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만 참아 주세요"

태양초 만들려는 주인의 마음

등록 2009.08.26 09:24수정 2009.08.26 14:1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3일간만 참아 주세요 .

3일간만 참아 주세요 . ⓒ 정현순

▲ 3일간만 참아 주세요 . ⓒ 정현순

a 긴행렬의 고추 ..

긴행렬의 고추 .. ⓒ 정현순

▲ 긴행렬의 고추 .. ⓒ 정현순

'어 고추잖아.' 난 가던 길을 멈추고 자동차에서 내렸다. 차를 세울 장소가 마땅치 않아 조금은 멀리까지 갔지만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긴 고추행렬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24일, 시흥시와 광명시의 경계선에 있는 과림저수지 옆에 있는 도로를 지날 때 빨간 고추행렬이 아주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난 그것이 고추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지나치다가 끝자락에 가서 그것이 고추라는 것을 알았다.

 

그곳의 보도블럭의 색깔과 거의 비슷한 색깔이라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너무 멀리왔기도 했고, 자동차의 속도가 있고, 뒤차가 따라오고 있어 멈출 수가 없었다. 속으로 꽤나 아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포기하고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다음 날인 25일 또 그 앞을 지날 일이 있었다. 2차선으로 아주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 자리에 또 고추가 있으려나? 하고. 다행히도 있었다. 난 차를 멈추고 카메라를 들고 내렸다. 그곳은 인적이 드물고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거리다.

 

될 수 있으면 고추 옆으로 바짝 붙어서 걸었지만 가끔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들려온다. 어쨌든 그런 장소에 고추를 널어 놓은 주인의 생각이 기발했다. 나도 고추를 말리고 싶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아 말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a 복잡하고 위험한 도로에서 말리는 고추 ..

복잡하고 위험한 도로에서 말리는 고추 .. ⓒ 정현순

▲ 복잡하고 위험한 도로에서 말리는 고추 .. ⓒ 정현순

 

 

 

a 이렇게 긴 고추행렬은 처음보네 ..

이렇게 긴 고추행렬은 처음보네 .. ⓒ 정현순

▲ 이렇게 긴 고추행렬은 처음보네 .. ⓒ 정현순

 

천천히 고추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었다. 행여 고추를 밟기라도 하면 안되니깐. 아무것도 깔지 않고 고추들이 널려 있는곳도 있었다. 가끔은 차도로 떨어진 고추, 누군가가 밟아 속살을  드러낸 고추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저쪽 인도를 막아놓고 고추를 널어 놓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고추를 널어 놓은 끝까지 보니깐 이젤, 막대기 등에 종이박스가 걸려있었다. 앞에  가서보니 그 종이박스에는 "3일간만 참아주세요"라는 글귀가 써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고추주인이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문구였던 것이다.

 

a 인도를 막아 놓았지만 양해를 구하는 마음 ..

인도를 막아 놓았지만 양해를 구하는 마음 .. ⓒ 정현순

▲ 인도를 막아 놓았지만 양해를 구하는 마음 .. ⓒ 정현순

 

a 고추 ..

고추 .. ⓒ 정현순

▲ 고추 .. ⓒ 정현순

a 고추 ..

고추 .. ⓒ 정현순

▲ 고추 .. ⓒ 정현순

a 한 두개 정도는 떨어지기도 하고 ..

한 두개 정도는 떨어지기도 하고 .. ⓒ 정현순

▲ 한 두개 정도는 떨어지기도 하고 .. ⓒ 정현순
a 중간쯤 되는 거리 ..

중간쯤 되는 거리 .. ⓒ 정현순

▲ 중간쯤 되는 거리 .. ⓒ 정현순

a .. .

.. . ⓒ 정현순

▲ .. . ⓒ 정현순

 

양쪽 끝으로는 건강하지 못한 고추가 널려있었다. 아마도 직접 농사를 지은 고추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건강하지 못한 고추도 버리지 못한 것을 보면 그 마음이 충분히 짐작이 갔다.

 

한낮에는 뜨끈뜨끈한 인도. 그곳에서 아무 일 없이 3일 동안 잘 말리며 어느 정도는 안심을 해도 좋을 것이다.  다행히 25일도 날씨가 좋았다. 고추 주인의 생각처럼 3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고추 만드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3일간만 참아주세요'란 고추 주인과 그외에 고추를 말리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제 오늘 같은 날씨가 최상일 것이다. 잘 마른 고추에 김장을 할 많은 사람들의 밝은 얼굴 표정이 상상이 된다.

 

태양초 만들기는 정말 힘든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주인이 양해를 구하는 마음을 알았으니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2009.08.26 09:24ⓒ 2009 OhmyNews
#태양초만들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로 사는이야기를 씁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