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막장대학?... <조선> 보도가 더 막장"

숭실대 재학생들, '대학강의 실태' 왜곡보도에 '부글부글'

등록 2009.03.02 09:22수정 2009.03.0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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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선일보>가 보도한 숭실대학교 강의평가 기사

<조선일보>가 보도한 숭실대학교 강의평가 기사 ⓒ 화면캡처

<조선일보>가 보도한 숭실대학교 강의평가 기사 ⓒ 화면캡처

"우리 학교에 이런 엉망인 교수들이 이렇게 많았어요? <조선일보> 기사 보면 다른 대학 친구들한테 창피할 정도로 '막장 대학'처럼 나왔던데…."

 

숭실대가 지난달 25일 <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기절초풍 대학강의 실태>라는 책을 출간한 후부터 떠들썩하다.

 

<조선일보>가 이 책의 내용 중 부정 사례들만을 보도해 학교 이미지가 실추됐다는 것. 이를 두고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과 일부 교수들까지 <조선일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필자 또한 지난달 26일, 포털사이트에서 <조선일보>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는 '왜 숭실대학교는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책을 출간했을까' 내심 궁금했다. <조선일보> 기사만 보면 정말 '누워서 침뱉기'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숭실대학교가 낸 책에는 실제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실상을 알아봤다.

 

<대학강의 실태>, 실제 책 내용 살펴보니

 

최근 600부가 발행돼 교수와 강사 등에게 배포된 이 책은 총 173페이지 16섹션으로 이뤄져 있다. 또 섹션별로 긍정 사례와 부정 사례 그리고 문제점에 대한 해결 팁(TIP)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이 책은 최근 3년간 전체 교수와 강사들을 대상으로 학생들이 실시한 강의평가에서 나온 학생들의 주관적 의견을 모아 정리한 것으로 책 내용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 음담패설도 수업인가요? vs. 수업과 연관된 교수님 경험담은 좋아요

▲ 강의계획서 따로, 수업 따로 vs. 5분의 낭비도 없는 강의계획서

▲ 맘대로 휴강 멋지십니다 vs. 휴강 한 번 없이 늘 먼 곳에서 달려오시는 교수님

▲ 교수님, 외계어 하십니까? vs. 이해할 때까지의 강의, 멋집니다

▲ 선생 교환 여부 가능합니까? vs. 교수님, 존경합니다

 

한마디로 긍정 사례와 부정 사례를 반반씩 담고 있다. 실제 글을 싣는 순서와 분량만 보더라도 긍정과 부정 사례는 각각 5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보도는 부정 사례 부분만 인용했을 뿐 긍정 사례는 단 한 건도 다루지 않았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에 대해 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조아무개(28)씨는 인터뷰 도중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를 완전히 막장처럼 써놨어요. 자기 반성하겠다고 좋은 취지로 강의 평가 내용을 공개했는데 좋지 않은 내용만 콕 집어서 우리 학교 교수님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기사를 쓰다니…. <조선일보>가 우리 학교 교수님들 전체를 몰상식한 집단으로 매도해 놓은 것이 참 어이가 없습니다. 이 기사만 가지고 보면 <조선일보>가 막장 같네요."

 

"우리 학교가 막장? 좋은 취지를 이렇게 악용하다니"

 

a  <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 숭실대학교가 출간한 대학강의실태에 대한 책 겉그림.

<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 숭실대학교가 출간한 대학강의실태에 대한 책 겉그림. ⓒ 숭실대학교

<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 숭실대학교가 출간한 대학강의실태에 대한 책 겉그림. ⓒ 숭실대학교

<조선일보> 기사를 접한 후 출간 서적을 실제로 구해 봤다는 숭실대 국어국문학과 김아무개(25)씨는 "책에는 좋은 부분도 많은데 기사에서는 다 빼놨다"며 "안 좋은 부분만 부각시킨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정도면 왜곡 보도라고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조선일보> 보도 내용에 일침을 가했다.

 

또 법학과 이아무개(27)씨도 "보도된 기사를 보고는 학교가 왜 제 살 깎아 먹기 책을 출간했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직접 책을 접해 보니 일방적 내용만 인용한 언론사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졸업생들도 이 기사를 보고 분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언론사 기자로 근무 중인 김아무개(29)씨는 "나도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한쪽 면에만 치우친 보도로 보인다"며 "또 왜곡보도로 볼 만한 오해의 소지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책을 발간한 교무처 이윤재 처장은 "지난 3년간 전체 교수와 강사들의 강의평가 조사에서 나온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정리해 강의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고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수업을 개선하기 위해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출간 소감에서 밝히고 있다.

 

"수업 개선 않는 교수들에게 유용한 자료 될 것"

 

그러나 <조선>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숭실대의 이러한 시도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이 스스로 자신들의 치부라 할 수 있는 부정적 강의평가 내용까지 포함한 내용을 책으로까지 출간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 중앙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아무개(25)씨는 "우리 학교는 며칠 전 총장 관련 기사가 나오고도 별 반응이 없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공개하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려는 모습이 부럽다"며 "숭실대가 이번에 발표한 강의 사례들은 전국 모든 대학에 비슷하게 있는 문제점일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번 강의실태를 계기로 좀 더 나은 강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숭실대학교 이윤재 교무처장은 이 책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을 위해 600부를 먼저 인쇄했는데, 대학가를 중심으로 큰 반향이 나온다면 외부로 확대 발간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처장은 "이 책은 자기 절대화와 고정관념으로 인해 수업 개선을 하지 않는 교수들에게는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라며 "다른 교수들의 수업에 대해 학생들이 직접 쓴 내용들을 분류별로 정리한 것을 직접 읽어 봄으로써 본인의 수업과 비교해보고, 수업 개선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9.03.02 09:22ⓒ 2009 OhmyNews
#조선일보 #숭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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