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웃고 울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영화가 있어 행복한 만년 소년 이승기씨

등록 2009.09.12 17:38수정 2009.09.1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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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산문화원 영화자료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승기씨. 그에게는 영화자료수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마산문화원 영화자료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승기씨. 그에게는 영화자료수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 김연옥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영화란 말을 그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는 이승기(마산문화원 영화자료관 관장)씨. 시인이 시의 창(窓)을 통해 세상을 보듯 스크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그는 영화가 있어 늘 행복한 만년 소년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영화 속에서 웃고 울고 꿈꾸고, 때로는 영화에 퐁당 빠져 즐겁게 놀기도 한다.


올 2월에 그는 평생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마산영화 100년(비매품)>이란 책을 펴냈다. 그리고 이달에는 연극배우 겸 연출가의 아버지 역을 맡고 출연한 김재한 감독의 독립영화 <조용한 남자(가제)>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를 평생지기로 삼은 소탈한 그를 만나면 왠지 삶도 즐겁게 느껴진다. 지난 1일과 3일, 이틀에 걸쳐 그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나는 그를 찾아갔다.  

눈을 뜨고 꾸는 꿈, 영화는 내 운명

지금은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그의 고향 통영에 봉래극장이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 손에 이끌려 그 극장 안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 영화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 커다란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던 여섯 살 꼬마의 마음 속으로 어느새 들어앉은 영화는 한마디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계였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중등학교 국어선생님, 신문기자, 그리고 영화감독이었다. 거제대학, 창원전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신문에도 글을 연재해 봤으니 선생님과 신문기자 꿈은 그나마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루지 못한 꿈, 그래서 더욱 간절한 꿈이 영화감독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2005년에 박재현 감독의 독립영화 <외계인> 촬영 이후 그는 독립영화감독 사이에서 주목 받는 배우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연기력이 남들에게 떨어지지 않은데다 출연료 부담마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했다. 게다가 한 번씩 비상금을 털어 힘들게 영화 작업을 하는 젊은 사람들의 기분도 풀어 준다는 소문 덕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마산문화원 영화자료관 관장, 마산문화원 감사, 장서가, 영화연구가 이외에도 그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영화자료수집가이다. 그는 손에 돈이 좀 쥐어질 때마다 서울, 부산 등지에 있는 헌책방과 비디오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책, 비디오와 DVD 등을 구입했다. 그러다 보니 길 위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했고 끈끈하게, 또는 가볍게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인연 또한 영화 자료들을 통해 맺어졌다.

a 추억의 영화를 상영하는 마산문화원 영화자료관.  

추억의 영화를 상영하는 마산문화원 영화자료관.   ⓒ 김연옥


그동안 모은 자료만 해도 비디오 3천 개, DVD 1천 개, 잡지 3천 권, 이론서 및 서적 6백 권, 그리고 포스터 수천 장에 이른다. 다행히도 2007년 10월 30일에 마산종합운동장 안에 있는 30평짜리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영화자료관(경남 마산시 양덕2동)을 개관하게 되면서 그가 소장한 모든 자료들이 사장되지 않고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흘러간 영화를 보며 잠시나마 옛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영화사랑방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매주 월, 화, 목요일 2시에 추억의 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하고 있는데, 예비 좌석까지 포함해서 서른네 명이 앉을 수 있는 규모이다.

마산영화 100년을 사명감으로 펴내다

a 이승기 영화자료관장이 추억의 영화 상영을 위해 비디오를 고르고 있다.  

이승기 영화자료관장이 추억의 영화 상영을 위해 비디오를 고르고 있다.   ⓒ 김연옥


영화자료관이 개관되자 앞으로 마산영화를 이끌어 나갈 젊은이들을 위해 다리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마산영화 역사를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부산영화 100년(2001)> <부산근대영화사(2009)>를 펴낸 한국영화자료연구원 홍영철 원장의 적극적인 권유도 있었다.

옛 극장들의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07년에 세워진 마산 최초의 영화관인 환서좌, 일제강점기인 1917년께 일본인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이 출자하여 세운 구마산의 수좌 등 사라져 버린 마산의 옛 극장 터를 열정으로 찾아낸 그의 작업을 향해 개인적으로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a 올 2월에 '마산영화 100년'을 펴낸 이승기씨.  

올 2월에 '마산영화 100년'을 펴낸 이승기씨.   ⓒ 김연옥


그의 저서 <마산영화 100년>에는 '사의 찬미'로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 윤심덕과 동경유학생 극단인 동우회(同友會)의 수좌 공연(1921)이 소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1926년에 윤심덕과 동우회의 극작가로 활동했던 김우진이 현해탄으로 함께 몸을 던져 버린 사건은 죽음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제기되어 그 당시 세간을 몹시 떠들썩하게 했다.

한국영화의 선구자인 춘사 나운규와 영화배우 최민수의 외할아버지로 당시 가수 겸 명배우였던 강홍식, 무용가 최승희의 마산 수좌 공연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옛 신문 기사와 함께 실려 있어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마산 극장과 영화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너무 없고 손으로 일일이 글을 쓰려니 힘들기도 해서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마산시학습관에서 근무하는 아들 이경일(42)씨가 힘을 북돋워 주었다며 아들 없이는 책도 내지 못했다는 말로 아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영화는 누구나 접근하기가 쉬우면서 우리 인생의 폭 또한 넓혀 준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볼 수 있는 영화, 그래서 영화평론가 정영일씨는 영화를 가리켜 인생 찬가라고 표현했다.  그저 영화가 좋은 이승기씨. 언젠가 그가 어느 칼럼에서 읽었다는 '영화는 눈을 뜨고 꾸는 꿈이다'는 말이 나이를 잊고 사는 그에게 꼭 어울리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승기씨는 현재 마산 MBC TV 프로그램 <활력천국 플러스>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스크린 야화(1995)><명정리(1999)><1950년대 추억의 영화(2004)><마산영화 100년(2009)>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승기씨는 현재 마산 MBC TV 프로그램 <활력천국 플러스>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스크린 야화(1995)><명정리(1999)><1950년대 추억의 영화(2004)><마산영화 100년(2009)>이 있습니다.
#마산영화100년 #영화자료수집가이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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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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