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삵2숨을 헐떡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최성수
작년에 은행나무 밭의 풀을 베다가 난데없이 토끼가 달려 나오고, 그 뒤를 쫓던 족제비를 본 적이 있는 터라 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웃었다. 이곳 보리소골은 워낙 깊은 산골이라 온갖 짐승들을 가끔 마주치기 때문에, 산짐승 보고 놀란 부인의 표정이 한 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져 한 숨 잘 생각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 트럭을 몰고 골짜기를 떠났던 황 선생이 다시 차를 몰고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저 아래 그 짐승이 움직이지 않고 숨어 있어요. 덫을 매달고 있는 것 같아요."황 선생의 말에 나는 조심조심 짐승이 숨어 있다는 곳으로 가 본다. 길 가 풀숲 그늘에 등만 보이는 짐승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져 있다. 등 쪽으로 검은 반점이 점점이 박혀 있는 것이 표범 같다. 몸집은 큰 고양이만 해 보였다. 그러나 얼굴을 풀숲에 감추고 있어 무슨 짐승인지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만 가 볼게요."아까의 공포가 다시 되살아나는지, 황 선생 부부는 내게 얼른 작별의 말을 하고 차를 몰고 내려가 버린다. 차 소리가 나는데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분명 덫에 걸려 달아날 수가 없는 처지에 빠진 듯했다.
나도 어찌 할 방도가 없어 한참 짐승을 바라보기만 했다. 녀석은 숨을 몰아쉬다가 가끔씩 온 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그대로 두면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기에는 겁이 나기도 했다.
한참 생각을 하다가, 아랫마을에 사는 친척 동생이 떠올랐다. 오래 고향 마을에 살아서 농촌 생활 경험이 누구보다도 풍부한 동생이니 이런 짐승도 어떻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너구리나 족제비 아닌가요? 누가 덫을 놨을까? 요즘은 덫 놓는 사람 없는데. 제가 한 번 올라가 볼게요."동생은 내 전화를 받고 그렇게 대답하더니, 잠시 후 차를 몰고 올라왔다.
짐승이 누운 풀숲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동생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살쾡인데 앞발이 덫에 걸렸네요. 풀어줘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