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84) 가급적

'가급적 멀리 떨어진', '가급적이면 피하지' 다듬기

등록 2009.03.30 16:03수정 2009.03.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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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가급적 외할아버지 곁에서 멀리 떨어진

 

.. 워낙 속도가 빨라서 언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급적 외할아버지 곁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는 게 상책이었다 ..  <내멋대로 출판사 랜덤하우스>(베네트 서프/정혜진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4) 14쪽

 

"속도(速度)가 빨라서"는 "워낙 빨라서"로 다듬고, "앉는 게 상책(上策)이었다"는 "앉아야 했다"나 "앉을 때가 나았다"나 "앉아야 마음이 놓였다"로 다듬어 봅니다.

 

 ┌ 가급적(可及的)

 │  (1) 할 수 있는 것. 또는 형편이 닿는 것

 │   - 가급적이면 빨리 가도록 해라 / 가급적이면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  (2) 할 수 있는 대로. 또는 형편이 닿는 대로

 │   -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일을 끝내도록 해라 / 가급적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

 ├ 가급적

 │→ 되도록

 │→ 될 수 있는 대로

 │→ 할 수 있다면

 │→ 웬만하면

 └ …

 

국어사전을 뒤적여 보면 '가급(可及)'이라는 낱말은 실리지 않습니다. '-적'을 붙이지 않는 한자말이 안 실리는 일은 거의 없는데 '가급'은 꽤 남다릅니다. 오로지 '-적'을 붙여야만 쓰이는 '가급적'인데, 우리가 이 낱말을 언제부터 썼는지 궁금합니다. 먼 옛날에도 이 낱말을 썼을까요? 이 낱말을 쓴 지는 얼마 안 되었을까요? 알쏭달쏭합니다.

 

 ┌ 가급적이면 빨리 가도록 해라 → 되도록이면 빨리 가도록 해라

 └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 되도록 빨리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듣고 익히고 보던 말과 글을 나이 들어서까지 놓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익숙하게 씁니다. 그래서 이 나라 많은 아빠 엄마는 아이들한테 영어를 일찍부터 가르칩니다. 한자도 어릴 때 먼저 가르칩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잊지 않고 잘 새겨 둘 테니까요.

 

그러면, 이 나라 아빠 엄마는 이 나라 아이들한테 말다운 말은 얼마나 가르쳐 줄까요. 글다운 글은 얼마나 일러 줄까요. 우리 말을 제대로 쓸 수 있게끔 어느 만큼 마음을 기울이면서 가르쳐 줄까요. 우리 글을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얼마나 마음을 바치면서 도와줄까요.

 

 ┌ 가급적이면 오늘 오는 게 → 올 수 있다면 오늘 오면

 └ 가급적 많이 도와주시기 → 도와주실 수 있다면 많이 도와주시기

 

가만히 보면, 어릴 때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이 받아먹으면서 빨아들이는 삶이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 말이고 영어고 한자이기 앞서 착하고 아름답고 싱그러운 마음그릇을 먼저 닦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한결 따뜻할 수 있도록 삶터를 가다듬고, 좀더 넉넉하도록 삶자리를 돌보며, 더욱 깊을 수 있게끔 삶자락을 추슬러야지 싶어요.

 

바르게 걷는 길을 일러 주고, 맑은 땀방울을 흘리는 즐거움을 나누며,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보람이 익숙하도록 손길을 내밀어야지 싶습니다.

 

ㄴ. 가급적이면 피하지

 

.. 이제 이웃들과도 내왕이 거의 없어요. 가급적이면 피하지 ..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삼인, 2008) 243쪽

 

'내왕(來往)'은 '오고감'이나 '드나듦'으로 손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뒷말과 묶어 "거의 오가지 않아요"나 "거의 드나들지 않아요"나 "거의 안 만나요"나 "거의 안 어울려요"로 손보면 됩니다. '피(避)하지'는 '꺼리지'나 '멀리하지'로 손질합니다.

 

 ┌ 가급적이면 피하지

 │

 │→ 웬만하면 꺼리지

 │→ 되도록 못 본 척하지

 │→ 아무래도 거리를 두지

 │→ 그냥저냥 안 만나지

 │→ 그냥 안 만나며 살지

 │→ 그저 멀리하지

 │→ 그예 떨어져 지내지

 └ …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듯, 같은 말이면 좀더 넓고 깊이 나눌 수 있는 말을 골라서 쓸 때 한결 낫습니다. 내 이웃과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을 고르고, 가방끈이 길든 짧든 넉넉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고릅니다. 내 동무들 누구라도 함께할 만한 말을 고르고, 내 어버이와 할매 할배 모두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말을 고릅니다.

 

지식자랑이 될 만한 말을 되도록 꺼리고, 지식나눔이 될 만한 말을 웬만하면 골라 줍니다. 뽐내기가 될 듯한 말은 아무래도 꺼릴 때가 낫고, 생각나눔이 될 듯하다 느껴지는 말을 차근차근 고르면 더욱 낫습니다. 이래저래 익숙하다고 그냥 쓰는 말보다, 덜 익숙하거나 좀 낯설더라도 내 마음밭을 가꾸고 이웃 마음자리를 돌볼 수 있는 말을 고르면 훨씬 즐거우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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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0 16:03ⓒ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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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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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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