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6년 일하고 부자가 된 알리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기 22] 도보여행 21일(부하라 -> 밥켄트)

등록 2009.01.06 10:03수정 2009.01.0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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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밥켄트 가는 길 작은 도시와 마을이 계속 나온다

밥켄트 가는 길 작은 도시와 마을이 계속 나온다 ⓒ 김준희


부하라에서 하루를 푹 쉬고 나서 다시 길을 떠났다. 시간은 오전 9시. 호텔의 여직원은 여기서 밥켄트까지 30킬로미터라며, 부하라 구시가지를 빠져나가서 대로로 접어드는 길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구시가지를 나오기 전에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의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딘가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더라도 놀랄 것 같지 않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나는 여직원이 가르쳐준 방향을 따라서 밥켄트로 가는 큰 길로 들어섰다. 대도시 주변이라서 그런지 차량을 검문하는 경찰들이 많다. 이 경찰들은 차량에만 관심이 있지 나한테는 아무 신경도 안쓴다.

부하라를 지났으니 이제 도보횡단의 절반을 마친 셈이다. 총 1200킬로미터 중에서 이제 600킬로미터에 해당하는 반환점을 돌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을 해낸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최대의 난코스였던 키질쿰 사막을 돌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하라에서 타쉬켄트까지 어떤 어려운 지형이 펼쳐질지는 몰라도, 키질쿰 사막만큼 황량한 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걸어오면서 도보여행의 요령도 생길 만큼 생겼다. 어디서 쉬고 어디서 낮잠을 자야 하는지, 어떻게 물과 음식을 챙기고 밤이 되면 어떤 곳에 가서 재워달라고 하면 되는지 이제는 다 안다. 그러니 여기서 타슈켄트까지도 힘든 여정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20일이면 충분하다.

도로의 양옆은 목화밭이다. 조금 걷다보니까 작은 도시가 또 나온다. 우즈베키스탄은 동서로 길고 비스듬하게 생겼다. 부하라는 그 가운데쯤에 위치한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부하라의 동쪽, 그러니까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쪽에 모여 산다. 가는 도중에 이런 작은 도시가 계속 나오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작은 도시 밥켄트에 도착하다


a 밥켄트 가는 길 거리의 동상

밥켄트 가는 길 거리의 동상 ⓒ 김준희


커다란 고기만두를 두 개 먹고 다시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밥켄트에 도착했다. 오후 5시. 나는 밥켄트의 거리 한가운데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이곳에는 호텔이 없단다. 거리의 식당에 들어갔더니 여기서는 재워줄 수 없다고 한다. 이걸 어쩌나. 아까 걸어오면서는 도보여행의 요령이 생겼다고 자부했었는데, 지금은 그 요령이 어디로 사라지고 오직 당황스러움이 있을 뿐이다. 한 현지인이 말한다.

"기지드반에 가면 호텔있어요! 거기로 가봐요!"


기지드반은 여기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이 시간에 걸어서 거길 가라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서있어 보았자 아무 답도 안나온다. 가다보면 길가에 식당이 있을 것이고 그럼 거기서 재워달라고 하면 될 거다. 거기서도 쫓겨나면? 모르겠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야영을 하면 된다. 그때 내 앞에 한 대의 승용차가 나타났다.

"내가 재워줄게요! 돈 필요 없어요!"

이건 또 웬 행운인가. 그는 활짝 웃으면서 큰소리로 차에 타라고 권한다. 짐을 모두 트렁크에 싣고 승용차는 도시의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가 새로 만들고 있는 넓은 집이 있다. 공사중이라서 밤에는 아무도 없는 그 집에서 나더러 자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은 또 독특한 경험을 하게 생겼다.

그의 이름은 아키람. 나는 그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시멘트 건물에는 방이 여러개다. 이 정도 집을 짓고 살 정도면 아키람도 꽤 잘사는 축에 속할 것이다. 공사중이라서 그런지 마당에는 모래먼지와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다.

나에게 보여준 방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먼지가 쌓여 있고 먹다 남은 술병도 있다. 아키람은 청소부터 시작했다. 작은 빗자루를 꺼내오더니 마당을 쓸기 시작한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는 마당에 있는 펌프에서 물을 받았다.

아키람이 마당을 쓸면 나는 양동이에 받은 물을 마당에 뿌렸다. 그렇게 마당을 다 청소하고 방도 정리했다. 쓰레기를 모두 모아서 바깥으로 내보내고 방바닥을 쓸었다. 이러고 나니까 집같은 모습이다. 아키람은 나에게 열쇠를 건네준다. 밤에 잘 때는 방문과 대문을 꼭 잠그고, 내일 아침 9시에 자기가 올테니까 그때 열쇠를 돌려달란다. 그리고 아키람은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커다란 집을 통째로 하룻밤 빌리고

a 아키람의 집 마당을 청소했다

아키람의 집 마당을 청소했다 ⓒ 김준희


a 아키람의 집 이 방에서 하룻밤을 자야한다.

아키람의 집 이 방에서 하룻밤을 자야한다. ⓒ 김준희


공짜로 잘 곳이 생겨서 좋기는 하다. 그런데 아키람은 뭘 믿고 나한테 열쇠를 맡겼을까. 생전 처음 보는 이 외국인이 열쇠를 가지고 튀거나, 아니면 무슨 나쁜 행동을 할지도 모를텐데. 어쨌거나 일단 뭔가를 좀 먹어야 한다. 나는 다시 거리로 나와서 길을 익히며 걷다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때 바깥에서 들려온 한국말.

"한국에서 왔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식당으로 들어오는 그 현지인에게 내가 물었다.

"한국말 할 줄 알아요?"
"네,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했거든요."

1969년 생인 알리는 2002년부터 6년 동안 한국에서 일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한국대사관에서 장기간의 정식취업비자를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알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선 우리는 식당의 탁자에 앉았다.

"내가 일단 맥주 한 병 사줄게요. 나 돈 있으니까."

내가 나이를 말하자 그는 자기가 형이라면서 맥주를 권한다. 6년 동안 한국에 있어서인지 한국말이 능숙하다. 알리는 2002년에 15일짜리 비자를 받은 후에 한국에 들어와서 취업을 하고 눌러앉았다. 불법취업을 한 것이다. 그러다가 2003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불법외국인노동자들에게 정식으로 취업비자를 주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알리의 신분은 합법적 노동자로 바뀐 것이다.

"한국 사람들 다 좋아요. 회사 사장님, 공장장님, 식당 아주머니 다 좋아요."

알리는 대구에 있는 공장에서 일했다. 처음에 취직했을 때는 한 달에 85만원을 받았는데 경력이 쌓이면서 월급도 늘었다. 나중에 그만둘 때쯤에는 한 달에 150만원 가까이 벌고, 잔업을 하면 200만원도 가능했단다.

한국에서 일했던 알리와 함께 술자리

a 밥켄트의 식당 가운데가 알리, 좌측은 식당 주인

밥켄트의 식당 가운데가 알리, 좌측은 식당 주인 ⓒ 김준희


6년 동안 열심히 일한 그 돈을 모아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귀국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을 한 셈이다. 고향인 밥켄트로 돌아온 알리는 이곳에서 목재공장을 차려서 지금 성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법노동자에서 사장님으로 신분이 변한 것이다.

"처음에 불법취업했을 때 겁나지 않았어요?"
"아뇨, 겁 안 났어요. 어차피 다 각오하고 갔던 거라서."

회사에서 숙식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생활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단다. 일종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같은 우즈베키스탄 동료들끼리 모여 술자리도 자주 갖고 양고기 꼬치구이도 만들어 먹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돼지고기를 못 먹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돼지고기를 많이 즐겼고 지금은 한국라면과 김치가 그립다고.

"나 돼지고기에 소주 2-3병도 먹어요. 김치찌개에도 소주 잘 먹어요."

우리가 맥주를 마시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자 식당의 주인도 합류했다. 그는 연신 음식을 내오면서 먹으라고 권한다. 알리가 나한테 오늘 어디서 잘 거냐고 묻자 그제서야 아키람 생각이 났다.

"아키람이라는 사람이 나한테 집을 빌려줬어요."
"아키람 알아요. 내가 전화할테니까 그냥 우리집으로 가요."

그러더니 휴대폰을 꺼내서 아키람한테 전화를 한다. 역시 이곳도 좁은 지역사회다. 잠시 후에 아키람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다같이 보드카를 마시면서 떠들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리의 집으로 잠자리를 옮기려니까 나를 위해서 애써준 아키람한테 좀 미안하다. 아키람의 집에서 짐을 모두 꺼내오고 아키람에게 열쇠를 건네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아키람과 헤어져서 알리의 집으로

그리고 알리의 승용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남의 집에 가면서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 나는 중간에 있는 상점에서 과일과 아이들에게 줄 과자를 조금 샀다. 알리의 집에 도착하자 그의 어머니와 부인, 3명의 자녀가 날 맞아준다.

알리의 집은 크고 깨끗하다. 수세식 화장실에 상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우즈베키스탄의 지방에서는 대단한 것이다. 거기다가 대형 텔레비전에 냉장고와 에어컨, 오디오, 진공청소기까지. 컴퓨터만 빼고 이 집에는 없는 것이 없다. 내가 자리에 앉자 알리는 또 술을 내온다. 탁자에는 빵과 과일이 안주로 놓여 있다.

"여기 와서 꿀 먹었어요? 여기 꿀은 진짜 꿀이에요."

작은 그릇에 담긴 꿀을 나한테 권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서 생겨난 꿀이니 진짜겠지.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꿀도 조금씩 맛보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면 좋을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6년 동안 알리는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을까.

한국사람들 좋고 한국음식 맛있다고 말하지만, 타향살이를 하다보면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텐데.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결국 보상을 받은 것이다. 지금 알리는 밥켄트에서 손꼽히는 부자이자 사장님이 되었다. 40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텔레비전에서는 우즈베키스탄과 이란이 축구경기를 펼치고 있다. 알리와 나는 그 경기를 보면서, 술을 마시고 얘기하다가 같이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누웠다. 오늘은 여러가지로 운이 좋았던 하루다.

a 알리의 집에서 알리와 그의 가족들

알리의 집에서 알리와 그의 가족들 ⓒ 김준희

#우즈베키스탄 #도보여행 #중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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