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노동자의 가족이 '점거농성 중단'을 요구하며 공장 밖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측 직원들의 방송차량을 가로막고 '함께살자'고 호소하고 있다.
권우성
16일 오전 7시, 큰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공장 정문 앞으로 나온 권씨는 이미 도착한 정리해고자 부인 20여 명과 인사를 나눴다. 대부분 "울 남편 힘내라"라고 적힌 연두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전 9시경이 되자, 길 건너편 공터에 그들의 50배가 넘는 숫자의 건장한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정리해고 비대상자들이었다. 그들은 연습이라도 하듯 팔을 치켜들며 연신 "정상조업, 파업철회"를 외쳤다. 긴 쇠갈고리를 들고 금방이라도 공장 안으로 들어올 기세였다.
무조건 막아야 했다. 급히 다른 정리해고자 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던 부인들이 속속 달려나왔다. 그래 봐야 60여 명. 개중에는 갓난아기를 옆집에 맡기지 못한 채 안고 나온 부인도 있고, 유모차를 밀고 나온 부인도 있다.
일단 흰 천을 길게 이어서 인간띠를 만들었다. '제발, 이 선을 넘지 마라'는 간절한 호소였다. 권씨를 비롯한 몇 명은 흰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해고는 곧 죽음"이라는 의미에서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두 명의 동료 노동자를 잊지 말자는 상징이기도 했다. 장미꽃도 들고 나왔다. 같은 직원들끼리 싸우지 말고 평화적인 대화로 해법을 찾아보자는 뜻에서다.
하지만 장미꽃은 남편의 직장 동료들에게 전달도 되기 전에 아스팔트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해 하던 한 부인은 회사 측 방송차량 앞을 가로막고 눈물로 하소연했다. "제발, 우리 함께 삽시다." 아예 차량 앞 아스팔트 위로 드러눕는 부인도 있었다. 곳곳에서 서러움에 북받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같이 한솥밥 먹던 동료들이잖아요."
권씨가 남편과 한 부서에서 일하는 선후배 동료를 발견한 건 그때였다. 정리해고 비대상자들은 부서별로 대열을 만들고 서 있었기 때문에 찾기도 쉬웠다. 남편과 입사 동기로 주말이면 축구동호회에 함께 다니던 사람도 있었다. 10년 넘게 한 부서에서 일하면서, 남편이 '형님, 형님'하고 깍듯이 모셨던 사람도 있었다.
권씨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왜 거기 서 있느냐'고, '제발 이쪽으로 나오라'고….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은 권씨의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남편의 동료들도 권씨를 발견했지만, 쓴웃음만 지은 채 방송차량에서 나오는 선창 구호를 따라 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일터를 정상화시키자!"
상황이 여의치 않자, 회사 측에서 동원한 정리해고 비대상자들 1000여 명은 서문을 돌아 약 2km를 행진하며 후문으로 향했다. 부인들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미리 준비한 현수막을 앞세웠다. 현수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솥밥 먹은 20년지기 동료들에게 더 이상 비수를 꽂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 살기 위한, 오로지 살기 위한 공장 점거 파업을 이어가며, 당신들의 동료들이."
"함께 삽시다" 눈물로 호소해 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