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청약통장' 열풍... 서민들은 울고 투자자는 웃고

주택청약종합저축, 실수요자보다는 투자자에게 유리... "건설업체 살리기" 지적도

등록 2009.05.07 21:07수정 2009.05.0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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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6일 인천 청라지구 한 아파트 견본주택 상담석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청약 상담을 받고 있다.

6일 인천 청라지구 한 아파트 견본주택 상담석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청약 상담을 받고 있다. ⓒ 선대식

6일 인천 청라지구 한 아파트 견본주택 상담석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청약 상담을 받고 있다. ⓒ 선대식

225만8306명.

 

지난 6일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한 사람의 숫자다. 사전 예약자를 제외하더라도 이날 하루에만 35만명이 가입했다. 지난 3월말 기준 모든 청약 통장 계좌수가 604만개임을 감안하면, '만능청약통장'이라 불리는 주택청약종합저축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알 수 있다.

 

언론에서도 '대박', '열풍', '인기몰이' 등의 수식어로 주택청약종합저축의 인기를 보도하고 있다. "은행 업무가 마비됐다"고 전한 곳도 있다. 하지만 언론에서 이러한 열기에 허탈감을 느끼는 무주택자·서민들의 목소리는 찾을 수 없다.

 

포털 사이트의 관련 기사에는 "서민들이 아파트를 분양받을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는 등의 많은 누리꾼들의 비판 댓글이 달리고 있다.

 

"10년 청약저축을 들어도 분양금 마련을 못해 청약신청을 못하는 서민들은 밀려난다. 대신 한 살짜리 어린애까지 줄줄이 청약통장 마련해주는 부자들만 청약 신청해서 (아파트 분양권을) 싹쓸이 해버리니 부자들만 살판났다." (네이버 아이디 'philo007')

 

국민주택기금에 구멍... 서둘러 '만능청약통장' 출시

 

정부나 은행에서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가장 큰 이점으로 한 통장으로 공영주택과 민영주택 모두 청약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각 은행 창구에도 '단 하나의 통장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아파트를…'이라고 적힌 알림판이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용면적 85㎡ 이하 공공주택 청약을 위해서는 청약저축에 가입해야 했고, 민영주택 청약에는 청약 예·부금(청약부금은 전용면적 85㎡ 이하 민영주택 청약만 가능)이 필요했다. 기존 청약 통장을 깨고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하는 게 청약하는 데 매우 유리한 셈이다. 여기에 가입 2년 이상이면 4.5%의 금리가 적용되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정부가 주택청약종합저축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국민주택기금의 빠른 감소에 있다. 국민임대아파트 건설과 저소득층·서민 전세자금 지원 등에 활용되는 국민주택기금의 주요 재원인 국민주택채권(부동산 등기 때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는 채권) 발행이 부동산 시장 침체로 줄고, 또 다른 재원인 청약 저축에서도 가입 해지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국민주택기금 수입을 25조원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22조원의 수입만 얻었다. 올해는 1월부터 지출(1조2526억원)이 수입(1조1743억원)보다 많았다. 정부는 국민주택기금 재원 마련을 위해 서둘러 인기 만점의 '만능청약통장'을 만든 것이다.

 

투자자는 웃고, 무주택자 울고... 누굴 위한 만능청약통장?

 

문제는 누구나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청약저축은 무주택 세대주만 가입이 가능했고, 청약 예·부금은 20세가 넘은 사람만 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정부는 "'만능청약통장'에 가입하면 더 많은 청약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렇게 완화된 가입 조건은 무주택자·서민의 내집 마련 기회를 뺏어, 청약 제도의 본래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유주택자와 미성년자의 청약 기회를 제한해 무주택자와 서민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한 부동산 정보업체 관계자가 일간신문에 "유주택자가 중형 공공주택 등을 분양받고자 한다면, 주택청약종합저축 통장을 개설한 뒤 해당 물량의 청약 당시에만 집을 처분해 무주택 자격을 갖추면 된다"고 밝힌 터다.

 

특히, 무주택자만 청약하는 전용면적 85㎡ 이하 공공주택의 경우, 현재도 높은 경쟁률 탓에 당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만능청약통장'의 등장으로, 청약 경쟁률은 치솟을 전망이다. 유주택자와 미성년자(청약은 20세 이상부터 가능)와 경쟁해야 하는 무주택자·서민들의 내집 마련 기회는 더욱 줄어들 게 뻔하다.

 

또한 이번 주택청약종합저축의 또 다른 부작용은 신혼 부부 등 젊은 실수요자보다는 투자자에게 더 유리하다는 데 있다. 경쟁률이 높아져 건설사에서 집값을 높일 가능성이 큰데다 투자자들이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한 자녀들까지 청약 경쟁에 동원할 경우 분양 물량의 상당 부분이 투자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시민단체 쪽에서는 이런 부작용이 우려되는데도 국민주택기금 확대를 위해 정부가 성급히 주택청약종합저축을 내놓은 이유에는 '건설회사 살리기'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주택기금은 아파트를 짓는 민간건설업체에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최근에는 미분양 아파트 매입에도 활용되고 있다.

 

서두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정부가 국민주택기금을 부실한 건설업체에 빌려줘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무주택자·서민에게 불리한 주택청약종합저축의 성급한 도입보다 제대로 된 국민주택기금 관리가 우선"이라며 "'만능청약통장'으로 건설 경기를 띄워 건설사를 살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밝혔다.

#만능청약통장 #주택청약종합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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