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류가 우리에게 외치는 희망

[서평] 콜맥 매카시의 <로드>

등록 2009.03.17 10:43수정 2009.03.1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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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매카시가 70세가 넘은 나이에 집필한 이 소설은 내가 접한 문학작품 중 가장 큰 담력이 요구되는 책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불의 심판', 우리 선조들의 비전(秘傳)에 등장하는 '후천개벽의 대재앙', 살아있는 유기체인 지구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판을 뒤엎고 자정(自淨)활동을 한다는 '가이아 프로젝트'같은 全지구적 재앙 뒤에 살아남은 인류의 모습이 그려진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나를 공포와 두려움 속에 떨게 했다.

 

더욱이 재앙의 원인과 과정이 모두 생략된 채,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여 인육을 먹고 사람과의 조우가 최대의 위험이 되어버린 잿빛 세상에 던져진 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첫 페이지부터 등장시킴으로서 작가는 초장에 독자들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할 의사가 없음을 강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작가의 냉혹한 상상력은 시종일관 문명이 사라진 지구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 과연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며 희망의 불꽃을 간직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헤이즈(haze)와 스모그로 덮여버린 지구는 빙하기로 접어들듯 춥다. 온기가 있을 법한 남쪽을 향해 가는 남자와 소년(父子)의 여정은 공룡을 피해 도망다니며 목숨을 부지했던 초기 인류의 모습처럼 애처롭기 그지없다. 자살을 위해 두발의 탄약이 장전된 권총을 몸에 지닌 채 여행을 지속하는 남자에게 희망은 없어 보였다. 그와 죽음 사이에는 오직 '아들'만이 있다. 아들을 보호하는 것이 남자가 존재해야하는 유일한 이유다.

 

부성애(父性愛).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의 부성애는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생존이 곧 지옥같은 고통인 상황에서 삶을 지속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아들의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 그리고 죽어가는 마지막까지 그 앞길을 축복한다.

 

나는 독자들이 이 소설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작가의 상황설정이 끔찍스럽더라도 그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어떠한 경우에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고리를 가진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이유가 인간에게 사랑이 있는 한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은 마지막 인류가 지구를 떠날 때까지 간직해야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화두임을 말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것이 물리적 우주의 진리라는 것에 이의가 없다. 언젠가는 우리 생명의 근원인 태양도 그 빛을 잃을 날이 있을 것이다. 즉 이 지구에서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이 사라질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생명체인 대우주(大宇宙)는  이 지구별에 시공(時空)의 본질인 사랑이 존재했고 그 사랑을 통해 엄청난 배움과 희망을 얻었던 찬란한 생명들이 풍미했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미래를 가장 비관적으로 그리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발견해 내게 하는 마력의 책 [로드]. 코 앞에 다가온 대재앙의 전조가 가득한 지금, 우리 모두가 함께 읽어야 할 위대한 작품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대한민국 공군지 09년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2009.03.17 10:43ⓒ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대한민국 공군지 09년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08


#로드 #콜맥 맥카시 #마지막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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