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적십자사 간행 책자. 하단에 '인간을 구하는 것은 인간이다'라고 써놓은 문구가 인상적이다.
이용철
3번 코너에서도 친절한 간호사가 차근차근 서두름없이 헌혈기증자들을 맞았고 나도 순서를 기다려서 그들 앞에 앉았다. 혈압을 재고 혈액혈 검사 등을 위해 혈액을 채취하였는데 한국과 다르게 주사기로 피를 뽑았다. 한국에서는 간단히 손톱 위에 피를 내서 한다고 하니 국가마다 다를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드디어 헌혈을 할 기회를 갖고 대기하는 버스를 탔다. 누워서 팔을 내밀자 한국에서도 헌혈을 해봤느냐고 간호사가 묻는다. 한국에서도 예전엔 자주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년에 한 두 번하기 힘들었다고 하니 한국의 헌혈문화는 어떠냐고 거듭 묻는다. 한국에서는 역이나 터미널 앞에 헌혈의 집이 있어서 헌혈기증자들의 접근성이 좋다고 하니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은지 부러워하는 하는 눈치였다.
경품은 무엇을 주느냐고 묻기에 영화를 보거나 책을 살 수 있는 문화상품권과 작은 화장품, 열쇠고리 등 선물에다가 음료수나 과자도 풍족하게 준다고 하니, 일본은 고작 포켓용 티슈와 음료수 한 병이라며 한국에는 후원자들이 많은가 보다며 놀라워했다.
한국문화와 간단한 한국어를 말하는 동안 400밀리리터 헌혈봉지가 가득찼다. 자기들은 시내 어느 지역에 있는 적십자 헌혈센터인데 접근성은 멀지만 다음에도 꼭 참여해달라는 친절한 인사를 받으며 그들과 헤어졌다.
그 날 늦은 오후였다. 아르바이트를 위해 가던 중 전화를 받았는데 낮에 헌혈한 곳의 직원이었다. 이용철씨가 맞느냐며 정말 정말 죄송한데 자기가 다시 확인해 본 결과 일본에서는 한국(한국 전체인지 아니면 내가 기입한 경기도 지역만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확인하지는 않았지만)이 말라리아 감염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다음 기회를 이용해달라는 거였다.
마치 자신의 실수라도 되는 양 몇 번씩이나 죄송하다는 그의 자세에 오히려 내가 그렇냐고, 각 나라마다 기준이 있기는 하겠다고, 한국에서도 헌혈할 때 엄격히 해외여행을 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헌혈에 적합한지 확인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이해해주니 고맙다는 듯, 몇 번이고 미안하다며 다음 기회에 헌혈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체류한 지 얼마나 되느냐고 묻기에 7개월 된다고 했더니 체류기간 3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며 앞으로 2년 반 후에나 헌혈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모처럼 일본에서도 헌혈을 이어가고 싶었던 나는 조금은 유감이지만 현실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겠다며 통화를 마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왜 한국이 아직도 말라리아 감염지역이라고 일본이 분류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유학을 몇 년동안 한 학생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같은 경험이 있다며 한국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 이후로 헌혈을 안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