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갈의 고장' 강경 주민들이 머리띠 둘러맨 까닭

논산시, 법원·검찰청·경찰서 이전 계획에 총궐기

등록 2009.02.24 17:17수정 2009.02.2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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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막으로 뒤덮인 강경읍내 거리
현수막으로 뒤덮인 강경읍내 거리심규상

"26일 오전 10시, 복개 천으로 모이세요!"
"읍민 여러분, 살기를 원하시면 총궐기합시다"

23일 오후 찾은 충남 논산시 강경읍내는 확성기에서 내뿜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읍내 거리 전체는 천 글씨로 넘쳐났다. 버스정류장 부근에서는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강경읍 주민들이 머리띠를 둘러맸다. 강경읍에 위치한 대전지법 논산지원과 대전지검 논산지청, 논산경찰서 등 3개 기관을 논산시내로 이전하려 하자 반발하고 나선 것.

이에 앞서 대전지법 논산지원과 대전지검 논산지청은 자체적으로 논산세무서와 인접한 논산시 강산동 57-1 일원을 신청사가 들어설 최적의 부지로 선정한 뒤 논산시에 도시재정비계획 수립 등 정책적 협조를 요청한 상태다. 이곳은 논산시청과도 지근거리다. 

이들 기관은 "강경읍에 있는 현 청사가 노후하고 비좁아 민원인들의 불편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다 늘어나는 사법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신청사로의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논란이 확산된 것은 임성규 논산시장이 이들 기관의 입장에 사실상 맞장구를 치면서부터다. 임 시장은 지난 달 5일 강경읍 연두 순방에서 이들 기관을 강경읍에 존치시키는 데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강경읍 주민들이 3개 청사 논산이전에 반대하는 서명을 벌이고 있다.
강경읍 주민들이 3개 청사 논산이전에 반대하는 서명을 벌이고 있다. 심규상

임 시장은 이날 "(존치여부는) 그들 기관(법원·검찰·경찰서)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며 "강경읍민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게 할 수는 없다"는 말로 3개 기관의 논산시로의 이전에 동조하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임 시장은 지난 2004년 시장선거 후보자 때 3개 기관의 논산시 이전에 반대하는 강경주민들의 시위현장을 방문해서는 "3청사는 강경읍에 있어야 한다"며 "내가 지킬 테니 강경읍민은 안심하라"고 말한 바 있다. 시장 임기를 1년여 남겨놓은 때에 입장을 뒤바꾼 것.

'내가 지킬 테니 안심하라'던 논산시장... "3개 기관 뜻에 따라 이루어질 것"


강경주민들은 즉각 '3개 청사 강경읍내 신축이전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강경읍내에 대체 이전부지를 제시하는 한편 3개 기관 지키기에 나섰다.

주민들은 이들 기관의 논산시(강산동) 이전에 반대하는 서명운동과 결의대회에 이어 오는 26일 오전 10시에는 논산 시청 앞에서 대규모 궐기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주민들이 3개 기관의 논산시로의 이전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강경읍의 급속한 붕괴다.

 강경읍에 사는 서상길(72). 그는 37년 전 3개 청사 논산이전을 막기위해 혈서를 썼다. 당시 혈서를쓰기위해 잘린 새끼 손가락을  내보이고 있다.
강경읍에 사는 서상길(72). 그는 37년 전 3개 청사 논산이전을 막기위해 혈서를 썼다. 당시 혈서를쓰기위해 잘린 새끼 손가락을 내보이고 있다. 심규상

3개 청사 강경읍내 신축이전 대책위' 윤석일 공동대표(강경제일감리교회 목사)는 "3개 청사가 떠날 경우 인구 감소로 강경의 급격한 몰락이 자명하다"며 "이전을 하려면 논산시가 아닌 강경읍내로 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공동대표는 "3개 청사를 논산시로 옮길 경우 부속기관인 등기소를 비롯해 유관기관인 변호사·법무사 사무실 등도 모두 이전해  강경읍은 면 단위로 전락할 것"이라며 "해마다 인구가 줄고 잇는 판에 사람을 쫓아내는 정책이 추진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경읍에 사는 서상길(72)씨는 기자에게 잘린 새끼손가락을 내보였다.

"정확히 37년 전에 3개 청사를 논산으로 이전하려고 해 그걸 막으려고 이 자리에서 손가락을 끊어 혈서를 썼어요.  이 고생해가며 지켰는데 틈만 나면 떠나려고만 하니 분통이 터져요"

서씨는 "3개 기관과 시청에서는 민원인 불편을 말하고 있지만 논산에서 강경까지 고작 자동차로 5∼10분 거리에 불과하다"며 "민원인들의 불편을 내세우고 있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10월 임성규 논산시장(위 사진 왼쪽과 아래 사진 오른쪽)이 강경읍을 방문해 "3개 청사는 내가 지키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4년 10월 임성규 논산시장(위 사진 왼쪽과 아래 사진 오른쪽)이 강경읍을 방문해 "3개 청사는 내가 지키겠다"고 밝혔다. 심규상
"37년 전 혈서 쓰며 이전 저지...
또 손가락 끊어야 하나"

이와 관련 지난 2004년 4월 강경주민들이 충남발전연구원에 의뢰한 '강경읍 3개 공공기관 이전논의에 대한 기초연구' 결과 자료에는 "3개 기관의 이전하려는 표면적 이유로 민원인 접근 어려움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근본적 이유는 이들 기관이 논산시 중심이 아닌 읍 지역에 위치해 있음으로 인한 기관 및 근무 직원들의 위상약화 우려로 판단된다"고 단정했다.

이 연구보고서는 또 "강경읍 3개 기관의 민원 인구는 연간 15만여명에 달해 강경을 지탱하는 실질인구는 3개 기관을 찾는 민원인"이라며 "3개 기관이 논산시로 이전할 경우 민원인은 물론 젓갈시장 방문인구가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3개 기관이 떠나면 곧 이어 회계 관련 서비스업, 주변 음식점(220개 업체), 금융기관 이전으로 이어져 강경읍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였다.

주목할 만한 대목이 또 있다. 연구보고서는 "3개 기관 이전에 따라 유출되는 인구(약 3000∼5000명)는 논산시가 아닌 대전 등 대도시로 떠나 논산시세 마저 위축될 것이 자명하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이 같은 연구보고서를 뒷받침할 실제적인 자료가 나왔다. 윤 공동대표가 자신이 속한 강경제일교회 신도들의 최근 4년간의 이주 현황을 분석한 것. 이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강경을 떠난 강경교회 신도 183명 중 61.7%인 113명이 서울 또는 대전 등 대도시로 떠났고 인근  논산시 또는 계룡시로 떠난 인구는 34명(18%)에 그쳤다.   

충발연 연구보고서 "논산 이전, 진짜 이유는 읍 지역 위치따른 위상약화"

 '3개 청사 강경읍내 신축이전 대책위' 윤석일 공동대표(강경 제일 감리교회 목사)
'3개 청사 강경읍내 신축이전 대책위' 윤석일 공동대표(강경 제일 감리교회 목사)심규상

연구보고서가 논산시에 제시한 대안은 '교류인구를 촉진하는 전략 추진'이다. 보고서는 "3개 기관은 강경읍에서 제시한 읍내 신축예정부지에 존치시켜 건물 노후화와 주차장 확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논산시는 상업을 비롯한 고차산업기능을 강화해 상호 교류를 통한 동반성장에 힘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경에서 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병수 씨는 "논산시가 강경포구 옛 모습 재현사업과 강경포구 환경정비사업 등에 수천억 원을 쏟아 붓고 있다"며 "3개 청사의 논산 이전 추진은 이율배반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경은 조선시대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함께 3대 시장으로 꼽히고 일제강점기에도 상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호남고속도로 개통과 교통 발달로 교통요충지 자리를 내주면서 1960년대 중반 3만여 명에 이르던 인구는 지난 해 말 기준 1만3000여명으로 대폭 줄었다.

강경에 있는 법원 검찰청 경찰서에 근무인원은 모두 228명(경찰서 150명, 법원 44명, 검찰청 34명)으로 관할구역인 논산시와 부여군 주민 수는 약 22만여 명에 이른다.

 강경에서 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병수 씨가 대전지법 논산지원과 대전지검 논산지청을 이용하는 인근 부여, 논산 지도에서 강경읍을 가르키고 있다. 한 씨는 강경읍이 한 중앙이여서 주민들의 이용이 오히려 편리하다고 역설했다.
강경에서 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병수 씨가 대전지법 논산지원과 대전지검 논산지청을 이용하는 인근 부여, 논산 지도에서 강경읍을 가르키고 있다. 한 씨는 강경읍이 한 중앙이여서 주민들의 이용이 오히려 편리하다고 역설했다. 심규상

#논산시 #강경읍 #논산지청 #논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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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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