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소년의 범죄, 어떻게 처벌할까

[리뷰] 야쿠마루 가쿠 <천사의 나이프>

등록 2009.03.22 15:36수정 2009.03.2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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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겉표지
<천사의 나이프>겉표지황금가지
▲ <천사의 나이프> 겉표지 ⓒ 황금가지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이 범죄를 저질렀다. 그것도 단순폭행이나 절도가 아니라 살인사건이다. 치밀한 계획 끝에 행한 살인인지 아니면 과실치사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건 손에 들고 있던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인 것이다.

 

이럴 경우 이 소년들은 어떻게 처벌받을까. 야쿠마루 가쿠의 2005년 작품 <천사의 나이프>에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작품에 의하면, 일본의 형법에는 '14세 미만인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있다.

 

14세 미만의 소년에게는 형사책임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죽이건 사기를 치건 이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재판에 회부되지도 않고 구속영장이 신청되지도 않는다. 대신에 사람을 죽였다는 '비행 사실'을 아동상담소에 통고하고, 소년들은 보호처분 받는다.

 

거기에는 소년의 보호와 육성이라는 명분이 있다. 어린이의 범죄는 본인의 악한 마음보다는 환경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범죄를 행한 어린이는 죄의 처벌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지도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비행소년의 재기를 위해서 보호처분 한다는 명분은 그럴듯하다. 대신 여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어 버리는 현실적인 문제가 숨어있다.

 

살인을 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소년

 

인권을 지킨다는 이유로 가해소년들의 신원이나 이후 갱생과정 등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다. 가해소년들이 어떤 보호기관에 들어가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피해자의 가족들은 궁금해도 알 수가 없다. 대신에 피해자의 가족들은 고스란히 언론에 노출된다. 매일 찾아와서 질문을 퍼붓는 기자들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다.

 

반면에 보호관찰 처분된 가해소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정을 마치고 나면 다시 사회와 학교로 복귀한다. 사람을 죽인 사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아무 범죄사실이 없는 다른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다시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런 점 때문에 분통이 터진다. 가해자는 사람을 죽이고서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풀려나고, 피해자 가족은 언론의 공세로 생활이 무너져 간다. 그야말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꼴이다.

 

<천사의 나이프> 주인공도 그런 상황에 놓인다. 커피숍을 운영하는 30대 초반의 히야마는 4살 된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아내는 4년 전, 백주대낮에 집에서 흉기에 찔려 죽었다. 얼마 후에 경찰에 잡힌 범인들은 13세의 중학생 3명이다.

 

범인을 잡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히야마는 경찰에게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범인들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모두 보호처분 된다는 것이다. 히야마는 가해자 가족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가해자 가족이 파산신청을 해버리면 물거품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법률에는 민사소송이나 합의에 있어서 지불명령을 이행하지 않아도 어떤 벌칙 규정도 없다. 어느새 히야마는 범인뿐 아니라 일본의 사법체계 전체를 증오하게 되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국가가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범인들을 죽이고 싶다."라는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범죄자의 새로운 삶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커피숍 주변에서 당시의 가해소년 중 한 명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경찰들은 우선 히야마를 의심하며 그를 조사하고, 히야마에게는 이렇다 할 알리바이가 없다. 살인의 동기는 가지고 있지만, 사건 당시 알리바이는 없는 히야마. 경찰에게는 히야마가 그럴듯한 용의자로 보일 것이다.

 

때를 같이해서 히야마도 행동으로 들어간다.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있던, 4년 전 살인사건의 전모를 자신이 직접 알아내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경찰의 조사 결과로는 소년들의 우발적인 범행이었다지만, 여러 가지로 납득할 수 없는 면이 있었다. 히야마는 과연 4년 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죽은 아내의 눈을 편안히 감겨줄 수 있을까?

 

작가는 작품 속에서 범죄자의 갱생과 속죄, 가해자의 인권 및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분노와 용서를 한데 뒤섞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고, 과거를 털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 문제는 양쪽의 주장이 서로 평행선인 채로 되풀이 된다는 점이다. '보호파'는 범죄자의 인권을 계속 강조하고, '엄벌파'는 범죄자를 격리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히야마도 그 지점에서 고민한다. 소년범죄자들을 보호처분 시키면서, 피해자의 입장과 감정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아예 고려대상 조차 되지 못한다. 교정교육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안에 피해자 가족에 대한 속죄교육도 반드시 필요한 것 아닐까.

 

진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와 그 결과를, 그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 가족의 눈빛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남긴 오점을 피해자나 그 가족이 닦아주는 것이야말로 참된 갱생의 시작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지음 /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펴냄.

2009.03.22 15:36ⓒ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지음 /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펴냄.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2009


#천사의 나이프 #추리소설 #야쿠마루 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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