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성당 매년 두 번의 명절 때마다 내가 모든 조상님들과 교감하고, 수많은 영혼들과 통공(通功)의 인연을 맺고 있는 태안성당 모습이다. 2007년 11월 4일, 추수감사미사 장면이다.
지요하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는 가톨릭 신자로서 세상 뜨는 날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왔으므로 위령미사를 봉헌해 줄 사람들이 많겠지만, 노무현 대통령 경우는 그의 영혼을 챙겨 줄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그 두 분의 영혼을 많이 생각하며 살겠지만 특히 노무현 유스토의 영혼에 좀더 신경을 쓰게 될 것 같다.
해마다 두 번 명절 때만이라도 세 갈래의 모든 조상들을 생각하며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일에서 각별한 기쁨을 얻는다. 또 근래에 세상을 하직한 친인척들을 기억하는 일에서, 뿐만 아니라 나와는 과거 아무 연관이 '없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미사예물봉투에 적은 다음 미사를 지내는 일에서 큰 행복감을 얻는다.
그분들은 모두 하나같이 오늘을 사는 나로 하여금 선업(善業)을 쌓게 해주시는 분들이다. 그들을 위해 정성껏 미사를 봉헌하는 일은 곧 내 영혼 길을 닦는 일이다. 내가 오늘 그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그들과 내 영혼을 두루 비추어주는 '영원의 빛'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인 것이다.
<2>지난 27일(주일) 저녁 성당에 가서 세 개의 '한가위합동위령미사' 예물봉투를 사무장에게 건네 주면서 별도의 개인 위령미사 예물봉투도 하나 함께 맡겼다. 28일(월) 아침 6시 미사를 위령미사로 봉헌하기 위한 예물이었다.
그것은 아내가 자신의 용돈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아내는 며칠 전에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 난에서 한 기사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정현순 기자가 어느 친구 집 사연을 소개한 글이었다. 대학생 아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다.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더없이 기뻤다. 아들이 대견스럽게 보였고, 부모도 함께 떳떳해지는 마음이었다.
아들은 대학 복학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마련하려는 뜻일 터였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인부로 일했다. 그러다가 안전 장치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고층에서 목재를 운반하다가 그만 실족을 하여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기사를 읽은 아내는 몹시 가슴아파했다. "스물 세 살 청년이…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대학 복학을 준비하면서 용돈이라도 번다고…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그만…!" 끊어지는 말로 그 사연을 내게 전하며 아내는 울먹였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건 흔한 일이야. 그까짓 일 가지고 뭘 그렇게…" 할 수도 있는 일을 가지고도 쉬이 한숨짓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아내를 많이 보아온 나로서는 또다시 '부부일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이번에도 아내의 슬픔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군에 갈 대학생 아들을 둔 부모 처지에서, 무사히 군 복무까지 마친 대학생 아들을 졸지에 잃어버린 그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고 깊이 슬퍼하면서, 한숨을 쉬면서 이름 모를 그 젊은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그런데 그렇게 잠시 기도만을 했을 뿐 나는 미사봉헌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아내는 예물봉투를 마련하여 내게 맡긴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부끄러워지는 마음이기도 했다.
아내가 내 컴퓨터 책상 위에 살며시 올려놓은 미사예물 봉투에는 흥미로운(?) 표현이 있었다. 영혼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 자리에는 "지난 8월에 세상을 하직한 이름 모를 23세 청년"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고, '하실 말씀' 난에는 "하느님, 군 제대 후 대학 복학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고층 건물 공사 현장에서 실족하여 숨진 청년을 당신 품에 받아주소서"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28일(월) 아침 6시 미사 때 미사를 주례하시는 보좌 신부님은 미사 지향을 알리면서 "지난 8월 숨진 이름 모를 청년"이라는 표현을 했고, '축성례' 후 간구 부분에서 위령기도를 하시는 주임 신부님도 같은 말을 했다.
보좌 신부님은 물론이고 사제 생활 20년이 지난 주임 신부님도 아마 그런 식으로, 이름 모르는 영혼을 위한 미사를 지내보기는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꽤 많은 '무연고' 영혼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하며 살아왔지만, '이름 모를' 영혼을 위해 미사를 봉헌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