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보선창 갈매기들, "'갈마구'라니, 억울해요"

'부산 갈매기'와 다른 째보선창 갈매기

등록 2008.12.13 18:44수정 2008.12.1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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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펀하게 펼쳐진 갯벌은 만선의 기가 나부끼던 호시절을 까맣게 잊은 듯 지금도 썰물 때마다 창피를 모르고 온몸을 드러낸다. 세월을 비켜 에두르고 휘돌아 흐르던 탁류가 서해와 만나기 전 잠시 머무는 곳, 군산 째보선창. 

 

a  복개된 째보선창에서 바라본 충청도. 옛날에는 초가 몇 채가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고, 앞에 있는 등대도 무척 멀리 보였는데 지금은 손을 뻗으면 잡힐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 눈이 좋아져서? 아니면 손이 길어져서 그럴까요.

복개된 째보선창에서 바라본 충청도. 옛날에는 초가 몇 채가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고, 앞에 있는 등대도 무척 멀리 보였는데 지금은 손을 뻗으면 잡힐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 눈이 좋아져서? 아니면 손이 길어져서 그럴까요. ⓒ 조종안

복개된 째보선창에서 바라본 충청도. 옛날에는 초가 몇 채가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고, 앞에 있는 등대도 무척 멀리 보였는데 지금은 손을 뻗으면 잡힐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 눈이 좋아져서? 아니면 손이 길어져서 그럴까요. ⓒ 조종안

 

채만식은 소설 <탁류>에서 군산을 소개하며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째보선창 갈매기들의 애환은 반세기가 넘도록 풀리지 않고 있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뒤집어썼던 지난날의 누명을 벗겨주지 못한 채 세월만 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째보선창에 나갈 때마다 저공비행을 하며 먹이를 찾는 갈매기들을 만나는데요. 복개공사로 서식 공간을 빼앗긴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공중을 맴돌면서 "끼룩~끼루룩"대며 우는소리가 "나는 억울해요"라며 호소하는 것 같더라고요.   

 

흉가가 돼버린 동부어판장 보초병처럼 서 있는 등대와 가물가물하게 보였던 충청남도 서천 땅은 옛날보다 가깝게 보이는데 갈매기들과는 더 멀어진 것 같아 무거운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갈매기들의 애환이 서식처를 빼앗긴 것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는데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둑’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어요. 그것도 다른 지역이 아닌 지역 주민들이 ‘갈마구’라며 이름을 오용까지 했으니 한동네에 살았던 사람으로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째보선창 갈매기들은 유달리 정겹고 친근하게 다가오는데요. 부모가 경영하던 쌀가게가 선창가에 있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일자무식이었던 어머니에게 숫자를 알려 드리며 “엄니, ‘3’ 자는 선창에서 날러 댕기는 갈매기를 생각허믄 금방 쓸 수 있어유.”라고 해서 어른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에게도 사랑받는 ‘부산 갈매기’

 

a  부산 덕천사거리에 있는 구포시장 입구. 장을 보러 가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는 갈매기 그림을 볼 때마다 째보선창 갈매기들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부산 덕천사거리에 있는 구포시장 입구. 장을 보러 가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는 갈매기 그림을 볼 때마다 째보선창 갈매기들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 조종안

부산 덕천사거리에 있는 구포시장 입구. 장을 보러 가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는 갈매기 그림을 볼 때마다 째보선창 갈매기들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 조종안

 

부산 앞바다 갈매기들은 30년 전(78년)에 시조(市鳥)로 지정되어 4백만 시민은 물론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선거철이면 서면과 덕천 로터리에서 <부산갈매기>가 울려 퍼지고, 구포시장 입구에도 부산 갈매기들이 힘차게 비행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거든요.  

 

정치인뿐 아니라 스포츠계에서도 사랑받는 부산 갈매기는 프로야구 롯데 경기가 있는 날이면 부산, 경남 팬들의 응원가인 <부산 갈매기>가 사직야구장 밤하늘을 뒤덮습니다. 2008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홍성혼을 비롯해 무려 5명의 롯데 선수들이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니까, 기사 제목을 ‘부산 갈매기, 골든 글러브도 휩쓸다’라고 뽑는 신문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갈매기의 새하얀 날개와 몸통은 백의민족을 상징하고, 먼 뱃길을 끈기 있게 따라다니며 하늘을 나는 강인함은 부산 시민정신으로 받아들여 시조(市鳥)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부산 앞바다 갈매기들이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얼마 전에는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부산 갈매기’라는 만화도 출판되었다고 하더군요.   

 

부산 갈매기들은 해운대와 동백섬 앞바다를 오가는 유람선 주변을 맴돌며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느라 바쁜데 반해 째보선창 갈매기들은 ‘도둑’ 꼬리표를 달고 지내야 했으니 얼마나 서러웠겠습니까. 그래도 1995년 군산·옥구가 통합될 때 시조(市鳥)를 까치에서 갈매기로 바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동창회에서도 외면당했던 ‘째보선창 갈매기’

 

a  째보선창에 정박 중인 어선. 녹슨 고깃배 기둥 사이로 비행하는 갈매기와 충청도 서천 땅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촬영한 지 10년도 넘었으니 이 어선도 지금쯤은 고물상에 있겠네요.

째보선창에 정박 중인 어선. 녹슨 고깃배 기둥 사이로 비행하는 갈매기와 충청도 서천 땅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촬영한 지 10년도 넘었으니 이 어선도 지금쯤은 고물상에 있겠네요. ⓒ 조종안

째보선창에 정박 중인 어선. 녹슨 고깃배 기둥 사이로 비행하는 갈매기와 충청도 서천 땅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촬영한 지 10년도 넘었으니 이 어선도 지금쯤은 고물상에 있겠네요. ⓒ 조종안

 

제가 중·고등학교 동창회 총무를 맡아보던 때였으니 10년 전쯤으로 기억하는데요. 총동창회에서 각 기수를 상징하는 동물이나 식물을 정해서 보내달라고 해서 월례회 자리에서 의논했습니다. 그러자 ‘탁류’ 소설에도 나오는 째보선창 갈매기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결정이 났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누군가가 “너그들이 모르는 모양인디, ‘갈매기’는 째보선창 사람들이 생선 도둑들에게 ‘갈매기’라고도 허고 ‘갈마구’라고도 허기 때문에 선입감도 그렇고 이미지도 별로인 것 같은디··”라고 하자 모두 깜짝 놀라면서 “그런 사연이 있었는지 몰랐네.”라며 호랑이와 군산의 합성어인 ‘호군이’로 바꿔 캐릭터를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상징물을 바꾸기로 정해놓고도 한참을 웃으며 얘기가 오갔는데요. 군산에서 태어나 50년 가까이 살면서도 째보선창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데 놀랐습니다. 하긴 10년 전까지만 해도 흔한 생선인 ‘아귀’와 ‘박대’를 모르는 시민이 많았으니까요.

   

'갈매기'와 '갈마구'는 문화의 변화

 

군산은 잘 알려졌다시피 개항 1백 년도 더 된 항구도시입니다. 왜놈들이 계획적으로 조성한 군산항은 일제강점기에는 호남지방의 쌀 수탈 전진기지로, 해방 후에는 항만에 토사가 쌓이는 골치 아픈 항구로 언론에 오르내렸지요. 

 

a  군산 서부어판장에서 바라본 서해. 물이 들어오고 날이 저물자 먹이를 찾아 나선 갈매기들이 공중 곡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광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셔터를 눌렀지요.

군산 서부어판장에서 바라본 서해. 물이 들어오고 날이 저물자 먹이를 찾아 나선 갈매기들이 공중 곡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광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셔터를 눌렀지요. ⓒ 조종안

군산 서부어판장에서 바라본 서해. 물이 들어오고 날이 저물자 먹이를 찾아 나선 갈매기들이 공중 곡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광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셔터를 눌렀지요. ⓒ 조종안

 

1950-60년대에는 합판 재료인 원목과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들어오는 수입항으로 명맥을 유지했는데 항만 준설작업을 제대로 못 해 항구를 폐쇄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낙후되면서 어항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하역작업을 하는 부잔교(뜬다리)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동부어판장이 서쪽 해망동에는 서부어판장이 있었는데,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동부어판장의 어판고가 서부어판장의 몇 배가 되기 때문에 파시 때면 째보선창이 흥청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90년대까지도 “군산 경제는 고깃배들이 생선을 많이 잡아와야 살아난다.”는 말이 회자되었으니까요.  

 

째보선창에는 주로 안강망과 저인망 어선들이 조기, 갈치, 박대, 홍어 등을 잡아왔고, 철 따라 광어와 서대, 아귀, 복어 등이 어판장에 피라미드처럼 쌓일 때도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 조기철인 5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한 번 출어해서 3억 원이 넘는 어획고를 올린 어선도 있었습니다.    

 

‘고깃배들이 만선을 하고 들어오는 파시 때는 강아지들도 1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풍성했던 째보선창, 인심도 후해서 우연히 만난 동네 사람에게도 “동상, 싱싱할 적으 맛이나 보라고!”라며 황금빛 암컷 조기 몇 마리를 비료 포대에 담아주는 게 인사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갈고리를 허리에 감추고 다니며 선주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잡아온 생선을 육지로 옮기거나 경매를 기다리는 생선 더미 옆에서 먹이를 찾는 독수리처럼 기다렸다, 주인이 눈을 돌리는 사이에 게 눈 감추듯 갈고리로 찍어내는 좀도둑들이었습니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이었으니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지요.

 

항구도시라면 어디에나 좀도둑들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처음에는 뱃사람들과 친근한 갈매기라고 불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갈마구’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째보선창 주민들을 벗 삼아 살아가는 갈매기들이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먹고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도둑이라 하기에는 그렇고 어부들이 바다에서 작업할 때 갑판에 사뿐히 내려앉아 한 마리씩 집어먹으며 친구도 되어주고 ‘어군(魚群)탐지기’ 역할도 해주었던 고마운 갈매기에 빗대 부르기 시작한 게 오늘날 ‘갈마구’가 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생선을 훔쳤다고 하지만, 농어민들의 간까지 빼먹고도 큰소리치는 권력자들에 비하면 양반인 그들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부르지는 않았을 터. ‘옥동자’, ‘아가씨’ 뜻이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였듯 ‘갈매기’, ‘갈마구’ 역시 멋과 여유, 풍자가 넘치는 문화의 변화라고 해야겠지요. 

 

a  최근 째보선창 풍경. 복개공사로 사라졌다고 하지만, 때맞춰 출어하는 고깃배들이 많습니다. 아직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그물과 나무상자에서 뱃사람들의 고함소리와 조기를 엮던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배어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째보선창 풍경. 복개공사로 사라졌다고 하지만, 때맞춰 출어하는 고깃배들이 많습니다. 아직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그물과 나무상자에서 뱃사람들의 고함소리와 조기를 엮던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배어나는 것 같습니다. ⓒ 조종안

최근 째보선창 풍경. 복개공사로 사라졌다고 하지만, 때맞춰 출어하는 고깃배들이 많습니다. 아직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그물과 나무상자에서 뱃사람들의 고함소리와 조기를 엮던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배어나는 것 같습니다. ⓒ 조종안

 

“날이 한가한 것과는 딴판으로 선창은 분주하다. 크고 작은 목선들이 저마다 높고 낮은 돛대를 웅긋쭝긋 떠받고 물이 안 보이게 선창가로 빡빡이 들어 밀렸다. 배마다 셈 세는 소리가 아니면 닻 감는 소리로 사공들이 아우성을 친다. 지게 진 짐꾼들과 광주리를 머리에 인 아낙네들이 장속같이 분주하다···.”(소설 ‘탁류’에서)

 

 

#째보선창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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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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