만, 수많은 노력 끝에 취직도 한 상태였다.

번듯한 대기업은 아니지만 장래가 유망한 벤처기업의 연구원. 이 정도면 어디가서 명함을 내밀더라도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학교생활을 해온 선후배와 함께 강릉으로 달려가고 있다.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당포의 유혹도 이겨냈다.

나는 가로등 밑에서 쭉 뻗은 포장도로를 바라보며, 나의 미래도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강릉에 도착해서는 미리 예약해둔 콘도에 대충 짐만 풀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강원도의 겨울밤은 추워서 오히려 상쾌하다. 횟집에 들어가서 회와 소주를 시키면서 즐거운 밤이 시작되었다. 그 회가 광어였는지 우럭이었는지, 그 때 먹은 소주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하지만 들뜰 정도로 즐거웠던 그 분위기는 지금도 눈앞에 그려진다.

회사생활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학교시절의 추억과 세상에 대한 온갖 쓴소리까지. 횟집을 나와서는 술을 잔뜩 사들고 콘도로 들어가서 다시 술파티를 벌였다. 해장은 강릉의 명물인 초당 순두부집에서 할 예정이기에 마음이 든든하다. 탁 트인 동해바다처럼 우리에게도 아무런 거침이 없던 시절이다.

몇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그만큼 많은 술자리를 우리는 함께 해왔다. 대장 형이 호출하면 언제든지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퍼마신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지만 우리들의 우정은 아직도 한결같다.

며칠 전 저녁, 이들 선후배와 서울의 교대역 근처에서 또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다. 누구는 회사가 곧 문을 닫는다고 걱정하고, 또 누구는 아파트 값이 떨어졌다고 푸념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2차·3차 옮겨다니는 주량도 여전하다. 10여년 가까이 이어져온 술버릇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믿음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과의 술자리는 언제나 나에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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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술자리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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