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우리 할머니

커피와 담배

등록 2009.01.16 15:05수정 2009.01.1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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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시 요로코롬 달달 하다냐?”

 

어떻게든 담배 피우시는 걸 말려보려고 무작정 커피를 타 할머니 앞에 디밀었다. 커피와 프리마와 설탕 2:3:2의 비율로. 한 모금 하시더니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너나 마시라, 이 달달 한 것.”

 

식구가 많아 끼니 때가 돌아오는 게 가장 싫었다는 할머니의 어머니는 순전히 입 하나 덜어보려고 열다섯 살 다섯 째 딸내미를 서른여덟 할아버지께 시집보냈다. 이 어린 소녀는 매일 밥하고 빨래하고 농사짓고 자신보다 나이 많은 시동생들 뒷바라지에 매일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단다.

 

몸이 아파 밤새 골골거리면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를 살짝 깨워 집 뒤 켠 광으로 데려갔다. 자신도 한 대 태우고, 안스러운 어린 아내에게도 한 대 건넸던 담배. 할머니는 그때 담배를 배웠단다. 처음엔 멋모르고 받아 피우던 담배가 할머니에게는 어느새 시어머니의 무서운 눈초리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을 살짝 잊게 만드는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

 

우리 할머니는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 지금도 할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려한다. 여덟 되는 자식을 다 키우고도 모자라 장남인 내 아버지의 자식 셋을 다시 15년이나 키우셨다. 내가 그 중 셋째다. 어려서 할머니와 한 방을 썼던 나는 늘 매캐한 담배연기 속을 살았고, 할머니 담배 심부름은 늘 내 몫이었다. 그렇게 60년 가까이 매일 담배와 소주로 시름을 잊던 할머니는 폐암 말기를 선고받으셨다. 그런데도 매일 그것들만 찾으셨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제 와서 평생 하던 걸 안 한 다냐. 그런 것이 정 없는 거시여야."

 

프리마와 설탕을 빼고, 커피만 두 어 스픈 저어 다시 디밀었다. 달지 않아서였을까.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두어 모금 드시더니 이내 쭉 들이키셨다. 그것이 마치 술 인양. 쓰디 쓴 것이 묵을 만 하다시며. 평생 인생의 쓴 맛만 보시 분이 어찌 이리 쓴 것만 좋아하실까. 어린 나는 알 수 없었다.

 

의사는 몇 달 못 넘길 거라 했지만 할머니는 그 뒤로 1년 반을 더 사셨다. 그때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커피 두 잔씩을 꼬박 꼬박 드셨다. “쓴 맛이 혀끝에 남는 것이 영판 좋아야~” 그럼 담배는 안했냐고? 글쎄.

 

할머니 돌아가신 지 15년째다. 다 식은 커피 한 잔을 단박에 넘기시고 입술을 닦으시던 할머니. 가끔 식어버린 커피를 한 번에 마시고 나도 할머니처럼 입술을 닦아낸다. 그것이 술 인양.

2009.01.16 15:05ⓒ 2009 OhmyNews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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