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리 들으셨어요? 여자 울음소리 말입니다"

[2009 공포를 말한다②] 부대원들을 떨게 했던 15년전 울음소리에 대한 기억

등록 2009.06.27 11:28수정 2009.06.2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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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1999년 개봉한 일본영화 <링>의 한 장면.

지난 1999년 개봉한 일본영화 <링>의 한 장면. ⓒ 오메가프로젝트


"흐흐흐흐흑… 흑, 흑흑."


그건 분명 젊은 여성의 울음소리였다. 시간은 새벽 4시가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94년 이른 봄의 어느 날. K-2 소총을 단단히 감아쥐었지만, 스산한 새벽 공기는 실체 없는 공포로 천천히 기어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내일 모레면 제대인 말년병장 선임병은 초소에 기대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모두가 기피한다는 새벽보초에 걸린 것이 원망스러웠고, 정신을 놓고 잠에 빠진 선임이 너무도 얄미웠다.

경기도 모처의 한 부대. 내가 속한 포대(포병의 중대)가 보초를 맡은 곳은 포상(포를 놓아두는 곳)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다. 초소 바로 곁에는 두툼한 철제펜스가, 펜스에서 20여 m 떨어진 곳에는 20여기 정도의 마을공동묘지가, 그리고 그 아래 50여m 정도쯤에 30여 가구 남짓의 민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들리는 것인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분명 울음소리 비슷한 것이 바람을 타고 귓가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 순간 이었다. "사삭 사삭 사사삭!" 무언가 초소 앞 수풀을 더듬는 소리. 오감을 열어두고 소리에 집중하는 찰나, 갑자기 2~3m 앞으로 미친 듯 뛰어드는 소리. "삭삭삭, 삭삭!"

실체 없는 공포, 보이지 않는 두려움


a  영화 <알포인트>의 한 장면.

영화 <알포인트>의 한 장면. ⓒ 씨앤필름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누구야?"

본능적인 외침이 새벽하늘을 갈랐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잠에서 깬 고참이 깔고 앉았던 철모를 들고 뛰쳐나왔다. 그사이… 주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적막으로 빠져들었다.


"뭐야? 뭘 본 거야?" 무얼 봤다고 할 수 있을까…. 난감했다. 실체 없는 공포에 대해 딱히 설명할 수 없었다. "아이고오~ 야 인마 너는 짬밥을 어디로 먹었냐. 병장씩이나 단 놈이 겁에 절어가지고. 대한민국 군대 말세다, 말세."

이후 며칠간을 여러 사람의 놀림감이 되어야 했다. 함께 보초를 나갔던 고참의 과장까지 곁들여져 나는 영락없이 겁 많고, 짬밥 헛먹은 군인이 되어 버렸다. 억울했다. 수풀이야 바람이 건드렸다 해도 울음소리는 분명했는데. 그런데 약 일주일 후였다.

"혹시 그때 그 소리 들었습니까?"
"무슨… 소리?"

전날 보초를 섰던 후임병 둘이 얼굴이 핼쑥해져 말을 걸어왔다. "여자 울음소리 말입니다. 우리 둘 다 들었습니다. 뭐랄까, 들리다가 말다가… 꼭 입을 막고 우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정확한 묘사에 온 몸에 소름이 일었다. 바로 그 소리였던 것이다.

"너희도 들었니. 그 소리?"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였다. 하루걸러 서너 명씩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이들이 생겨났다. 시간은 새벽 서너 시 경. 귀를 기울일라 치면 끊기는 그 소리. 분명 젊은 여자의 울음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했고, 이어 묘지 쪽에서 들려온다고 입을 모으기 시작했다.

부대가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밤 근무를 외곽보초 대신 실내 불침번으로 바꿔달라는 압력이 행정병에게 가해졌고, 기어이 그 소식은 성격 거친 포대장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네. 이 미친놈들.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나! 한 번만 더 그런 개소리 들리면 전부 영창에다 잡아 처넣을 테다. 알았나?"

현실에선 귀신보다 사람이 훨씬 무서운 법. 살기등등한 노기에 모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칠 수밖에. 그러나 분명 들리는 소리를 어쩔까. 매일은 아니지만 2~3일에 한 번씩 들려오는 형체 없는 공포, 그저 울음만 들려올 뿐 딱히 위해를 가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들어줄 수만은 없는 그 소리.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드디어 해결 된, 울음소리의 비밀

a  영화 <알포인트>의 한 장면.

영화 <알포인트>의 한 장면. ⓒ 씨앤필름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 귀신."

어느 날 아침, 후임인 안 상병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면 다가왔다. 울음소리에 시달린 지 보름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평소 똑 부러지고 입바른 소리 잘하는 안 상병. 울음소리를 들은 장본인 중 한 명인데도, 누군지 밝혀내겠다며 외곽보초를 자원했던 그이지만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글쎄, 웬 아줌마가 무덤가에 와서 울고 있지 뭡니까."

안 상병이 밝힌 전모(?)는 이렇다. 보초교대를 앞둔 새벽 3시경, 어김없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단다. 단단히 준비하고 나간 안 상병은 펜스에 바짝 붙어 플래시를 켜고 무덤가를 비춰 나갔단다. 그리고 저 멀리서 보이는 흰 소복. 누군가가 무덤가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고 한다.

"거기 누구예요? 여기요! 아주머니 누가 돌아가셨어요?"

거듭된 외침에 살짝 고개를 돌린 여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안 상병은 호흡을 가다듬고 여자를 나무랐다고 한다.

"아주머니, 슬픈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자꾸 이 새벽 시간에 오셔서 우시면 어떡합니까. 지금 부대원들이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발칵 뒤집어졌단 말입니다. 죄송한데, 보안문제도 있고 하니까 되도록 낮에 오세요. 군인들도 잠을 자야 할 거 아닙니까."

안 상병의 질책에 여자는 여전히 구슬프게 울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안 상병님, 대단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말리는 데도 펜스에 바짝 붙어가지고." 함께 보초를 나간 권 일병은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며 안 상병을 추켜세웠다.

그 여인이 '오죽했으면' 하는 마음도 잠시,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날 이후 부대는 평온을 되찾았다.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더 이상 슬픈 흐느낌에 시달리지 않았고 모두의 입맛까지 되살아났다. 그렇게 국방부의 시계는 다시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다시 밝혀진 사실, 과연 그 여인은 누구였을까?

어느덧 날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논밭과 과실수마다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시점. 필수인원을 부대에 남겨놓고 모두 인근 마을로 대민지원을 나가기 시작했다. 고됐지만 또 다른 땀의 의미를 되새기던 시절. 그런데….

"저기, 저기 말입니다."

어느 날 저녁 대민지원을 마쳤을 무렵 안 상병이 헐레벌떡 찾아왔다. "왜?" 대수롭잖게 답해놓고 나서야 넋이 나간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래 오늘 힘든데 나갔다 왔나?" 이어 뜨문뜨문 이어지는 안 상병의 말.

"오늘 나간 곳이 공동묘지 아래 돼지 돈사부근이라, 오후 참을 먹다가 그 생각이 나서, 그때 그 울음소리 말입니다. 마을 분들에게 물었는데… 그런데, 그런…데 근래에 죽은 사람이 없답니다. 마지막으로 묘를 쓴 게 3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라는데, 젊은 아내는 충격으로 마을을 떠나 자살했다는 소문이고. 아무튼 죽은 사람이 없답니다."
"그…럼 그 여자가 3년 전…?"
"그렇겠죠? 아니, 아니 사람이었겠죠? 제발 사람이었다고 해 주십시오!"

누구였을까. 소리죽여 흐느끼던 그 사람은. 사람, 아니면 혹시?

a  영화 <천녀유혼>의 한 장면.

영화 <천녀유혼>의 한 장면. ⓒ 필름 워크샵


분명한 건 누군가의 죽음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슬퍼하던 한 영혼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적어도 타인에게 직접적 위해나 피해를 입히지 않고, 선선히 부탁을 들어주던 맑은 혼이었다는 것.

귀신보다 못한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 "사람보다 착한 귀신도 많다"고 외치던, 영화 <천녀유혼>의 여주인공 눈물이 문득 떠오른다.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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