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머리 세균수 완화해주니 미국 공장 점검 '없던 일'

[국감자료] 강기갑 의원 확인... "미국 통상압력에 굴복해 기습적으로 개정"

등록 2009.09.29 16:31수정 2009.10.0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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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의 통상 압력으로 미국산 냉동대구머리의 위생기준을 대폭 완화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농림수산식품부와 식약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05년 8월 '식품의 기준 및 규격' 최종 개정고시에서 미국산 냉동대구머리의 세균수 기준을 100만/g 이하로 완화해주었다.

특히 정부는 세균수 기준을 완화해주는 대신 미국측으로부터 '가공공장 정기 점검권' 등을 보장받았지만, 냉동대구머리가 식용으로 수입된 이후 단 한 차례도 가공공장 정기 점검을 실시하지 못했다.

지난 1994년 말부터 수입이 허용된 미국산 냉동대구머리는 지난해 230만 달러어치 2000여 톤이 수입됐다.  

가공공장 정기점점과 세균수 완화 맞바꾸다... "현지점검 한 차례도 못해"

미국측이 냉동 대구머리의 수입개방을 요구한 때는 지난 1994년이었다. 하지만 당시 '위생문제' 등을 이유로 국내의 반발은 거셌다.  

강기갑 의원은 "미국은 어류의 머리를 대부분 사료나 폐기물로 처리하고 있으며 어류의 머리는 세균감염이 용이하여 위생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쉽고 대구머리 자체가 국제적으로도 교역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측의 통상압력에 정부는 1994년 말부터 미국산 냉동 대구머리의 식용 수입을 허용했다. 이후 미국측은 수입검사 기준의 하나인 세균수를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어류 머리는 몸통 부분보다 부패가 빨라 유통과정에서 부패 발생 등이 일어날 수 있어 국민건강과 안전 측면에서 세균수 완화를 수용할 수 없다"고 '완화 불가'를 통보했다.

정부측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은 줄기차게 세균수 완화를 요구했다. 결국 정부는 지난 2004년 11월 한미통상현안 점검회의에서 세균수를 '10만 마리/g 이하'에서 '100만마리/g 이하'로 완화해주었다. 대신 정부는 2년마다 미국산 대구머리 가공공장을 점검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받았고, HACCP(위해요수 중점관리기준)가 등록된 공장에서 대구머리를 수출하고, 그 등록공장을 우리 정부에 사전에 통보하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한미간 합의가 끝난 뒤 2005년 8월 정부는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고시를 개정해 대구머리 세균수 기준을 완화했고, 같은해 11월 양해각서(MOU) 초안을 마련해 미국측에 약정 체결을 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측은 갑자기 MOU 체결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측은 "미국산 대구머리에 대한 위생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공장 점검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미국측의 태도 때문에 세균수 완화와 가공공장 정기점검권 보장 등을 합의한 지 5년이 지나도록 가공공장 현지점검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HACCP 등록공장을 우리측에 사전통보해주기로 한 합의사항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강기갑 의원은 "미국이 정부간 합의사항을 헌신짝 버리듯 버린 것"이라며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미국측에 공식적인 항의도 한번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이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삼계탕 수출 불허와 너무도 닮은꼴"이라며 "특히 미국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수산물 가공공장에 대해 '위생문제'와 상관없이 2년에 한번씩 현지점검을 하고 있어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고시 입안예고 때 '세균수 완화'는 없었다... "여론수렴 제대로 안됐다"

문제점은 더 있었다. 세균수 완화 등에 합의한 직후인 2005년 1월 식약청은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개정고시안을 입안예고했다. 그런데 이 개정고시안에는 '세균수 완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러다 같은해 8월 최종 개정고시에서 세균수 기준을 100만 마리/g 이하로 완화시켰다. 세균수 완화에 따른 반발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강 의원은 "미국과의 약속으로 당연히 입안예고안에 포함되었어야 할 대구머리 세균수 완화 부분이 입안예고안에는 빠져 있다가 최종고시에는 포함됐다"며 "이 때문에 대구머리 세균수 완화에 대한 여론수렴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식약청은 당시 해양수산부(현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세균수 완화의 과학적 근거를 제때 제시하지 못해 입안예고할 때에는 세균수 완화 부분이 빠졌다고 해명했다.

식약청은 "세균수 완화를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필요해 해수부에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며 "그러나 입안예고 당시까지 해수부에서 세균수 완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세균수 완화 부분은 제외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식약청은 "그러나 입안예고 후 식품위생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냉동 내구머리에 대한 세균수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최종 고시안에 세균수 완화 부분이 포함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 의원은 "식약청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우리 외교당국은 정부 부처간에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사안을 미국과의 협상에서 약속해주었다는 말이 된다"며 "대구머리가 수입된 지 10년이 넘도록 (세균수 기준이) 개정되지 않다가 미국이 세균수 완화를 제기한 이후에 갑자기 심의위원들이 이에 동의한 것도 납득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강 의원은 "세균수 완화가 국민정서나 건강권 차원에서 접근된 것이 아니라 통상현안 등 정치적 이슈 차원에서 접근되다 보니 사전에 국민들로부터 충분한 의견수렴도 하지 않고 관련규정이 기습적으로 개정됐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우리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조건으로 우리의 삼계탕 수출을 보장하겠다던 미국이 이제 와서 이런 저런 조건을 걸며 수입 문을 걸어잠그고 있다"며 "우리는 사사건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미국이 약속한 사안도 받아내지 못한 것은 정부로서 너무도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감 #강기갑 #미국산 냉동대구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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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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