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청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수천 명이 희생된 민간인집단희생지(동구 낭월동)의 현장훼손 방지를 위한 안내판 설치를 외면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사고 있다.
대전산내희생자유족회에 따르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전국 주요지역 민간인 집단희생지의 현장 및 유해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장에 '집단희생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하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안내판 설치사업 신청 여부를 질의했다. 또 안내판 설치를 희망하는 지방자치단체에는 설치비 및 관리비를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진실화해위가 다른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대전 동구청에 안내판 설치사업 신청 여부를 질의한 것은 지난 2월.
이에 대해 대전 동구청은 지난 3월 9일 진실화해위에 보낸 공문을 통해 "현지 지역주민들의 정서 및 여론이 부정적"이라며 "안내판을 신청하지 않겠다"고 회신했다.
대전 동구청 관계자는 "현장 인근에 사는 지역 주민들이 '집단희생지'라고 새긴 안내판 설치에 부정적이어서 '진실화해위'에 구청이 나서 설치작업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가 올해 전국 집단희생지 15곳에 추진 중인 안내판 설치사업 대상에서 산내 골령골 집단희생지는 제외했다.
김종현 대전산내희생자유족회장은 "현장 부근에 유해가 드러나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어 대전시와 동구청에 안내판 설치를 수년째 요청했다"며 "자치단체가 현장 훼손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국가 차원의 안내판 설치마저 외면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족회장 "'설치하겠다'던 동구청장 약속 어디로..."
이어 "올 1월경 면담 당시 이장우 대전 동구청장께서 유가족들의 안내판 설치 요청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변한 바 있다"며 "유가족에게는 설치하겠다고 답변하고 정작 국가에서 설치해 주겠다고 하는데도 주민여론을 내세워 이를 거부한 것은 소신 없는 거짓 행정"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장우 동구청장은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며 "담당 부서를 통해 (안내판 설치가 무산된) 자세한 경위를 파악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전시장과 대전 동구청장은 산내희생자유족회의 거듭된 요청에도 매년 위령제 참석 및 추도사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00년 첫 위령제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대전시장과 관할 동구청장의 추도사 없는 위령제를 지내왔다. 오는 7월 예정된 올해 위령제 참석마저 참가하지 않을 경우 자치단체장 없는 위령제는 10년째를 맞게 된다.
대전 산내 학살 현장은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제주 4·3 관련자 등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과 보도연맹 관련 민간인 등 7000여 명(최소 3000명)이 집단학살 후 암매장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아낸 미군 제25 CIC 분견대의 활동보고서에는 "1950년 7월 1일 한국 정부의 지시로 경찰이 대전과 그 인접지역에서 민간인을 집단 살해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2009.06.05 13:08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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