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 전체가 학살터"... 사실이었다

진실화해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집단 학살 유해 30여구 발굴

등록 2007.08.29 13:08수정 2007.08.3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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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한국전쟁당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무더기로 드러났다. 두개골에 총탄에 맞은 흔적이 뚜렷하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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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미군에 의해 촬영된 골령골 현장에서의 총살직전 장면. 이 사진의 배경 장소는 이번에 유해가 발굴된 곳과 인접(50여m)해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한국전쟁 당시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 및 민간인들이 군경에 의해 집단 희생된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자로 보이는 유해가 무더기로 발굴됐다. 이에 따라 산내 골령골 일대 대부분이 집단 암매장지라는 그간의 추정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약칭 진실화해위원회)가 29일 오전 공개한 유해발굴 현장(대전시 동구 낭월동) 3지점(가로 2m x 세로 4.5m) 과 5지점(가로 3.5m x 세로 1m)에서는 1950년 7월 희생된 민간인들로 보이는 유해 30여 구와 수 십여 점의 탄두와 탄피를 비롯해 단추 등 유품 등이 드러나 있었다.

희생자들은 고무신과 구두, 크고 작은 단추,열쇠 시계고리 등 유품으로 미뤄 민간인들로 추정되고 있다. 여성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비롯 중학교 교복 단추로 보이는 '中'가 새겨진 단추도 발견됐다. 두개골 등에는 총탄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총상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 이밖에 가해자의 것인지 피해자의 것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총무부O'는 직함과 '남용O'라고 새겨진 이름표도 발굴됐다.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조사단 충남대 박물관 성원식 학예연구사는 "3지점의 경우 구덩이안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5열 종대로 무릎을 꿇려 앉힌 다음 옆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게 한 상태에서 총을 쏜 후 그대로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유해 크기가 성년의 것에 비해 비교적 작은 형태가 출토되고 '中'자 단추 등으로 미뤄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추가 발견된 2곳 모두 매장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이는 경사가 매우 급한 곳"이라며 "현재 발굴 작업을 진행중이여서 추가발굴 과정에서 유해수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4m 구덩이에 30여명 몰아넣고 무릎 끓린 그대로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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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 도로에서 50m가량 떨어진 산골짜기에 'ㅁ'자(가로 2m x 세로 4.5m) 형의 구덩이에서 유해가 뒤엉킨 상태로 드러났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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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잔해속에서 중학생 교복단추로 보이는 유품이 나와(3지점) 미성년자도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이번에 유해가 드러난 곳은 산내 골령골 내 4곳의 소규모 암매장 추정지 중 2곳(3지점, 5지점)이다.

28구가 발굴된 3지점의 경우 당시 진입 도로에서 50m이상 떨어진 산골짜기에 'ㅁ'자형의 구덩이에 유해가 서로 뒤엉킨 상태로 드러났다. 5구가 발굴된 5지점은 진입도로가 없는 매우 가파른 산기슭이다.

이는 각각 1000여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암매장지(1지점, 2지점, 3지점)외에 인근 크고 작은 골짜기에서도 학살과 암매장이 이루어 졌다는 세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여서 주목된다.

대전 동구 낭월동에 사는 한 주민은 "산내 골령골 골짜기 곳곳마다 학살이 자행됐다"며 "골짜기 전체가 학살터고 암매장지"라고 말했다.

현재 골령골 현장내 암매장 추정지는 모두 8곳이다. 이중 이번에 발굴이 진행된 곳은 모두 4곳으로 나머지 4곳은 대규모 암매장지로 추정되나 건축행위와 영농행위, 토지 소유주들의 비협조 등으로 발굴작업에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은 "이번 유해 발굴은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이 이루어졌음이 처음으로 실증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며 "암매장지 규모가 크고 희생자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연차적으로 계획을 세워 유해발굴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용X'를 아세요? 이름표에 교복 단추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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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심규상

이날 유가족들은 풍화 작용으로 심하게 훼손된데다 다리마저 제대로 펴지 못한 유해가 드러나자 흐느꼈다.

한 유가족은 "어떻게 무릎을 꿇린 상태로 수 십여년을 묻혀 있게 할 수 있느냐"며 유해를 어루만지기도 했다.

이날 현장설명회에는 진실화해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과 박선주 유해발굴조사단장을 비롯 30여명의 유가족이 참석했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1950년 7월 초 부터 중순 경까지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과 대전 충남북 일원의 보도연맹원 등 최고 7000여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증언에 따르면 암매장지로 추정되는 2지점의 경우 구덩이 길이만도 200여m(폭 4m, 깊이 2m)에 이르는 등 한국전쟁전후 남한지역내 단일지역 최대 학살지로 꼽히고 있다.

한편 진실화해위의 이번 민간인집단희생사건에 대한 유해발굴 사업은 대전 산내 골령골을 비롯 청원 분터골,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전남 구례 봉성산 등 4곳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분터골과 봉성산의 경우 유해발굴 현장 설명회를 가진 바 있다.

골령골 유가족들 "대전시-동구청 똑똑히 보시오"
"'반쪽 발굴' 원인은 자치단체 비협조"

▲ 유해발굴을 맡은 충남대 박물관 성원식 학예연구사가 발굴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대전 산내골령골 희생자 및 유가족 및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 (회장 김종현)는 29일 성명을 내고 대전시와 대전 동구청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 단체는 성명을 통해 "이번 발굴은 전체 8곳 중 규모가 가장 큰 1,2,8 학살지가 제외된 반쪽 발굴"이라며 "이는 자치단체와 토지소유주의 비협조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대전 동구청에 대해 "1학살지의 경우 대법원에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에 대한 건축중지명령이 정당하다고 판결했음에도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유해발굴 사업을 가로 막고 있다"고 밝혔다.

대전시와 대전시장에 대해서도 "수 차례에 걸쳐 산내 암매장지에 대한 보전 대책 마련을 요청했지만 수수방관했고 위령제 때마다 시장이 참석을 거부하는 등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꼬집었다.

또 "유해발굴 사업 예산을 현실에 맞게 대폭 증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심규상
#산내 골령골 #대전 동구 낭월동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 #암매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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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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