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밴 파크에서의 첫날밤

호주 대륙 자동차 여행

등록 2009.02.22 12:28수정 2009.02.2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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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뭐기에

세상을 살다 보면 삶의 진로를 바꾸어 놓은 전환점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도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긴 하지만 되돌아 보면 몇 번 내 삶의 진로를 바꾸어 놓은 일이 있었다. 선생이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농촌개발 사업을 한답시고 오지를 돌아다니다가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 뜻하지 않게 호주로 떠나온 것들을 꼽을 수 있겠다.


내가 계속 선생을 하고 있었다면! 내가 호주로 오지 않고 한국에 살고 있었더라면! 아마도 나의 모습은 나의 사고방식을 포함하여 지금의 나와는 현저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어떠한 삶이 더 바람직한 삶이었을까? 인간이 동시에 두 삶을 살 수 없는 것이 기정사실인 바에야 우리는 어떠한 길을 걸어왔더라도 또 다른 길을 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은 있으리라.

호주에 이민을 와서 시드니에 정착한 지 16년이 되었으니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 보자고 아내와 결정을 했다. 우리 생각대로 일이 진행 된다는 보장은 없어도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보았다. 먼저 시드니를 떠나 다른 곳에서 나머지 인생을 살아보자는 의견에 일치를 보았다. 우리보다 어렵게 사는 나라 혹은 호주의 오지에 들어가서 몇 년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자원 봉사도 신청해 놓았다.

자원봉사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호주 여행을 하기로 했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떠나기로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16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만들어 놓은 인연과 관계를 멀리하고…….

가까운 이웃이 공통으로 물어오는 “왜”라고 하는 질문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왜 사냐곤 웃지요’ 라는 어느 시인의 중얼거림이 생각나 한번 멋적은 웃음을 보여 줄 뿐이다. 사실 나도 모르니까…

지도책을 샀다. 어디로 갈까? 호주는 넓은 대륙이다. 흔히 이야기하기를 남한의 80배쯤 된다고 한다. 호주에 처음 이민 왔을 당시 호주 지도를 보며 이웃사람들과 나누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넓은 호주를 자동차로 한 바퀴 돌아 보면 어떨까? 기름 값만도 꽤 많이 들을 것 같은데, 도로는 잘 되어 있을까? 중간에 자동차가 고장 나면 어떻게 하나? 내륙에는 물이 없는 사막이 있다고 하던데 등등. 그 당시 이야기를 같이 나누었던 분들은 아직도 열심히 시드니에서 바쁘게 살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우선은 따뜻한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가자. 발길 닫는 대로가 아닌 자동차 바퀴 굴러가는 대로 떠나기로 했다. 무리하게 운전하지 말고 가능하면 낮에만 운전을 하는 것으로 원칙을 세우고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고래 잡으러 가자….”  송창식 노래를 들으며……..

캐러밴 파크에서의 첫날밤


a  캐러밴 파크에 자그마한 텐트를 치며 긴 여정의 첫날밤을 준비한다.

캐러밴 파크에 자그마한 텐트를 치며 긴 여정의 첫날밤을 준비한다. ⓒ 이강진


호주는 한국과 반대되는 것이 많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춥고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따듯하다. 집도 남향집보다는 북향집을 더 선호한다. 한국에서 가장 더운 6월. 7월이 이곳은 가장 추운 겨울이다. 자동차도 오른쪽이 아닌 왼쪽 통행이다. 따라서 길을 건널 때에는 오른쪽을 먼저 보고 건너야 한다. 처음 이민 와서 왼쪽 한번 힐끗 보고 생각 없이 건너려다 아찔한 일을 당할 뻔 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습관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시드니에서 1번 도로인 패시픽 하이웨이[Pacific Hwy]를 따라 따뜻한 북쪽을 향하여 떠났다. 여행을 하면서 음악도 듣고 필요 없는 것은 정리도 할 겸해서 집에 있는 음악 테이프를 몽땅 가지고 나왔다. 운전을 하는 동안 음악을 들으며 다시는 들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 되는 테이프를 한두 개씩 버리기 시작하니 2/3 이상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할까? 꼭 필요한 것만을 가지고 살 수는 없을까? 법정 스님의  “무소유” 라는 수필집이 생각난다. 그래 가진 것이 없으면 없을 수록 편한 것이 세상살이인 것을……

6시간의 운전 끝에 커다란 바나나 조형물이 있는 콥스 하버[Coffs Harbour]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이곳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조금 더 북쪽에 있는 그라프톤[Grafton]까지 가기로 했다. 산길이 좋을 것 같아 Pacific Hwy로 가지 않고 산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산길에 접어들자 자그마한 동산들 전체에 바나나를 키우는 농장이 보인다. 듣던 대로 콥스 하버라느 동네가 바나나 도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바나나는 너무 비싸서 먹어볼 엄두도 못 내는 비싼 과일이었다. 어렸을때 어머니가 길거리에서 사준 시들은 바나나 맛이 아직도 내 입안에서 돌고있다면 믿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바나나를 즐기는 편이다. 인도의 농촌에서 두어 달간 머문적이 있었다. 그때, 주는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바나나를 거의 주식으로 하다시피 하면서도 물리지 않은 경력이 있다.

바나나 농장이 있는 아름다운 산길을 따라 그라프톤[Grafton]에 도착했다. 도시에 들어서면서 숙박[Accommodation]표지판을 보고 따라가다가 “Big 4”라는 그룹에 가입되어 있는 캐러밴 파크[Caravan Park]에 도착했다.

먼저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캬라반 파크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해보자. 호주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텐트를 친다든가 차 안에서 잠을 잘 수 없다. 그러나 캐러밴 파크라는 저렴한 숙박시설이 곳곳에 있다. 이곳에는 화장실, 샤워실과 부엌 등 숙박에 필요한 시설이 되어 있으며 캐러밴이라 불리는 침대차를 끌고 와서 쉬는 사람도 많다. 물론 나처럼 텐트를 치는 사람도 많으며 심지어는 이곳을 집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Big 4에 가입되어 있는 캐러밴 파크는 다른 곳에 비해 값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이곳 캐러밴 파크는 부엌시설이 잘 되어 있다. 우리가 새로 사서 처음 치는 텐트는 좋기는 하지만 너무 작아 텐트 안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만 자는 것으로서 만족해야 했다. 조금 큰 텐트로 준비할 걸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텐트 생활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텐트 천에 물 끼가 서려 있을 정도로 생각 보다는 추운 날씨였다. 그러나 다행히 전기담요를 준비해왔기에 따듯한 밤을 지낼 수 있었다. 텐트하나 끼고 떠돌이 생활을 할 텐데, 첫날밤은 잘 지낸 편이다.

덧붙이는 글 | 2004년에 여행한 이야기 입니다. 시드니의 동포 잡지에서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4년에 여행한 이야기 입니다. 시드니의 동포 잡지에서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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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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