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권 여사에게 '봉하에 묻히자'고 했다"

이호철 전 민정수석... "고향땅 소박한 무덤이 노무현답지 않나"

등록 2009.05.29 21:32수정 2009.05.2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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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지로 논의되고 있는 사저에서 서쪽으로 50여m 떨어진 야산의 모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지로 논의되고 있는 사저에서 서쪽으로 50여m 떨어진 야산의 모습. ⓒ 유성호


"울지 마이소, 여기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보따리 터질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봉하마을을 찾아온 조문객들이 자신을 붙잡고 울먹이자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 386 참모들의 군기반장'이라는 말을 듣는 그는 2002년 대선 전에는 부산을 지키면서 노 전 대통령을 도운 '동업자'였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국회의원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청와대에서만 노 전 대통령을 도왔고, 노 전 대통령 퇴임 뒤에는 같이 귀향해 부산에서 매일 출퇴근하면서 농사일 등을 도왔다.

노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인생행로를 바꾸는 계기가 된 1981년 '부림'사건의 주역이기도 한 그는 노 전 대통령과는 한 가족 같은 관계다.

그가 노 전 대통령 서거소식을 들은 것은 이란에서였다. 전세금을 뺀 돈으로 부인과 함께 세계여행을 하던 중 뉴스를 보고 지난 24일 귀국했다. 그 뒤는 '터지는 울음보따리를 참으면서' 노 전 대통령을 잘 보내드리는 일에만 몰두한 시간이었다.

28일 새벽, 그나마 여유 있는 시간에 만난 그는 "봉하마을에 내려온 뒤 노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에게 '우리 여기에 묻히자'고 했단다"고 전했다. 

이 전 수석은 "대통령이 마을 뒷산에 나무를 심을 때 이렇게 저렇게 한 것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저 조경이 아니라 나중에 당신이 묻힐 곳을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은 이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유가족과 참모들이 장지를 정하는 상의를 할 때 미리부터 '봉하마을'안을 관철시키겠다는 작정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대전 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역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또 화장 뒤 분골해서 광주 등 여러 지역에 나눠모시자는 말도 있었지만, (권)여사님과 건호씨도 그렇고 다수가 대통령께서 원한 대로 봉하마을에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a  5월 29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울역에서 용산으로 향하는 가운데 한 시민이 큰 절을 하고 있다.

5월 29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울역에서 용산으로 향하는 가운데 한 시민이 큰 절을 하고 있다. ⓒ 황방열


첫 귀향대통령 이어 고향땅에 묻힌 첫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의 장지는 자연스럽게 봉하마을 사저 옆 야산으로 결정됐다.

이 전 수석은 그러면서 페르시아 제국의 건설자이자 포로 상태인 유대인들을 해방시키는 등 피정복민의 종교와 풍속을 인정한 것으로 유명한 키루스 대제의 무덤 이야기를 꺼냈다.

"이란 여행 중에 키루스 대제의 무덤에 가봤다. 돌로 만들었는데, 대제국 황제의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묘였다. 노 대통령도 작은 묘, 묘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묻힌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하는 그런 묘를 원하신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과 국립현충원은 안 어울리지 않나."

유시민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고향에 묻히기 원했던 이유를 이렇게 추정했다.

"노 대통령은 봉하마을 생각을 많이 하셨다. 고향으로 귀향한 것에는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나 지원도 중요하지만 모범사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때문에 당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 거기에 비석이라도 하나 만들어놓으면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러면 고향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해서 노 전 대통령은 그답게 '귀향한 첫 대통령'에 이어 '고향땅에 묻히는 첫 대통령'이 됐다.
#노무현 #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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