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독한 술

등록 2009.09.11 16:36수정 2009.09.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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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시부님이 다니러 오셨다. 다른 집 큰 며느리들과 다르게 하는 일이라고 하루 종일 붓을 잡으니 은근히 하시는 말씀이 좀 서운했다.


"붓을 잡는다고 쌀이 나오냐 뭐가 나오냐? 옛날이고 지금이고 붓쟁이가 잘 산다는 소리 못들었지라!"

그래서 그 다음부터 시집어른들이 오신다고 하면 얼른 지필묵을 안 보이는데 감추어 두었다. 몇 년 쯤 지난 후 문중에서 치산제가 있어 큰 대리석 비석을 세워야 하는데 문중치산 비문을 쓰려니 전문가가 목돈을 요구해서 부담이 크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부님이 글자수가 천자가 넘는 내용과 함께 여러가지 상석비문 내용을 갖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리고 문중비석에 아녀자 이름 들어가는 경우가 없지만 네가 직접 붓을 잡고 쓸 경우는 특별히 누구누구의 자부라고 들어갈 수 있으니 집안에 좋을 것 같으니 써보라고 권유하셨다. 그리고 그 후 시부님은 나무좋은 곳에 가시면 붓통도 사오시곤 했다.

10대 때부터 붓을 잡는다고 친지들에게 한마디 들었다. 그러나 붓 한 자루 안고 살아가는 생은 감사하다. 이외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독한 술은 예술이라고 했듯이  그 술을 안 마셔본 사람은 맛을 모른다.

예술이 육신의 장애라든가 몸을 자유롭게 할 수 없지만 마음과 영혼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를 할 수 있고 마음에 날개를 달 수 있다.


예술 그래도 예술을 하는 것이 행복한 마음에서.
예술그래도 예술을 하는 것이 행복한 마음에서.이영미

골목마다 한 두달마다 새로 생기는 게임방에 우리 아이들과 아저씨와 아빠들이 몰린다.경제가 어려울수록 취미로 다양한 예술을 즐기면서 마음에 날개를 달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붓쟁이가 되어서 물질로 잘 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남과 비교해서 불행해지는 그런 마음은 없이 자족할 수는 있다. 지족상락하는 그것이 바로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서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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