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청춘'의 아이 돌보미 도전기

[온고을 사람들 32]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임을님씨

등록 2009.06.25 09:22수정 2009.06.2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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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사범대 2호관. 소나기가 내렸던 지난 22일, 궂은 날씨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강의실에 학생들이 빽빽하다. '아이돌보미 양성교육' 수업시간이다. 학생의 주 연령은 40~50대. 주로 아주머니들이다. 오전 9시에 첫수업을 시작해서 저녁 6시에 마지막 수업이 끝난다. 오늘이 벌써 나흘째. 이들은 왜 이 시간에 이렇듯 맹렬하게 '열공'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 중 한 명, 최고령(?)으로 보이는 임을님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자 주>


 아이돌보미 양성교육 수업 현장
아이돌보미 양성교육 수업 현장아이들보미 양성사업단

- 이 수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요?
"현재 집에서 외손주 3명을 보고 있어. 9살, 7살, 4살짜리….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본격적으로 이 쪽 공부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 수업이 오후 6시까지인데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오셨나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방과후 수업하고 학원을 마치고 오후 5시쯤 와. 둘째는 병설유치원에서 5시쯤 끝나는데 원래는 내가 데리러 가야하지만 교육기간 중에는 딸에게 맡겼지. 그리고 셋째는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종일반에 맡겼어. 5시쯤 15분쯤이면 집에 와."

- 무척 힘들 것 같아요.
"내가 처녀 적에도 농촌진흥원에서 하는 탁아소 도우미 교육을 받은 적이 있거든. 그리고 3년동안 농번기마다 무보수로 아이들을 봤어. 그리고 그 전에는 내가 조카 하나도 키웠거든. 애 업고 다니면서 새참 젖도 먹이고 다니고 그랬지.

그런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별로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 내가 내 체력관리를 철저히 하거든. 아침마다 집앞에 있는 산에 다녀.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내가 성격이 좀 유별난 면도 있어. 산을 올라가도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거든. 사람들이 나보고 끈기있다고 하고 유별나다고도 해(웃음)."

- 따님처럼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안쓰럽지. 많이 도와주고 싶지. 실은 딸도 셋째 가졌을 때 낙태하려고 했는데 내가 반대했어. 내가 키워줄테니까 낳으라고 그랬거든. 어쩌겠어. 그렇게 말했으니 키워줘야지(웃음). 이런 교육이 있어서 참 좋은 것 같아. 이런 도우미가 많아져서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단체관광도 좋지만 애보는 것이 더 즐겁다

- 하지만 어머님도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할텐데요. 여가생활 같은 것은 어떻게하세요?
"여가생활…. 아쉽지. 그거야 당연하지. 하지만 어떡해. 그래도 짬 내서 놀러도 가고 그래. 동네에 여행계가 있거든. 1년에 한 두 번은 놀러가서 자고 오기도 하고 그래. 그리고 난 이 일(아이돌보미)이 더 좋아. 나한테 잘 맞는 것 같아. 아이들도 예쁘고. 그리고 정 심심하면 날마다 앞산에 올라가. 몸도 건강해지고 참 좋거든."


 임을님씨
임을님씨안소민
- 저도 잠깐 수업을 들어봤는데요, 상당히 딱딱하던데요. 어렵지 않으세요?
"어려워. 그런데 배울 게 많아. 우리같은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키워보고 경험은 있지만 체계적인 지식이 부족하거든. 수업 듣다보면 가슴에 와닿는 게 많더라구. 우리는 경험은 많지만 지식이 보완되어있지 않으니까 지식을 보완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오늘도 질문했거든. '내가 손주 셋을 키우는데 밥먹을 때 번잡스럽습니다. 그래서 애들을 먼저 얼른 먹이고 나중에 어른들이 먹는데 이건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더라구. 어른하고 같이 먹으면서 식사예절도 제대로 배우고 양보도 하고 배려도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그래. 그 말을 듣고 내가 무릎을 쳤다니까. 강의 듣고 강의실 나가면서 잊어버릴지 모르지만 정말 재밌어. 배운다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어. 몰랐던 것을 정말 많이 알게 되었어."

아이 돌보미에게 체력은 필수... 매일 앞산 올라

- 아까 처녀 적에 탁아소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교육이었나요? 그리고 지금 이 교육과의 차이점은 뭐가 있을까요?
"오래되어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는 그냥 아이들 손톱 발톱 깎아주고, 씻겨주고 닦아주고 밥 먹이고, 냇가에서 놀고, 모정에서 율동하고, 인형 만들어주고…. 뭐 그런 거였던 것 같애. 재밌었지. 거기에 비하면 이번 교육은 정말 체계적이고 똑부러지고 확실하지."

- 어머님 젊은 시절은 어땠나요?
"애만 키웠지. 남편 뒷바라지하고 살림하고. 그땐 어디 여자들이 바깥활동을 할 수 있었나."  

- 이번 청강생들 보니까 아가씨들도 꽤 많더라구요. 재밌는 질문 하나 할게요. 어머님처럼 경륜이 많은 어머님들과 대학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고 자격증이 있는 아가씨. 어느쪽이 아이돌보미에 더 유리할까요?"
"그러게…(웃음).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겠지. 그런데 내 생각엔 아이를 많이 접해고 경험해본 사람이 낫지 않을까 싶어."

- 아이들 키우는데 가장 필요한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 생각엔 자유롭게 키우는 게 좋은 것 같아. 무조건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는 것보다 그냥 자유롭게 놓아두면 다 제 할 일을 알아서 하더라고. 남들은 우리 애들이 착실해서 그런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 그리고 건강한 체력이지. 몸이 아프면 아무리 애가 예뻐도 볼 수가 없거든.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하는 일이 바로 이 일이야."

일하는 데 늦은 나이란 없다  

- 이번 교육 받으면서 드신 생각은?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 손주들 키우는데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아. 이왕이면 잘 알고 키우는 게 좋잖아. 그리고 이걸로 용돈이라도 벌 수 있으면 좋겠어."

 아이돌보미 양성교육 수업 현장
아이돌보미 양성교육 수업 현장아이돌보미 양성사업단

- 현재 특별히 하는 일은 있으세요?
"특별히 하는 일은 없고 예전에 유치원에서 청소하고 아이들 간식 나누어주는 일은 했어. 용돈 버는 셈치고 했지. 그 전에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녹즙 배달도 한 적이 있었어. 노인일자리창출에서 하는 거였는데 내가 신청했어. "

- 아이돌보미 수료증이 있으면 취업도 가능하다는데 취업 생각 있으세요?
"암, 그럼, 당연히 하고 싶지. 일도 하고 싶고, 용돈도 벌고 싶고. 사회가 나를 안 받아줘서 문제지. 받아만 준다면 뭐든지 하고 싶어. 요즘 65세면 청춘이야. 산후도우미도 자신있거든. 할아버지(남편)도 세상을 뜨고, 적적한데 일하니까 좋아."

- 다른 자녀분들이 손주 키워달라고 하시면 어떡하실 거예요?
"키워줘야지. 아직은 자신있어. 아직 능력이 닿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주고 싶어."

어머님들에겐 '취업', 워킹맘에겐 '탁아'...일석이조
[미니 인터뷰] 아기돌보미 사업팀장 한명숙씨
보건복지부와 전북도청에서 공동으로 주최하는 '아이돌보기 양성교육사업'은 전업주부들에게는 취업의 일자리를, 맞벌이주부에게는 양육부담을 줄여준다는 의미에서 그 의미가 크다. 다음은, 이번 교육을 맡은 아이돌보기 한명숙 팀장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 이번 교육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작년까지 각 자치단체에서 실행했던 아이돌보미 양육교육을 이번에는 전라북도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실시하게되었다. 이번에는 전북대 아동학과에 위탁을 해서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 이번 청강생의 선정기준과 연령층은?
"전주를 비롯해 남원, 익산, 무주 등 전북지역의 각 자치단체에서 선정했다. 올해는 특별히 양육외에 '학습' 도우미 제도를 도입했다. 따라서 면접을 볼 때 학습을 할 수 있는 분들에 주안점을 두었다. 학력제한을 두었다는 말은 아니다. 아이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뽑혔다. 연령층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 많다. 이제 아이들을 다 키운 뒤 취업을 희망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커리어를 잘 살리는데 아이돌보미만한 직업이 없는 듯 하다."

- 수업일정이 빡빡하다. 수업 분위기는 어떤가."
"무조건 80시간 이상을 이수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전북 각 지역에서 9시 첫수업에 출석하려면 새벽에 일찍 나와야한다. 모두들 매우 열심이다."

- 양육서비스는 어떻게 받을 수 있나. 선정기준이 있나?"
"각 해당 거주자면 누구나 가능하다. 미리 가정방문을 해서 면접을 본다. 한달에 최대 80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다. 1시간당 1천 원꼴이다. 시간당 초과시 5백 원 부담이다. 저렴하니 많은 분들이 이용한다."

- 이용자들의 계층이나 직업은 어떤가?"
"아무래도 맞벌이 주부들이 많다. 그 외에도 저녁시간에 여가활동이나 그밖의 양육부담으로 인해 신청하는 분들도 있다. 그밖의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니 그것까지는 자세히 모른다."

- 이번 교육이 끝나고 난 뒤 이곳에서 주로 하는 일은?
"1년에 6회, 재보수교육을 해야 한다. 재보수교육을 비롯해서 이용자 상담을 하거나, 위탁가정과 아이돌보미를 연계해주기도 한다. 이용자의 구미에 맞는 돌보미를 파견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때마다 수정보완해서 파견한다."

- 수료증을 받고 난 후 활동은 어떤가.
"아이돌보미 양성교육을 수료한 후 각 지역 사업체에 가서 수료증을 제시하면 된다. 각 지역 사업체에서 아이돌보미가 필요한 이용자 가정과 연계를 해준다."


#아이돌보미 양성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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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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