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에 구멍났다고 바로 버리시나요?

어차피 몸속에 감춰진 속옷 "완전 찢어질 때까지 입읍시다"

등록 2009.06.02 15:23수정 2009.06.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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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러닝셔츠에 구멍이 좀 생겼다고 집어던질 일은 아닙니다. 묵묵히 입으면 됩니다. 다 찢어질때까지.

러닝셔츠에 구멍이 좀 생겼다고 집어던질 일은 아닙니다. 묵묵히 입으면 됩니다. 다 찢어질때까지. ⓒ 윤태


옷, 신발, 양말 등을 오래 등을 오랫동안 입고 착용하다보면 닳기 마련입니다. 닳아서 구멍이 나거나 찢어지기도 하고 신발은 물이 새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즉시 교체를 해야합니다.


어떤 날은 양말에 큰 구멍이 생긴지도 모르고 그 양말을 신고 일을 하러 간적도 있습니다. 구멍난 부위가 차라리 발바닥이었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뒤꿈치 쪽에 큼직하게 구멍이 나서 망신을 당한적도 있습니다.

"우하하하, 선생님 양말 빵꾸났다!" 하면서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지요. 제 직업이 독서토론 방문교사로 구두를 벗고 늘 고객(초등학생과 주로 어머니)을 마주해야 하니까요. 아이들이 제게 계속 놀리면 어머니도 무안하신지, 아이들에게 자꾸 그러지 말라고 말리십니다. 그러면 저는 "헤헤, 사는 게 다 그렇지요" 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머니께 이야기를 했답니다. 속으로 창피하면서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이죠.

그런데 조금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도 당장은 입는데 큰 불편함이 없는 게 있습니다. 러닝셔츠(일명 메리야스)나 팬티 등 속옷들입니다. 이것들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처음에는 콩알만 하게 구멍이 생기다가 점점 그 범위가 넓어져 결국에 찢어져버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삼각)팬티의 경우 고무줄이 늘어나거나 고무줄을 통과하는 부위가 닳아 고무줄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닳아빠진 속옷을 보고는 아내는 새것으로 혹은 다른 것으로 갈아입으라고 합니다. 저는 절대 'NO' 라고 대답합니다. 완전히 찢어질 때까지 혹은 고무줄이 끊어질 때 까지 입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멍난 거 입고 다니면 아내 자신이 망신이고 사람들이 자신을 욕할 것이라며 다른 옷을 입고 갈 것을 권유합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NO' 입니다.

a  아침 8시 전에 빠져나간 가스요금. 생활비 통장에 16만9천원이라....매달 14일이 월급날인데 걱정입니다. 이러니 절약을 안할수가 없습니다.

아침 8시 전에 빠져나간 가스요금. 생활비 통장에 16만9천원이라....매달 14일이 월급날인데 걱정입니다. 이러니 절약을 안할수가 없습니다. ⓒ 윤태

솔직히 아내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적어도 구멍 난 러닝에 메리야스 즉 속옷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글쎄, 어디선가 똥물을 갑작스레 뒤집어 써 어쩔 수 없이, 선택의 여지없이 곧장 목욕탕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긴다면 구멍 난 속옷이 노출돼 망신을 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극단적인 경우의 수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 특수 철제 장비를 뒤집어쓰고 집안에서 생활하지 않는 것처럼, 또 63빌딩이 언제 무너질까 두려워 일부러 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는 것처럼 말이죠.

걱정하는 아내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저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실용적'으로 입으려고 합니다. 창피할 일도 불편할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닳고 닳아빠진 속옷이 제게는 더 편한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옷이나 신발 등 처음 착용할 때는 뻑뻑한 그런 느낌이 있다가 적응되면 편하지 않습니까.


지난 96년도에 제대하면서 입던 군용 '목련 팬티' 몇 장도 가지고 나왔는데 결혼 때까지도 그 옷들을 입은 기억이 납니다. 유성 매직으로 제 이름을 썼었지요. 군에서 입던 옷을 사회에서 5~6년 더 입은 셈입니다. '버려랴, 더 입어야 한다'를 놓고 아내와 몇 번 실랑이 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은 제 의지대로 된 것이지요.

요즘 어려워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이달 1일부터 택시 기본요금이 2400원으로 올랐고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도 인상 예정이라고 합니다. 급여는 수 년째 제자리걸음이고 물가만 수시로 저 멀리 뛰어가고 있습니다. 따라 잡을 수 없으니 헉헉거리다가 주저앉게 되는 상황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말이죠.

a  닳고 닳아서 구멍이 나버린 팬티. 구멍 아래에 세로로 찢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쫒아다니면서 엉덩이 까 내리고 팬티를 보려고 하지 않는 한 그냥 아무일 없듯 편하게 입으면 그만입니다. 완전히 찢어질때까지 말이죠.

닳고 닳아서 구멍이 나버린 팬티. 구멍 아래에 세로로 찢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쫒아다니면서 엉덩이 까 내리고 팬티를 보려고 하지 않는 한 그냥 아무일 없듯 편하게 입으면 그만입니다. 완전히 찢어질때까지 말이죠. ⓒ 윤태


생활비 통장에 돈이 입출금 될 때마다 그 내역과 통장 잔액이 제 휴대폰에 전송됩니다. 2일아침 8시가 되기 전에 가스요금이 자동으로 출금됐습니다. 생활비 잔액이 고작 16만 원 조금 넘게 남았네요. 급여는 매달 14일에 들어오는데 월초에 '펑크'가 나버렸네요.

사업해서 큰 돈을 벌거나 하루아침에 로또에 당첨될 것이 아니라면 최대한 줄여야합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신이 그것을 좀 감수하고 굳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물건 하나를 쓰더라도 최대한 써야합니다.

닳아빠진 러닝, 팬티를 입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가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a  구멍은 나지 않았지만 고무줄을 넣은 곳이 닳아 고무줄이 노출됐습니다. 하지만 입는데는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구멍은 나지 않았지만 고무줄을 넣은 곳이 닳아 고무줄이 노출됐습니다. 하지만 입는데는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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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블로그에 함께 올립니다
#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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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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