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업 부실, 규제 없는 '작은 정부'의 결과

[새사연의 '생얼' 한국 경제(12)] 상조업, 자칫 하면 '금융폭탄' 될 수도

등록 2009.07.30 14:26수정 2009.07.3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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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서민 피해를 야기하는 상조업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위반행위 혐의가 있는 38개 업체에 대해 시정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부실 상조업체에 의한 피해사례가 언론에 속속 보도되면서 소비자들의 주의가 각별히 요구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되는 상조업 피해상담 사례는 2006년 509건, 2007년 833건, 2008년 1374건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피해 사례는 약속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거나 질이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경미한(?) 피해부터 계약해지 시 납입금 환급을 거절하거나 상조업체가 소리 소문도 없이 문을 닫고 사라지는 심각한 피해까지 다양하다.

 

a  상조업 관련 소비자원피해상담접수

상조업 관련 소비자원피해상담접수 ⓒ 공정위

상조업 관련 소비자원피해상담접수 ⓒ 공정위

 

매달 3만 원씩 10년 납부, 상조업은 금융업일까?

 

현재 상조업의 운영방식은 소비자들이 상조업체에 일정금액을 사전에 분할 납부하거나 일시에 납부하고, 향후에 행사가 발생할 때 약속된 서비스를 제공받는 식이다. 예를 들어 360만 원짜리 장례 서비스를 계약할 경우 한 달에 3만 원씩 10년을 납입하면 향후 장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장례가 발생했을 때에 아직 불입잔금이 남아있으면 일시불로 지급해야 한다. 이를 '선불식 할부거래'라고 부른다.

 

매월 일정금액을 납부한다는 점에서 은행의 정기예금이나 보험 등의 금융상품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물론 장례 서비스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대가로 돈을 납부하는 것으로 금리나 금전 등의 혜택은 없다. 하지만 일단 상품을 구매하기까지 평균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업체가 고객의 돈을 보관하고, 그 돈을 굴려서 수익을 얻고, 계약해지 시에는 공정위 규정 상 90퍼센트의 금액을 환불해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조업 역시 자금을 융통하는 금융업의 일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광범위한 일반 국민들로부터 공개적으로 돈을 납입받고, 이 돈을 관리한다는 점에서 은행, 저축은행, 협동조합, 보험 등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그 만큼의 사회적 파장과 책임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사적인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계나 사모펀드 등과는 또 다른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관련 법규도 관할 부서도 없는 상조업

 

하지만 현재 상조업은 자유업으로 분류되어 자본금 5000만 원만 있으면 특별한 허가 없이도 누구나 운영할 수 있다.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 아무런 법적 규제가 없으며, 아예 관련 법 자체가 미비한 실정이다. 명확한 정부 관할부서도 없으며 다만 2007년부터 공정위가 관련법 개정 주관부처로 결정되었다. 이후 공정위가 표준약관을 제정했지만 강제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2008년 10월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통해 상조업을 관할하고자 했지만 아직 입법이 되지 않았다.

 

은행, 저축은행, 협동조합, 보험 등이 까다로운 절차와 규제 속에서 운영되는 것과 매우 다른 상황이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려는 법안이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이라는 점은 상조업을 하나의 금융업 혹은 금융업의 성격을 가진 특수한 사업으로 보지 않고 있으며, 세부적인 거래방식의 틀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정위가 전국의 281개 상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총가입회원수는 약 265만 명, 고객불입금 잔고는 8989억 원으로, 약 9000억 원에 달했다. 반면 상조업체의 총자산은 5492억 원으로 고객불입금 대비 총자산 비율은 61.0퍼센트이다. 하지만 상조업체 내부의 양극화가 심해서 자산 3억 원 미만의 소규모 영세 사업자가 상조업 전체의 절반(149개)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개별 업체를 살펴보면 고객불입금 대비 총자산 비율이 50퍼센트 미만인 상조업체가 32.5퍼센트나 차지하고 있다. 특히 자본금 1억 원 미만의 업체도 176개나 존재했다.

 

자칫 잘못하면 금융폭탄 될 수도

 

또한 파산시 고객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금액의 비율을 뜻하는 지급여력 비율은 평균 47.5퍼센트에 불과했다. 지급여력 비율이 50퍼센트 미만인 사업체는 139개(49.4퍼센트)로, 회원수는 164만 명에 달했다. 파산 시 고객불입금을 전혀 돌려받을 수 없는 업체도 47개(16.7퍼센트)로서, 회원수는 21만 명(7.8퍼센트)에 달했다.

 

게다가 고객들로부터 걷은 돈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규제가 없는 것도 문제이다. 금융감독원이 100억 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상조업체를 대상으로 외부인 감사를 실시한 결과, 유명한 상조업체 한 곳은 작년 말 기준 22억 원의 적자를 냈고, 총부채도 총자산에 비해 357억 원이나 많았다. 이 회사는 관계회사에 대여를 해주거나 부동산에 투자하고, 막대한 광고비를 지출하는 데에 고객들의 납입금을 사용했다. 이 외에도 펀드나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경우도 있다.

 

강동구 동국대 교수(생사의례 전공)는 "일부 상조회사의 부실이 자본금의 수백 배나 되는데도 버티는 것은 '금융 피라미드'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며 "상조는 도시보다는 농촌, 고학력․고소득층보다는 저학력․저소득층에게 급속히 파고들고 있어 심각성이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이렇게 불완전하여 언제든지 문제가 터질 수 있는 금융상품이 서민들을 상대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상조업도 금융규제 차원에서 다루어야

 

상조업의 역사가 60년 가까이 된 일본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회사를 설립할 수 있으며, 회사의 크기에 따라 보유해야 할 자본금 액수도 최소 1억 엔(약 13억 원) 이상으로 정해져 있다. 특히 '선수금보전조치'라는 제도가 있어서 고객들로부터 수령한 납입금의 절반은 당국에서 지정한 금융기관에 예치해야만 한다. 현재 우리 국회에서도 입법예고 중인 '할부거래법 개정안'에도 상조업체의 자격요건으로 자본금 3억 원 이상 등을 정하며, 소비자의 청약 철회권 보장, 납입금 금융기관 예치 의무 조항 등이 담겨있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상조업을 금융업, 특히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앞으로 더욱 확장될 금융의 하나로 바라보고 적절한 규제를 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한편 상조업은 노령화 사회와 함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노년층 사회보장문제의 하나이다. 국가 차원에서의 사회안전망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민간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 전체의 복지와 사회안전망 차원에서도 상조업의 향후 모습을 모색해야 한다. 이렇게 놓고 보자면 최근 터진 상조업 부실 문제는 금융업에 대한 파악과 적절한 규제를 하지 못하고, 사회안전망도 세우지 못한 무능력한 작은 정부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이수연 기자는 새사연 경제 담당 연구원입니다.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7.30 14:26ⓒ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수연 기자는 새사연 경제 담당 연구원입니다.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상조업 #상조업피해 #노년층사회보장 #금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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