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입구간송미술관과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입구
박태상
오세창(1864 ~ 1953)은 애국운동의 일환으로 대한서화협회를 창립하여 예술운동에 진력하는 한편 서화(書畵)의 감식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어서 문화운동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전형필은 오세창의 권유로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우리 민족문화재를 수집하는 데 주력하게 된다. 1932년 서울 관훈동의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인수하고, 한국의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들을 사 모으기 시작한다. 1934년에는 서울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수집하고 그가 33세가 되던 1938년에는 자신의 소장품으로 북단장 안에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세운다. 이것이 확대되어 1966년에 간송미술관이 되었다.
간송미술관은 한국의 국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미술관 중의 하나이다. 간송의 문화재 구입은 개인적인 취미이기도 했지만, 민족문화재를 지킨다는 신념에서 출발하였다. 안동에서 2000원이란 큰돈을 주고 산 훈민정음 원본에 관한 일화와 존 개츠비의 소장품인 고려청자의 수집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1943년 6월 '훈민정음'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전형필은 당시 집 다섯 채 값에 해당하는 2천 원을 지불하고 입수했다. 한글 탄압을 일삼던 일제가 알면 문제가 될 것을 염려하여 비밀리에 보관하다가 1945년 광복 후에 이를 공개했다. 또 전형필은 전 재산을 털어 일본으로 넘어갈 뻔한 국보급 유물을 구입하였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천학매병(千鶴梅甁)'이란 별칭이 있는데, 한때 이 물건의 주인이었던 일본인 마에다 사이이치로가 붙였다. 원래 새겨진 학은 69마리지만 매병 속 창공을 날아가는 학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백~수천 마리 학이 비상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명품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일본인 손을 거쳐 1935년 한국인 수집가 간송(澗松) 전형필(1906~62)에게 낙점됐다.
당시 간송은 서울에서 반반한 집 열 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을 들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간송의 뜻에 따라 지금도 간송미술관은 봄 ․ 가을 국보급 미술전시회를 개최하면서도 한 번도 입장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자신이 평생 모은 국보 문화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간송미술관이 있음으로 해서 성북동은 서울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全鎣弼)이 33세 때 세운 것이다. 1966년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수장품을 정리·연구하기 위하여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발족되었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서화를 비롯해 자기·불상·불구(佛具)·전적(典籍)·와당·전(벽돌) 등 많은 유물들이 있다. 연구소에서는 매년 2회에 걸쳐 논문집 '간송문화(澗松文華)' 발행과 함께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간송문화'는 1971년 창간되었고 발행된 책자로 '추사명품집(秋史名品集)', '겸재명품집(謙齋名品集)' 등이 있다.
간송미술관은 먼저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성북초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문에 낡아서 골동품이 된 흰 대리석으로 간송미술관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실 우리는 골동(骨董)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쓴다. 이를테면 인사동 골동품점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30년대 말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기자였던 이태준은 골동이란 말을 쓰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 대신 고완(古翫)이란 말을 써야한다고 그의 수필에서 강조했다. 골동이란 말에는 고물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전이라거나 전통이란 것이 오직 보관되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주검이요 무덤의 대명사일 것이다. 우리가 돈과 시간을 드려 자기의 서재를 묘지화 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청년층지식인들이 도자기를 수집하는 것은 고서적을 수집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나타내야 할 것이다. 완상이나 소장욕에 그치지 않고 미술품으로 공예품으로 정당한 현대적 해석을 발견해서 고물(古物) 그것이 주검의 먼지를 털고 새로운 미(美)와 새로운 생명의 불사조가 되게 해주어야할 것이다. 거기에 정말 고완(古翫)의 생활화가 있는 줄 안다. (이태준, <고완품과 생활>, '문장' 1940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