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뭐길래? 할머니들의 진한 사랑싸움

[어른과 함께살기] 난 언제나 누구 편도 아니다

등록 2009.03.04 10:03수정 2009.03.0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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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내려앉는 봄눈을 보면 그렇게도 맑고 깨끗한데, 왜 이리 내 사는 사랑의마을은 바람 잘 날이 없는 건지. 하루가 버겁게 왔다 스르르 간다. 스르르 왔다 버겁게 가기도 한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우리 마을의 증축 기공예배가 있는 날이니까. 그러나 우리 마을에 사는 어떤 이들에게는 슬프고도 아픈 날이다.

 

"이거 왜 이래?"

"뭘? 누가 어쨌다 그래? 으씨! 왜 나한테 그래?"

"이 ××년이 여우새끼처럼 고자질을 하고 그래? 둘이 짝짜꿍이 돼 잘 논다아~"

"뭐라고? 그 더러운 입을 꿰매고 말테야. 이런 잡×, 어디서 써먹던 주동아리를 함부로 놀리고 지랄이여? 빌어먹을×! 그래 니 서방이라도 되냐?"

"그래 서방이다! 왜? ……."

"……."

 

붉으락푸르락, 그들은 닮은꼴

 

a  봄눈이 소복이 쌓인 사랑의마을 풍경이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풍경과는 대조적인 일도 가끔은 이 안에서 일어난다.

봄눈이 소복이 쌓인 사랑의마을 풍경이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풍경과는 대조적인 일도 가끔은 이 안에서 일어난다. ⓒ 김학현

봄눈이 소복이 쌓인 사랑의마을 풍경이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풍경과는 대조적인 일도 가끔은 이 안에서 일어난다. ⓒ 김학현

증축 예배도 마치고 점심식사도 끝났다. 그렇게 은혜롭게(?) 하루가 넘어가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손님들을 막 배웅하고 들어오는데 식당에서 천둥소리가 친다. 예의 날렵함으로 달려가 보니 이미 사단이 나 있다. 두 할머니가 붙어 격투라도 벌일 태세다. 아니 이미 주먹을 날린 측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니다. 이런 땐 무조건 떼어놓고 보는 거다. 둘 가운데로 쌩~ 뛰어들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사이를 벌여놓았다.

 

"왜들 그래요?"

 

아차 싶었다. 이런 때는 이유를 묻는 게 아니다. 이유를 물으면 서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더 큰 소리로 외치는 법. 아직도 나는 어른들과 사는 노하우를 써먹는 센스가 떨어지는 걸 보면 이들과 살기에 이력이 난 것 같지는 않다. 만회하는 한 마디,

 

"이러지들 말아요! 참자구요. 참아요. 끝까지 참는 자가 복을 받는다잖아요."

 

이 급박한 상황에 터져 나온 게 성경구절인 걸 보면 목사는 목사인가 보다. 하지만 전 할머니도 김 할머니도 그 얼굴은 닮은꼴이다. 한마디로 붉으락푸르락이다. 분이 삭지 않은 얼굴에서는 김이 서리고, 이내 입에서는 쌍소리가 연거푸 나온다. 둘은 그런 면에선 닮은꼴이 맞다.

 

이다지도 닮은꼴끼리 오늘은 왜 이렇게 피터지게 싸우는 거람?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이 얼토당토않은 기분은 또 뭔가? 이해되지 않는 게 어디 이런 경우뿐인가. 어른들이면서 어른답지 않은 말과 행동들은 연일 벌어지는 뉴스요, 연일 살았음을 알려주는 일기예보와 같은 건데.

 

"아 글쎄…."

 

한 할머니가 자신의 정당성을 말하려 할 때, 난 그 입에 재갈을 물린다.

 

"글쎄는 학교에 갖다 내는 거고요. 그만 하시라니까요. 다 알았으니까. …."

 

내 품에서만 회해?

 

a  직원과 함께 재밌는 프로그램을 하며 웃음꽃이 만발한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직원과 함께 재밌는 프로그램을 하며 웃음꽃이 만발한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 김학현

직원과 함께 재밌는 프로그램을 하며 웃음꽃이 만발한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 김학현

사설을 늘일 생각은 내게도 없다. 그저 할머니를 내 너른 품으로 안았다. 때론 분에 어린 말을 백 마디 듣는 것보다, 어루만지고 보듬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 한참을 꼬옥 껴안고 놓아주지 않자, 계속 무언가를 외치던 할머니의 입이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어깨를 들썩거린다.

 

"나 어떡해유? 나 어떡해유? 나 어쩜 좋아유? 분해서 못 살아유. 저런 개욕을 먹고 어떻게 산대유? 그냥 죽고 말 거예유 아니 할아버지에게 떡 좀 더 준 게 무슨 죄래유? 나원참. 별 걸 다 갖고 시비야…."

 

난 속으로 말한다. '니도 마찬가진데? 그만 개욕을 했냐? 니도 그랬잖아?' 그러나 그건 내가 속으로 한 말이다. 그렇게 욕으로 점철된 삶을 진하게 산 게 어른들인데. 그게 튀어나오지 않을 리 없다. 정말 그들의 욕을 듣고 있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지, 자괴감으로 범벅이 될 때도 있다.

 

울음이 좀 멈추는가 싶을 때 얼른 상대 할머니를 덥석 안았다. 한 할머니만 안아줘서 될 일이 아니다. 혹 그랬다간 더 큰 사단이 날 것이 뻔하다. 상대 할머니도 좀처럼 어깨의 씨근덕거림이 멎지 않는다. 더욱 세게 꼬옥 안았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란 걸 기대하지 않은 채.

 

계속 무어라고 자신의 정당성을 말한다. 내가 그에게 한 말은 오직, "그래요. 그래요. 알지. 내 다 알아요. …"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알긴 뭘 알아. 난 아무것도 몰라. 그저 이게 최선이라 믿어 안고 있을 뿐이야. 왜 자꾸 들고양이마냥 그렇게 싸우냐?' 하하하.

 

그렇게 서로가 분을 누그러뜨리고 이 어마어마한 충돌사건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리 쉽게 꺼질 불이 아닌 모양이다. 둘은 장소를 식당에서 방으로 옮겼고, 진짜 한판이 붙은 모양이다. 아까 식당에서 들리던 천둥소리는 비교도 안 될 뇌성벽력이 울렸다. 또 잽싸게 일어나 소리가 나는 방으로 달려갔다.

 

남자가 뭐길래?

 

a  한가한 어느날 직원이 가르치는 소방교육에 어르신들이 한껏 호응을 하고 다.

한가한 어느날 직원이 가르치는 소방교육에 어르신들이 한껏 호응을 하고 다. ⓒ 김학현

한가한 어느날 직원이 가르치는 소방교육에 어르신들이 한껏 호응을 하고 다. ⓒ 김학현

우선 들러붙어있는 두 할머니를 떼어놓았다. 등치로 봐서 전 할머니가 승리할 것 같은데, 이 할머니도 만만치가 않다. 아까는 김 할머니였는데 이번에는 이 할머니다. 어 이게 웬일이래?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놓고 벌이는 질투 싸움이다. 허. 꼴에 여자라고.

 

할머니도 여자다? 그런가 보다. 바로 그런 싸움이었던 게다. 이걸 어째? 이 할머니가 문 할아버지에게 잔치에 차린 떡을 더 가져다 준 모양이다. 그걸 본 전 할머니가 그렇게 한 이 할머니의 귀에 대고 "좀 작작해라!"라고 했단다. 아마 그 눈꼴 시린 장면이 눈에 거슬린 모양이다.

 

그러나 착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할아버지를 챙긴 이 할머니는 분할 수밖에. 그것으로 끝났으면 괜찮을 터인데 전 할머니가 김 할머니에게 그 상황을 고자질 한 것(나중에 아니란 것이 밝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 할머니는 그렇다고 우긴다). 김 할머니는 자신에게 따지자 왜 자신에게 그러냐고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고.

 

그러니까 사랑싸움인 것. 한 할아버지를 두고 벌어진 할머니들의 질투 싸움? 뭐 그런 거였다. 그 할아버지는 영문도 모르고 그녀들의 사랑싸움을 지켜만 봤다. 할아버지는 치매이기에 그런 걸 인식할 정도도 아니다. 허.

 

하여튼 그녀들을 다시 내 너른 품으로 안음으로 2라운드 싸움도 말리기는 했는데. 그 불씨가 언제까지 갈지 그게 걱정이다. 사랑은 국경도 없고 나이도 상관없다는 말이 새삼 생각난다. 그래도 그렇지? 무슨 사랑싸움을 그리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팔 걷어가며 진하게 한데. 그들의 지난 한이 그렇게 진해서 그런가? 오, 마이 가~트!!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충남 연기군 소재 '사랑의마을'이라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신앙생활을 돕는 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른과 함께살기]는 그들과 살며 느끼는 이야기들을 적은 글로 계속 올라옵니다.
*이 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올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3.04 10:0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충남 연기군 소재 '사랑의마을'이라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신앙생활을 돕는 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른과 함께살기]는 그들과 살며 느끼는 이야기들을 적은 글로 계속 올라옵니다.
*이 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올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랑의마을 #사랑싸움 #노인요양시설 #노인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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