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화(禍)는  입에서 나온다고 한다. 해서 '석가모니'는 '일체 중생의 불행한 운명은 그 입에서 생기고 있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이며 몸을 찌르는 칼날이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나무가 코끼리 모양을 하고 있다는 기이한 입소문에, 대운산 노거수 팽나무 한그루를 찾아 먼길을 왔으나, 정말 입소문처럼 내 눈에는 노거수가 코끼리 모양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만 황량한 사막 같은 느낌의 절터에 서 있는 팽나무는 사라진 대원사 불탑의 현현처럼 여겨져,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올려다 본 노거수는 위풍당당하다. 마치 오백년 된 절 한 채처럼…. 

 

이 절은 신라시대 고봉스님이 창건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폐사가 된 일은, 정조 10년 대원사의 주지 스님의 입에서 나온 어쭙잖은 말 한마디의 화로 인해, 빈대가 들끓어 그만 절이 사라졌다는 구전이다. 사람이 아무리 조심해도 좋은 것은 입인데, 하물며 도를 닦는 스님이 되어서 함부로 생각 없이 한 말이 씨가 되어 재앙을 부른 셈인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남목의 열암사, 연암의 백연암, 웅촌의 운흥사, 율리의 망해사와 청송사, 언양의 연고사, 삼남의 석수사와 같이 나란히 등재되어 있다.  

 

 

그 당시 꽤 이름이 알려진 대원사에 신도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문제의 주지 스님은, 성격이 괴팍하여 불자들이 찾아오는 것을 몹시 귀찮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 어느날 한 도사가 절을 찾아와서 잠시 쉬어가기를 청하여 머물게 되었다.

 

이때 주지 스님은 불자들이 하도많이 와 귀찮아 죽겠다는 말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이 말을 듣게된 도사는 "마을로 내려가는 큰길을 내면 불자들이 찾아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도사는 절을 떠나 버렸다고 한다.

 

스님은 도사의 이야기를 듣고, 산모퉁이를 헐어 큰 길을 만들었다. 그런데 길을 만드는 도중 돌부처가 나왔는데 그만 삽과 괭이에 찍혀 목이 떨어지고 떨어진 목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에 갑작스럽게 절에 빈대가 들끓고, 많은 빈대 때문에 사람들이 견디어 낼 수가 없어 쓰레받이에 쓸어담아 낼 정도였고, 이를 큰 웅덩이에 버렸는데 이곳을 빈대소라고 이름 한다.

 

지금도 절터의 바위를 뒤져보면 빈대의 껍질이 나올 정도라고 이곳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지금 절터에 남아있는 현하당(縣河堂)이라 음각된 부도에 새겨진 '현하당'이란 이름은, 당시 대원사에 계셨던 스님의 이름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대운산은 부산 울산 양산의 등산객들에게 인기 높은 산이다. 봄이면 진달래길 따라 걷는 산행의 묘미가 그만이다. 여름철에는 물이 풍부한 계곡이 있어 가족 휴가지로 그만이다. 대운산은 불광산으로 한때 불린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대운산으로 확고한 이름이 된 산. 더구나 큰 바위 얼굴 전망대와 코끼리 모습을 하고 있는 대원사지의 노거수 팽나무는 대운산의 명품 볼거리이다.

 

대원사의 절터 자리에, 지금은 내원암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내원암은 역사는 깊지 않다. 그러나 절터 주위는 '내원골'이라 이를 정도로 경관이 좋다. 이별 바위, 소원 바위, '나한 바위', '금강폭포' 등 기암들로 병풍처럼 둘러싸인 대운산 계곡은 대중들에게 소금강산으로 불리울 정도이다.

 

 

대운산 도통골에서 올라오면 대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용심지가 있다. 이 용심지에도 절의 흔적과 샘터가 있고, 원효 대사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산길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나는 다음주에 용심지에 가보기로 하고, 기장군 불광사로 넘어가는 산길을 재촉했다.

 

대운산 내원암에서 내려다 보는 울산시내는 정말 한 눈에 들어왔다. 스모그로 시계는 흐릿하였으나, 턱 트인 하늘 아래 밀집된 집들과 공장을 바라보며 새삼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울산 야음동의 직장 동료들 얼굴을 하나씩 떠올린다. 그때 만약 내가 나도 모르게 "공기가 나빠서 나는 울산은 싫어…"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울산 시민으로 날마다 대운산을 바라보며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사람이 뱉는 말, 그 말이 화를 부르고 복을 부르는 듯 하다.

 

내주에는 꼭 용심지에 가보기로, 내 입으로 나한테 한 이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