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수환 추기경의 영정으로 사용됐던 사진지요하
▲ 고 김수환 추기경의 영정으로 사용됐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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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우리 사회에 천주교 용어인 '선종(善終)'의 의미를 확산시키거나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복종(善生福終)- '선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라는 말의 준말인 선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정감에 가까운 확실한 질감을 안겨준 것 같다.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이 눈을 감았을 때는 일반적으로 '서거(逝去)'라는 말을 쓰고, 더러는 '영면(永眠)'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대로 높은 지위를 반영하는 용어들이다. 일반 대중들과는 유리되어 있는, 말하자면 계급적인 용어인 셈이다.
불교의 '열반(涅槃)'이라는 용어도 일반 대중들에게 거리감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일반 신도들에게는 쓰지 않고 스님들에게나 쓰는 고고함을 지닌 말로써, 어떤 '구분' 안에 놓여 있는 말이다.
그에 비해 천주교의 선종이라는 말은 어떤 구분이나 고유성을 지닌 말이 아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나 고루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용어다. 추기경과 일반 평신도의 별세를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선종이라고 부르는 것에 이 용어의 각별한 매력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기간은 물론이고 지금도 종종 주변 사람들로부터 '선종'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 질문을 받곤 한다. 최근에 선종하신 사촌 형님 한 분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두어 번 그런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서는 "나도 선종을 하기 위해서는 천주교 신자가 되어야겠다"는 진담 반 농담 반인 말을 듣기도 했다.
김 추기경의 선종과 관련하여 일반 사회에서는 세속적 관점으로 김 추기경의 처신을 평가하려는 말들이 꽤 많았다. 무성한 설왕설래 가운데는 김 추기경의 기본 성향에 대한 논란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김 추기경의 기본 성향이 보수냐 진보냐, 좌파냐 우파냐 하는 식의 조잡한 질문을 내게 던지기도 했다.
"김 추기경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었다. 좌측도 우측도 아니었고, 그런 구분이나 용어 자체가 조금도 해당되지 않는 분이었다. 그분은 다만 '그리스도측'일 뿐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좌우 이념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분이다. 그것은 김 추기경처럼 좌측도 우측도 아니고 오로지 그리스도측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변함 없는 확신이다. 나 역시 그런 확신의 눈으로 김 추기경을 본다.
젊은 시절 고뇌하며 암울한 심정으로 유신 시대와 5공 시대를 살아왔던 나 같은 사람들은 그 시절의 김 추기경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때 김 추기경은 모든 양심세력의 희망의 상징이었다. 군사독재정권을 향해 던지는 김 추기경의 과감한 성명이나 명동성당 강론은 그대로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되었고, 우리들 젊은 세대들의 가슴에 뜨거운 밑불이 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으로 대변되는 한국 천주교회의 참신하고도 의로운 모습에 감화되고 위안 받아 교회의 문을 두드린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7,80년대 한국 천주교회의 모습은 우리 한국 사회의 등불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재 시절 김수환 추기경의 그런 의로운 처신으로 말미암아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명동성당을 참으로 각별하게 장식해주고 있는 '민주화의 성지'라는 실체적 이미지는 김수환 추기경의 분신이기도 하다.
그런 명동성당의 이미지와 한국 천주교회의 7,80년대 모습은 바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처신으로부터 연유한 것이지만, 김 추기경의 그 선지자적 처신을 견인한 것은 당연히 '그리스도적 정신'이었다. 그가 좌측도 우측도 아니고 오로지 그리스도측 사람이었기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우리 한국 사회에는 오늘도 참으로 무서우리만큼 좌우 이념이 첨예하게 충돌하며 범람한다. 그럴지언정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좌측도 우측도 아닌 확실한 그리스도측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오로지 그리스도측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자세만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하고 진정한 양심을 지니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자세와 눈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바라보아야 한다. 좌측도 우측도 아니고 오로지 그리스도측 사람이었던 김 추기경의 처신으로 말미암아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가 될 수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그런 의미와 시각으로 '명동성당-민주화의 성지'라는 등식을 올곧게 유지해야 한다.
민주화의 성지라는 명동성당의 이미지를 실제적으로 지키고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진보적 시각이 아니다. 오로지 그리스도적 개념일 뿐이다. 그런 개념의 눈으로 '명동성당-민주화의 성지' 이미지와 실제성을 오늘에도 계속 유지해나가는 것만이 영원한 그리스도측 사람인 김수환 추기경의 덕업(德業)을 영구히 기리는 일이다.
2009.03.19 09:13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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