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인 가라사대, 공놀이엔 베컴보다 효도르

[자전거 세계일주 85] 멕시코 몬테 알반(Monte Alban)

등록 2009.01.12 09:38수정 2009.01.1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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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테 알반 전경

몬테 알반 전경 ⓒ 문종성


아메리카 고대 문명이 다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면이 있다.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는 바로 이런 미세한 점에 흥미를 느끼고 연구한다. 여행자는? 그들이 밝혀놓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감탄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고대인들의 문화를 간접 체험하는 낙으로 간다. 테오티우아칸의 규모에 이미 압도당했기에 성급히 몬테 알반을 지나치려 했지만 이 지역에 발을 디딘 이상 반드시 들러야 한다는 조언에 방문하기로 했다. 숨소리마저 말려 태울 듯한 아주 뜨거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아하까(Oaxaca) 주의 대표적 유적으로 꼽히는 몬테 알반. 스페인어로 몬테는 '산'이고, 알반은 '흰색'이다. 즉 번역하면 '하얀 산'인데 스페인 정복자들이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산 정상에 덮고 있는 흰 꽃 때문에 산이 하얗게 보여서 몬테 알반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2000m 높이의 산에 황량하게 남겨진 땅과 전략적 위치 때문에 요새처럼 지어진 유적만 보여주고 있다. 그런 연유로 다시 이름을 짓는다면 명백히 '노란 산(몬테 아마리요, Monte Amarillo)'이 맞을 것이다.


a Observatorios Astronomicos  천문관측소. 대략적인 우기시즌을 전망해 농사 일정을 계산했다. 또한 주요한 문제에 대한 예언을 했던 곳으로도 생각된다.

Observatorios Astronomicos 천문관측소. 대략적인 우기시즌을 전망해 농사 일정을 계산했다. 또한 주요한 문제에 대한 예언을 했던 곳으로도 생각된다. ⓒ 문종성


a  해시계

해시계 ⓒ 문종성

여하튼 그 땐 정복자의 입장으로 새로운 땅을 보는 감격에 승리의 꽃발이 날린 하얀 산이었을 몬테 알반엔 여느 유적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은 거의 나왔다.

수만 명의 군중들이 한데 모였을 거대한 광장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제사 드리던 신전 및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피라미드와 비밀스런 지하 통로로 들어가는 입구와 무덤, 여러 조각으로 새겨져 당시 사회상을 말해주는 비석, 우기를 예측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는 용도로 농경생활에 꼭 필요했던 천문대와 시간과 날을 세는 데 사용된 해시계…. 특별할 것 없는 익숙한 장면들이었다. 하나 더, 여기엔 구기경기를 벌였던 운동장이 있었다.

B.C 100년 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측된, 흡사 축구 경기장처럼 보이는 틀라츠틀리. 이곳에서 하는 공놀이는 그 자체가 메소아메리칸들의 경기이자 곧 종교적 의식이었다.

이 경기방식은 너른 운동장을 갖고 있으면서 특이하게도 발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유자재로 쓰는 손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단지 엉덩이와 무릎, 팔꿈치를 써서 경기장 앞뒤로 시각형으로 패인 상대방 골문에 골을 넣어야 한다.

특이한 신체부위로 경기를 치르는 것이 언뜻 핸디캡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식축구 저리가라 할 정도로 꽤나 거친 몸싸움을 즐겼을 가능성이 크다. 무릎과 팔꿈치로 상대방을 가격한 경우의 충격은 지레짐작이 가능하다. 그들은 스포츠가 곧 격투요, 전쟁의 축소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좌우로 보이는 관중석에서의 격렬했던 그 때 그 함성이 바람을 타고 들리는 듯하다. 


 공놀이는 그 자체가 메소아메리칸들의 경기이자 곧 종교적 의식이었다.

공놀이는 그 자체가 메소아메리칸들의 경기이자 곧 종교적 의식이었다. ⓒ 문종성


a 무척 더운 날 몬테 알반 신전을 배경으로 필자

무척 더운 날 몬테 알반 신전을 배경으로 필자 ⓒ 문종성


선수들은 베컴이 아니라 효도르가 되어야 했을 터

모든 스포츠에는 결과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물이 있다. 하다 못해 명예라도. 그들은 토지나 곡물, 그 밖의 보상물을 두고 다른 부족과 경기를 치르거나 때론 이런 형식 뒤에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를 부족간의 화합을 위한 싸움이 가능했다. 하지만 말이 경기지 이들에겐 치명적인 종교적 제의가 뒤따른다.


즉, 이기는 자는 신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명예를 삼지만 지는 자는 그 반대의 경우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 바로 신의 제물로 제단에 바쳐지는 것이다. 신의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상대방을 끝내 제압해야 하는 경기, 경기장 안에서는 아마 베컴이 아니라 효도르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소 아담해 보이는 몬테 알반은 여전히 발굴이 덜 된 미지의 유적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정교하다고 하는 170여개의 미발굴 무덤이 땅 속에 잠자고 있으며 무덤에서 출토된 금, 은, 구리, 뼈 등으로 만든 장신구부터 토기에 이르는 부장품(副葬品)을 통해 16세기 스페인에 정복될 때까지 이곳을 점거했던 당시 믹스텍 족의 사회상을 알아보는 것과 이곳 사람들이 섬긴 여러 신들의 의미에 대한 조사는 아직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고 있다.

또한 발굴된 유물로만 추측 가능한 당시 발달한 의술에 대한 신비도 풀리지 않고 있다. 곳곳에 널려진 돌비석들을 한데 모아 놓은 곳엔 여러 사람형상들이 독특한 자세로 새겨져 있어 '춤추는 남자들의 비석'이라고 가리키지만 여기에 대해 춤이 아닌 다른 형태라며 많은 논란들이 대립해 있다.

먼저 제물의식 설이다. 사실 이곳은 사보떼까의 성스런 수도였는데 사뽀텍(Zapotec)은 메소아메리카의 가장 오래된 문명인 올메까 문화의 영향 아래 이뤄졌다. 그래서 올메까의 신관을 겸한 귀족에 의해 건설된 일종의 식민 도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더구나 테오티우아칸의 건축양식을 쏙 빼닮은 덕에 그들의 문화처럼 식민지화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해 포로나 반역자, 어쩌면 경기에서 진 자들을 죽이는 제물의식이 발달했을 거라 여긴다. 장대한 석조 피라미드에 사용된 석판에는 벌거숭이 남자가 양각되어 있는데 바로 고대 멕시코의 인신공양 풍습이라는 것이다.

a  두개골의 구멍이 뇌수술 흔적이 맞다면 의학이 발달한 당시 문명을 말해 주는 것이다.

두개골의 구멍이 뇌수술 흔적이 맞다면 의학이 발달한 당시 문명을 말해 주는 것이다. ⓒ 문종성


a Lapidas de Conquista  정복의 비석은 B.C 100~ A.D 200년 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비석이 그려진 목적은 자신의 군대가 강하다는 것을 민중들에게 알리고 또한 외국인들에게는 불길한 메시지를 안겨 주는데 있었다.

Lapidas de Conquista 정복의 비석은 B.C 100~ A.D 200년 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비석이 그려진 목적은 자신의 군대가 강하다는 것을 민중들에게 알리고 또한 외국인들에게는 불길한 메시지를 안겨 주는데 있었다. ⓒ 문종성


a Edificio de los Danzantes  춤추는 남자들의 비석. 하지만 이것이 춤을 추는 장면인지는 논란이 있다.

Edificio de los Danzantes 춤추는 남자들의 비석. 하지만 이것이 춤을 추는 장면인지는 논란이 있다. ⓒ 문종성


춤일까 제물의식일까 아니면 의술행위일까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람을 살리는 의술행위를 그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증거로 뇌수술을 한 것으로 추정된 구멍 뚫린 해골 유물과 피라미드의 수술실(여기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없다)로 추정되는 곳들을 제시한다. 춤추는 남자들이 새겨진 비석은 그것들이 춤이 아닌 의술 과정을 표현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그 비석들을 바로 병원터에서 찾은 정황은 설득력을 더욱 공고히 해준다.

지나친 비약일지는 모르지만 병에 대한 치료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포로들을 상대로 의료 테스트를 했을 여지도 조금은 없지 않을까. 비석에 새겨진 것이 단순한 춤일지, 제물의식일지, 아니면 의술행위인지는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를 사용했던 몬테 알반 사람들만이 그 진정한 뜻을 알리라.

몬테 알반을 다 둘러보니 메마른 바람에도 속옷까지 땀으로 흥건해졌다. 나무 그늘과 한 잔의 콜라만이 이 순간 내 친구가 되어 준다. 오랜 세월에 걸쳐 더디 이룩된 문명을 단 한 순간 바라보며 그것을 다 알아챈 듯 이해하려 드는 것이 참 오만방자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제를 이해하고,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그려보는 것이 필요할 땐 지금의 경험이 뜻하지 않은 지혜가 될지 모른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은 시간에 맡겨 두자. 어쩌면 밝혀지지 않는 것이 더 좋을지 모른다. 인간의 역사는 호기심으로 점철된 것이니.

아참, 무엇보다 몬테 알반에는 신비주의자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더해진다. 몬테 알반이 속해 있는 올메까 문화와 뿌리를 같이하는 마야인들의 역법에 의하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허풍으로 만든 지구종말설이 그 베일을 벗는데 바로 2012년 12월 23일 지구가 멸망한단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다행히 내 자전거 세계일주가 그 때 쯤 끝이 나니 그다지 원은 없을 것 같긴 하다. 나는 내세가 있다고 믿는 구제불능 낙천주의자니까.

a  너무나 시원했던 나무 아래 그늘. 몬테 알반에는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가 거의 없다.

너무나 시원했던 나무 아래 그늘. 몬테 알반에는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가 거의 없다. ⓒ 문종성

덧붙이는 글 | 몬테 알반 안내는 현지 선교사님이신 이리나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몬테 알반에 대한 사실은 '설'에 기초한 것들이 있어 그곳에 관해 설명하는 것에는 가이드마다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덧붙이는 글 몬테 알반 안내는 현지 선교사님이신 이리나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몬테 알반에 대한 사실은 '설'에 기초한 것들이 있어 그곳에 관해 설명하는 것에는 가이드마다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멕시코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라이딩인아메리카 #몬테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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