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남겨진 붉은 감 한 개의 여유

등록 2009.01.03 13:07수정 2009.01.0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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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입니다.

2008년에서 2009년에서 바뀌었다는 것은 그저 시간의 연속된 아날로그적 흐름을 단속적으로 나누어 디지털적으로 구분한 단지 우리들의 상대적 인식입니다.

a  지난 가을 홋카이도를 여행할 때, 사포로의 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황소조각상. 황소는 상대와 대항할 때 항상 고개를 숙여서 뿔로 상대를 걸어 위로 떠올립니다. 그래서 증권시장에서는 상승 시세장을 불마켓Bull Market이라고 하지요. 기축년에는 모두의 형편과 살림에 불마켓이 지속되길 빌어봅니다.

지난 가을 홋카이도를 여행할 때, 사포로의 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황소조각상. 황소는 상대와 대항할 때 항상 고개를 숙여서 뿔로 상대를 걸어 위로 떠올립니다. 그래서 증권시장에서는 상승 시세장을 불마켓Bull Market이라고 하지요. 기축년에는 모두의 형편과 살림에 불마켓이 지속되길 빌어봅니다. ⓒ 이안수

지난 가을 홋카이도를 여행할 때, 사포로의 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황소조각상. 황소는 상대와 대항할 때 항상 고개를 숙여서 뿔로 상대를 걸어 위로 떠올립니다. 그래서 증권시장에서는 상승 시세장을 불마켓Bull Market이라고 하지요. 기축년에는 모두의 형편과 살림에 불마켓이 지속되길 빌어봅니다. ⓒ 이안수

 

무자년의 태양이나 기축년의 태양이나 다름이 없지만 우리들의 인식이나 의지는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전혀 다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또한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새해에 할 일 중 느슨해진 자신의 결심을 다지고 그동안 소홀했던 이웃에게 마음을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듯싶습니다.

 

저는 2008년 12월 31일 날 저녁, 2008년의 마지막 지는 해를 보기위해 헤이리 노을동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가라앉는 해를 보며 지난해의 모든 일들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제게 일어났던 일 중 감사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모티프원을 찾아주신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게 용기와 가르침을 주었고 더 신나게 살도록 부추겨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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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의 의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 일로 마음상한 것들조차 결국 제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했습니다.

의도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서 조급해지지 않는 법을 깨닫게 해준 해이기도 했습니다.

채근담에 이르기를 ‘먼저 핀 꽃이 먼저 진다’고 했습니다.

(伏久者,飛必高.開先者,謝獨早.

복구자,비필고.개선자,사독조.

知此,可以免蹭蹬之憂,可以消躁急之念.

지차,가이면층등지우,가이소조급지념.

 

오래 움츠려 있던 새가 반드시 높이 날고

먼저 핀 꽃은 홀로 일찍 지나니

이런 이치를 알면 발을 헛디딜 근심도 없을 것이고

조급한 마음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채근담(菜根譚) 후집 076)

그러므로 2008년에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에 대해 몸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2009년 새해 아침,

저는 모티프원 뒷동산으로 넘어오는 해를 맞으며 올 한 해 동안 저의 마음을 지킬 한가지의 덕목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까치밥으로 남겨진 붉은 감 한 개의 여유입니다.

제가 어릴 적 저희 시골집 주변을 둘러싼 감나무들의 잘 익은 감을 딸 때도 어른들은 장대가 닿은 곳에 있는 감이라도 몇 개를 남겨두었습니다. 그것들은 겨울동안 까치밥이 되었습니다. 수북이 쌓일 만큼의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온 천지가 흰 바탕에 붉은 감하나가 가슴속 따뜻한 심장처럼 붉게 빛났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른들이 새들의 겨울 양식으로 감 몇 개를 남겨두셨던 그 여유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삭을 줍는 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추수 후 벼이삭도 모두 줍지 않았던 어른들의 그 배려를 잊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공생을 생각했지요.

a  헤이리의 감나무는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온대성 과실인 감나무가 성하기에는 추위가 매섭습니다. 하지만 아고라의 후정에는 김연진관장님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올해도 감이 열었습니다. 아직 까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감 하나가 여전히 초겨울 햇살 속에 붉습니다.

헤이리의 감나무는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온대성 과실인 감나무가 성하기에는 추위가 매섭습니다. 하지만 아고라의 후정에는 김연진관장님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올해도 감이 열었습니다. 아직 까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감 하나가 여전히 초겨울 햇살 속에 붉습니다. ⓒ 이안수

헤이리의 감나무는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온대성 과실인 감나무가 성하기에는 추위가 매섭습니다. 하지만 아고라의 후정에는 김연진관장님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올해도 감이 열었습니다. 아직 까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감 하나가 여전히 초겨울 햇살 속에 붉습니다. ⓒ 이안수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역周易의 64괘중 박괘剝卦에 나오는 말입니다.

큰 과실을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이지요. 자기만의 욕심을 자제하고 그 뒷사람을 생각하는 나눔의 정신입니다. 바로 새들의 겨울 양식을 위해 몇 개의 감을 남겼던 그 마음일 것입니다.

 

저는 모티프원의 지붕을 넘어 저의 가슴에 처음으로 와 닿는 2009년의 첫 햇살을 받으며 올 한 해, 가슴속에 늘 ‘붉은 감 한 개의 여유’를 놓지 않을 것을 결심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까치밥 #석과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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