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난으로 지역의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지난달이다. 전북 장수읍에 손님을 모시러 갔다가 고속버스 연착으로 시간이 남아서 전날의 피로도 풀 겸 늘 가던 목욕탕엘 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폐업했단다. 재작년 한 해 동안 장수읍 결혼이민자 가족지원센터 강사로 나가면서 자주 애용하던 목욕탕인데 폐업한 지가 거의 1년이 됐다는 것이다.
시골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 뿐더러 급속한 고령화로 목욕탕을 이용하는 절대인구도 덩달아 준 것이다. 더구나 고속도로와 우회도로의 개설로 통과인구도 없다 보니 시골경제의 파산은 목욕탕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업난으로 지역 목욕탕이 다 사라진다? 목욕탕을 산업의 구조변화로 인한 사양산업쯤으로 치부해도 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목욕탕은 몸을 씻고 때를 벗기는 장소만이 아니라 휴식과 재충전이 이뤄지는 곳이다. 더욱이 시골 목욕탕은 대개가 아는 분들이라 동네 소식도 주고받고 어르신 등도 밀어 드린다. 그야말로 훌륭한 사교 장소로 기능한다. 다목적 공공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지개념으로 접근해 주민자치 목욕탕 도입하자대안목욕탕이라고나 할까. 나는 무주의 안성면에서 아름다운 목욕탕을 발견했다. 면내의 푸른꿈고등학교에 주 2회씩 강의를 나가면서 들르게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목욕탕이었다.
우선 목욕비가 쌌다. 일반인은 1500원이고 노인은 단돈 1000원이었다. 탕 안에는 무분별한 거품시설들도 없었다. 사우나실 하나와 냉·온탕, 그리고 샤워대와 앉아 때 미는 시설이 전부다. 수건과 비누는 물론 로션 등은 개인 용품함에 각자 보관한다. 아주 위생적인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이용자들은 물과 비누, 수건을 검소하게 쓴다.
홀짝수일로 남자와 여자가 따로 이용하니 시설과 운영 비용도 반으로 줄 것 같았다. 철저히 지역주민 본위의 보건시설이었다. 몇 년 전 봤던 온천의 나라 일본의 목욕탕이 우리의 70년대 목욕탕 같았다. 생태목욕탕이라 할 정도로 검소했다.
참을 수 없는 탐구욕(?)으로 담당 직원을 만나 자세히 물었다. 어떻게 운영되며 왜 이런 시설을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에 두게 되었는지를. 운영비의 손익은 어떠하며 지역민들의 만족도에 대해서도 소상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안성면의 주민자치 목욕탕의 역사는 길었다. 긴 역사만큼 곡절도 많았지만 지금은 이 목욕탕이 본보기가 되어 설천면과 무풍면, 부남면에도 이 같은 목욕탕을 운영한다고 했다.
수영장이나 찜질방이 있다고 해도 목욕탕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월 수만 원의 회원권을 끊어야 하거나 신체적 한계 등으로 시골 노인들은 이용할 수가 없다. 시골버스도 주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행정에서 지원하지 않는가. 목욕탕도 같은 논리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타의 건강증진 시설들과 통합하여 반신욕법이나 냉온욕법 등의 자연의학에서 강조하는 건강법을 주민자치목욕탕에서 적극 시행하여 지역민의 건강을 북돋우는 공간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운영도 주민자치로 하도록 유도하면 좋은 자치사례가 되지 않을까.
주민의 위생과 보건을 위한 복지 개념으로 접근하면 시골에서 목욕탕이 사라지는 것을 방관만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디 장수군만의 문제이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북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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