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은 일제고사가 치러진 날이다. 강제적인 시험, 대책없는 줄세우기에 반대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시험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했다. 목포에서 30명의 학생들이 구례로 떠나는 길을 동행 취재했다.
학교의 반 협박에 체험학습 포기도
체험학습 준비로 들뜬 지난달 30일 현장체험단을 신청한 한 학부모는 체험학습 허락까지 받아놓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체험학습 불허" 연락을 받았다. 담임선생님의 반려에 이어 교장선생님과 "가겠다, 가지마라"는 지리한 입씨름이 이어졌다.
결국 학교 측에 체험학습을 보내겠다고 통보한 후 수화기를 내렸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체험학습 이후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까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실제로 체험학습 당일에 체험학습 대신 교실로 발을 돌린 몇몇 아이들이 나오기도 했다. 체험학습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 동의서만 제출하면 떠날 수 있다. 학교 측의 불허에 이 당연한 권리행사가 반항으로 변질됐다.
아이들에게는 시험보는 시간이 아깝다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지만 멀리 떠나는 아이들은 신이 났다. 구례에 도착한 아이들은 제일 먼저 압화체험장에 들렀다. 삼십여 분의 시간 동안 압화 열쇠고리를 뚝딱 만들고 자랑이 이어진다.
자리를 옮긴 농업유물 전시관에서 아이들은 허브향을 맡고 농기구를 직접 만져봤다. 뻥튀기 기구며 물레를 직접 만져보는 아이들의 표정엔 호기심이 가득하다.
▲다듬이 방망이를 만져보는 아이에게 지나가던 어르신이 다듬이의 용도를 설명중이다. 변철진
▲ 다듬이 방망이를 만져보는 아이에게 지나가던 어르신이 다듬이의 용도를 설명중이다.
ⓒ 변철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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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은 산수유로 유명한 고장이다. 산수유는 400년 전 산동성에서 시집 온 중국 처녀가 구례로 시집올 때 혼수품으로 가져와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산수유 군락지에서 아이들은 열매와 꽃을 만져보며 선생님께 질문한다.
▲산수유 군락지에 들린 아이들에게 산수유에 대해 설명중이다. 변철진
▲ 산수유 군락지에 들린 아이들에게 산수유에 대해 설명중이다.
ⓒ 변철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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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들른 토산어류생태관에서 아이들은 필라니아를 직접 잡아보며 실컷 뛰어노는 시간을 보냈다.
행사를 준비한 목포 시민연대 백동규 사무처장은 "일제고사 대신 선택한 구례로 떠나는 현장체험학습은 학부모, 학생이 갖는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일제고사가 갖는 교육의 폐단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체험학습을 통해 이를 더 많이 알려내고, 일제고사를 폐지하는 과정으로 전개하는 과정에서 의미있는 행사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체험학습의 긍정적인 평과와 달리 불이익이 우려되고 있다. 이에 백동규 사무처장은 "목포지역 교장단 회의에서 현장체험을 떠나는 아이들을 결석 처리 한다고 공식표명했고, 현장체험학습 동의서를 제출한 부모에게 수차례 전화해 갖은 협박을 일삼는 교육의 행태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를 꿋꿋이 이겨내고 현장학습에 참여한 부모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후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여러 가지 불이익에 대해서는 학교 당국과 교육부에 응당한 대책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행사에 참가한 학부모는 "아이와 함께 오니 좋다"라며 "참여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직접 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하고 일제고사를 보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라고 참여 과정을 설명했다. "선생님도 어렵지만 이를 지지해주셔서 오히려 선생님께 미안하다. 학교 측에서는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다며 결석처리에 대한 이야기와 3년 개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더라"라며 개탄했다. 그러나 "3년 개근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일제고사에 시큰둥한 아이들
체험학습에 참여한 윤지형 학생은 "친구들은 시험을 안 본다고 하니 부러워했다"라며 웃어보였다. 참여과정에서 "선생님은 허락해 주셨는데 교감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은 교육청에서 뭐라고 한다면서 안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도 시험을 반가워 하지 않는다. 시험 하나만 늘었을 뿐"이라며 일제고사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체험학습에 엄지를 치켜든 한 아이는 일제고사 이야기엔 얼굴을 찡그렸다. 물고기를 잡았던 체험이 가장 신났다는 답변이 이어진다.
일제고사의 위신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임실의 성적조작 사건이나 체육부 학생 배제 등의 사례를 목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는 한 교사는 "아이들이 일제고사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시험지에 빙고 게임을 하거나 같은 번호로 찍기, 5분 만에 시험을 끝내고 자버리는 등 더 이상 공신력있는 시험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교실 안을 설명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얼굴에 피곤이 묻어있지만 표정은 밝다. 체험학습 과정 중 압화 체험장에서 아이들은 독창성을 평가할 수 있었다. 농기구 전시장에서 다듬이를 두드리는 모습에서 학습에 대한 흥미도를 확인했다.
인터뷰 도중 한 학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는 데서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판단할 줄 아는 판단력, 배려심 등 시험으로 평가할 수 없는 주요 과목들이 남아있다. 교육부는 '자기방식'으로 세우려는 줄이 삐뚤어졌다고 무자비한 힘을 휘두르고 있다. '애만도 못한' 어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목포2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4.02 15:42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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