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재판 비난 사법부 전체가 뒤집어 써"
대법원 일축 불구 현직판사들 성토 잇달아

[초점] 판사 4명 진상규명 공개 요구... "사법 독립 포기할 수 없다"

등록 2009.03.04 18:54수정 2009.03.0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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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은 온 국민의 열망과 값진 희생으로 일궈낸 민주주의 산물이다....사법권의 독립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소장판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촛불재판 배당 몰아주기, 형량 변경 압력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면서 사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울산지법의 단독판사로 근무하고 있는 송승용 판사는 2일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촛불사건 배당과 영장에 대한 법원 상층부의 개입 의혹은 '사법부를 흔드는 손'"이라고 단정했다.

서울 남부지방법원의 김영식 판사도 3일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법관을 법관이게 하는 것은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가치가 훼손되었다면 그것은 법관사회 전체를 불신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만일 법관이 외부의 압력에 의하여 재판을 하였다면, 그것은 아무리 사소한 재판이라 하더라도 재판 자체가 무효"라고 강조했다.

'촛불재판' 배당 몰아주기 파문 일파만파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촛불재판 배당 몰아주기, 형량 변경 압력 의혹 등에 대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일선판사들의 요구가 잇따르면서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법원이 최근 이 사안과 관련,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음에도 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들이 이어지고 있어 그 파장은 더욱 크다.

지금까지 법원 내부 통신망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려 진상규명을 촉구한 판사는 정진영 서울서부지방법원 부장판사와 이정렬 서울동부지방법원 판사, 송승용 울산지방법원 판사, 김영식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등 4명이다.


판사들이 지금까지 법원과 관련된 외부의 비판이나 언론 보도에 대해 의견표명을 극도로 자제해 온 점에 비춰본다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일선 판사들 상당수도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이번 사안이 단순히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거나 특정판사의 부적절한 언행을 문제삼는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촛불재판 관련 의혹의 중심에는 사법부의 공정성과 법관의 독립과 직결되는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즉, 사건을 재판부에 배당하는 일이나 판사가 형량을 결정하는 일은 누구도 조작하거나 개입할 수 없다고 법원 내부에서만은 믿고 있었는데, '촛불재판'이 이런 신뢰에 의문을 제기한 셈이다. 따라서 판사들로서는 판사의 명예와 법원의 공정성을 흔드는 중대 사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법권 신뢰 훼손... 침묵할 수만은 없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대법원 차원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서면조사와 전화조사를 통해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법원 내부에서는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하룻만에 졸속으로 이뤄진 게 어떻게 조사라고 할 수 있느냐. (당시 법원장과 수석부장에 대한) 면피용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송승용 판사는 2일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이정렬 판사가 (2월 26일) 지적한 것처럼 과연 그러한 의혹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한다면 수석부장판사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인지, 법원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인지 등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있는 해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영진 부장판사는 해당 판사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판사들이란 작년 촛불사건 재판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었던 신영철 대법관,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허만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사건배당 문제에 대해 항의하였다는 형사단독 판사들을 말한다.

정 부장판사는 "우리 법원에는 이들 외에도 다른 많은 동료 법관, 법관이 아닌 일반 직원들도 있는데 이로 인한 비난은 사법부 전체가 뒤집어쓰고 있다"며 "해당 법관들이 직접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판사는 또 "사법부 내외에서 사법권 독립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는데 법관들이 침묵으로만 일관할 수는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김영식 판사도 "얼마 전 법관들도 개개 재판에 관하여 법원장이나 대법원의 지시를 받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면서 "그때 저는, 법관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면서 단호하게 부정하였는데, 불과 며칠만에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해서 저 자신도 혼란스럽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전국 7천여 명의 법원공무원들로 구성된 법원노조도 2차례 성명을 내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법원노조는 "대법원 차원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조사 결과공개가 뒤따라야 하며, 재판에 압력을 넣은 당사자가 드러난다면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 재판 공정성 시비로 법원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판사를 비롯한 법원 구성원들은 이제는 대법원이 나서서 진실을 밝히고 의혹을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이 법원이 공정성을 회복하는 시험대가 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판사의 자유로운 영혼 짓밟는 <동아> 논설"
송승용 판사는 '사법부를 흔드는 두 가지 손' 제하의 글에서 최근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쓴 '사법부를 흔드는 판사들의 가벼운 입' 제목의 칼럼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조목조목 비판했다. 2월 28일자에 게재된 <동아> 육정수 논설위원이 쓴 글에 대한 비판이다.

육 논설위원은 문제의 칼럼에서 "사법부가 지금 무척 시끄럽다. 일부 판사가 재판에 관한 의견을 대외적으로 표명하고 있어서다"라면서 "젊은 판사들이 판결로만 말하라고 가르치던 선배 판사들의 진정한 뜻을 되새겨보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송 판사는 "일부 언론의 사법부 흔들기, 길들이기에 대해서는 엄중한 대처가 필요하다"면서 "이번 형사 단독판사들의 공동대응은 누가 보더라도 판사는 판결로 만한다는 금도를 넘어선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송 판사는 이어 "판사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사건, 앞으로 담당하게 될 사건에 대해 판결을 선고하기에 앞서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불필요한 말을 아낀다는 의미이지, 배당절차의 부당성 등에 대해 배당권자에게 충분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송 판사는 "위 논설위원이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의미를 오해했거나, 또는 표현상의 오류로 단독판사들의 행동을 폄하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라면 위 칼럼에는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일정한 정략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추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송 판사는 "이번 논설은 소신있는 판사의 자유로운 영혼을 짓밟고 정의를 말살하려는 판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했다. / 오마이뉴스

#촛불재판 #판사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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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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