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한편에서는 루저문화라고 표현했지만, 장씨는 <시사매거진 2580>에서 "루저(패배자)들의 삶이 아닌, 평범한 20대의 한 단면을 표현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남소연
청년문화를 가늠해보고자 하는 시도가 부쩍 잦다. 얼마 전까지 세대문화를 한두 문장으로 명쾌하게 정의내리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 같은 세대로서의 동질감이나 의식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공유되는 소비 코드도 없었다. 세대 담론은 전무했다. <88만원 세대>가 나오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말도 많아졌다. 문화가 아닌 경제 사회적 굴레로써 정의된 세대 개념은, 90년대 이후로는 더욱 드문 것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의 나열과 짱돌을 들라는 수사적인 결론 앞에 청년들의 한숨기 어린 자조는 더욱 깊어졌다.
그런 좌절감 앞에 급기야 전에 없던, 일종의 문화적인 기류가 형성됐다. 소비를 통해 드러난 세대의 공기는 루저문화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매체들이 청년실업과 루저문화라는 두 가지 코드에 주목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루저문화에 심취해있다"는 식의 진단과 분석이 난무한다.
오늘의 청년문화는 정치와 무관하다. 혹은 무관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래서 가져다 붙이기 쉽고 편리하다. 좌우를 막론하고 숱한 매체들이 청년실업과 루저문화를 다투어 입에 문다. 더불어 이쪽의 당위를 지키고 저쪽의 세계관을 비웃기 위한 논거로 활용한다. 이를테면 왼쪽의 청년실업은 신자유주의 가속화 때문이고 오른쪽의 청년실업은 좌파 정권 10년 탓이다. 누구의 해석이 옳든 청년실업 자체는 실재하는 현상이니 그러거나 말거나다. 그렇다면 대책이 중요한데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청년 CEO 1000명 양병설'을 듣고 있자니,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 잘 하겠지 싶다만 그 청년과 이 청년이 같은 종류의 청년이라는 실감은 딱히 들지 않는다.
비관과 체념의 정서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루저문화로 단정 지은 지금의 청년문화를 흡사 돼지독감 비슷한 질병의 일종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도 많다. 그래서 기사 말미에는 반드시 정신과 의사의 조언이 따라 붙는다. "그렇다고 자녀를 너무 닦달하는 건 좋지 않다."
88만원 세대, 루저문화어쨌든 오늘 날의 청년문화에 대해 정색하고 달려들어 해독해보려 하면, 그러니까 뭔가, 사실 별 할 말이 없다. 앞서도 말했듯이 지금의 청년문화는 정치적 구호 아래 애써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기사 제목 붙이기 좋으라고 어거지로 조합한 세대 구별용 문자 놀음도 아니다. 맥류와 동기를 논하기도 애매하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글쎄. 그래서 몇 가지 상징적인 문장들로 정리하기 쉬웠던 과거의 세대문화와도 확연히 구별 된다 그래도 애써 시도해보자면, 90년대가 "난 너와 달라" "모두가 예, 라고 대답할 때 아니오, 라고"였다면, 지금은 "난 제발 너이고 싶어" "모두가 예, 라고 대답할 때 빛의 속도로 그 누구보다 먼저 예, 라고 외칠 준비가 되어있어. 끼워만 달라" 랄까.
어쩌다 그리됐든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의 청년문화는 88만원 세대라는 현상과 루저문화라는 취향의 결합으로 어렴풋하게나마 그 꼴을 짐작해볼 수 있다. 결합은 자연스러웠다. 이 현상과 취향은 서로를 끌어당긴다. 자조는 비루한 자들의 언제나 가장 훌륭한 유희거리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 따로 떼어 지금의 청년문화를 규명하고자 하는 건 지루하고 의미 없는 작업이다. '루저문화의 기원' 따위 기사를 쏟아내며 6, 70년대 펑크나 90년대 그런지를 헤집어 맥류를 끄집어내는 건 문자 낭비에 불과하다. 차라리 <고래사냥>이든 <바보들의 행진>을 떠올려도 루저문화의 자취는 쉽게 읽힌다. 그건 그리 부르기 전에도 그냥 그렇게 있던 거다.
문제는 지금의 청년문화와 종전 루저문화 사이의 체온이 사뭇 다르다는 데 있다. 루저문화라는 건 선택이 가능한 그야말로 취향의 문제, 혹은 정치적 신념의 문제였다. 지금 청년 세대 안에서 드러나는 루저문화의 흔적은 갈아입기 용이한 취향이나 구호라기보다 사회 구조적 환경으로부터 빚어진 어쩔 수 없는 굴레에 더 가깝다. 물론 이 사회 구조적 환경이라는 것에 대해 누구나 경각심을 가지고 주목하며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이 세대가 특히 그렇다. 어쩌다 그리됐다, 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어쩌다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