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부림치는 만큼 더욱 옥죄어오는 현실의 장벽을 온몸으로 맞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순진하다고 믿는 어리석음까지 더한 목사다. 그것뿐이 아니다. 전직 목사로 남기를 거부하는 알량한 사명감까지 가지고 있다. 이제 그대는 그런 세상과는 거리가 좀 뜬 주유원 목사가 빚어내는 삶의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내 글을 읽노라면, 어떻게 주유원이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교회에서 나왔는지? 아니 좀 더 자극적인 표현을 쓰면, 쫓겨났는지?(어떤 사람도 쫓아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어디서 목회를 했었는지? 저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들의 문제는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이 그대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을 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다. 그런 과거들을 자꾸 불러옴으로 느낄 아픔이, 덮음으로 오는 아픔보다 더 클 것이기에,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나도 그렇거니와 내 곁에 더 있지 못하는 이들도 그럴 것이다. 과거를 들추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그냥 이후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글을 엮으려 한다. 그렇다고 그때 맺힌 한이나 응어리가 불거지지 않으리라고는 보장할 수 없다. 다 내가 성숙하지 못해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너그러이 넘어가 주면 좋겠다.
그대에게, 내가 내미는 한으로 멍든 손을 잡으라고 하지는 않겠다. 잡아주진 않더라도 그런 손이 있구나, 생각해 줄 수 있으면 된다. 가슴을 열고 그를 호흡하라고도 말하지 않겠다. 자신의 호흡을 하며 좀 다르지만 숨 가쁜 그런 호흡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해 주면 된다. 그렇다고 주관으로 철철 넘치는 밉살스런 비난의 화살은 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생각하시길 바란다.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세상에 이런 일이?'는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아니 이 걸 왜 쓴 거야?'도 싫다. 그냥 '세상엔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쯤이면 어떨까. 그래 줄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흥미로운 내 이야기에 조금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감상적이며 행복한 생각도 들 것이다. 나와 같아서, 아니면 나와는 달라서…. 이유는 어떻든 좋다.
무슨 음흉한 의도를 풍기기도, 간단한 노리개로 전락하여 세간에 오르내리기도 싫다. 교회 밖에 있을 수밖에 없는 목사가 주유원으로 주유소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 봐 줄 수 있는 아량 넘치는 눈동자가 당신의 것이면 좋겠다.
목사가 주유원이 된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은 아니다. 좀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목사로서 주유원이 되어 살면서 얻은 경험들이 생경하면서도 좋아서 이렇게 글로 질펀하게 늘어놓고 싶었을 뿐이다.
목사와 주유원
두 가지 면에서 목사가 일용직 주유원이 되기란 어렵다.
첫째는 목사가 선뜻 주유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대부분 이 사회에서 자신들이 고부가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나만 그런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사명감이고, 다른 면에서는 현실적 이질감이다. 그러나 그의 고학력에도 불구하고(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건전한 교단의 목사라면 대학원 이상은 나왔을 테니까.)
사회는 목사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주유소 같이 막노동(내가 아직 진짜 막노동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을 요구하는 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목사는 대개 교회와 그와 관련된 곳에서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낸다. 주유원이 주유소에서 가장 강력한 가치를 창출해 내듯.
목사가 주유원이 되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주유소에서 목사를 주유원으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나같이 50대 초반(당시)의 목사는. 그러나 나는 기적같이 취직을 했다. 나의 조금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오정 발상은 기어이 주유원으로서의 눈높이에서 열렸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주유원이 되어서 행복한 게 아니다. 주유원으로라도 일할 수 있는 게 행복하다. 일한다는 것이 곧 나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일하는 것으로 아픈 모든 것은 잊을 수 있다고 되지 않은 생각을 하기에….
예전에 교회를 섬길 때는 목사라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사명이 있다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의 조건이었다. 교회를 섬기지 않는 지금은 목사라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니란 걸 알았다. 지금 난 여전히 행복한데 그럼 무엇이 행복을 가져다줄까 생각해 봤다. 그것은 일이었다. 그것도 하나님을 여전히 사랑하는 채 일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주유원도 나름대로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유의 말은 설교를 통하여 이미 성도들에게 수도 없이 했었다. 그러나 주유원으로 사는 지금 그것은 말이 아니라 내 생활이 날마다 부딪히고 만나는 삶의 일부다. 이런 삶이 있기에 난 행복하다. 내 삶속에는 여전히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에 더욱 행복하다.
인생의 각축장, 주유소
그 어느 일터가 안 그렇겠냐만 주유소는 인생의 작은 각축장이다. 너도나도 다 모시고 다니는 자동차는 이미 우리의 발이다. 그러니 발을 통하여 움직임이란 걸 하는 동물인 사람들은 주유소에 들러야만 한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의 인생이 주유소에서 질펀하게 펼쳐질 수밖에 없다. 따듯하게 혹은 차갑게, 느긋하게 혹은 숨 가쁘게, 절절하게 혹은 건성으로….
주유소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다. 자동차라는 상전에게 진지를 드시게 하는 동안, 길어야 2, 3분을 넘기지 못하는 만남,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생의 순간성이다. 목사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25년의 철옹성 같던 목회가 와르르 무너지던 날, 나는 또 다른 행복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정처 없던 나의 발길이 닿은 곳이 바로 주유소다.
이제는 주유소에서 나의 이야기를 펼쳐보여야 한다. 신앙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 이야기에 행복이 담겼음을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글이 발을 달고 우리의 이웃에게로 달려갈 차례다.
이 글은 일기다. 그러나 일기만은 아니다. 이 글은 나 혼자만 읽으려고 쓴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도 읽기를 원하기 때문에 수필이나, 소설이나, 시나, 기행문이라고 함이 옳다. 나는 차가운 이야기도, 따듯한 이야기도 모두 따듯한 가슴으로 보듬기를 원한다. 이 결심이 모조리 모든 글들에서 성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눈으로만 본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실은 눈으로만 사물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지리 못마땅할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나와 같은 가슴 하나 소유했으면 한다.(계속)
논픽션 '목사가 쓴 주유원 이야기'를 연재하며 |
미국경제를 비롯하여 세계경제가 바닥에서 언제 기를 펼지 모릅니다. '불경기'라는 상황이 이 어려운 시기를 사는 우리에게 트레이드가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이 힘들고 어려운 때에 젊은이들은 취직을 못하고 있고, 이미 직장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실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 한 실직자의 이야기가 고무적인 활기를 주었으면 하는 맘입니다. 그래서 이미 지난 경험이고 저에게는 부끄러운 과거지만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립니다.
목사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걸 '실직'이라고 단순히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하여튼 교회를 떠나 일용직(비정규직) 근로자인 주유원으로 일하면서 얻은 '고난 속의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모든 분들께 힘을 잃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슴을 저미고 달려드는 고난도 지나고 보면 인생에 좋은 추억을 선사하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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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가 3년 전 겪은 실화입니다. 지금은 다 삭제되었지만 많은 내용을 당당뉴스와 뉴스앤조이에도 '김 목사의 주유원 일기'라는 제목으로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정제되지 않은 한을 그대로 글에 담았습니다. 하긴 그랬기 때문에 그때의 힘들었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한 발짝 물러난 지금(시골의 한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음), 조금은 글이 되도록 다듬고 많은 부분을 첨부하여 이곳에 연재하려고 합니다.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출처 : 옷은 주유원인데, 사람은 목사? - 오마이뉴스
2009.03.24 11:54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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