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 역을 맡은 배우 이요원.
MBC
제27대 신라 국왕에 도전하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 덕만공주(이요원 분)의 '진보적' 색채가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이라는 것은 그 이전의 역대 신라 국왕들과 비교할 때에 상대적으로 더 나았다는 뜻이다.
지난 9월 29일 방송된 드라마 <선덕여왕> 제38부에서는 그 같은 덕만의 색깔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서민경제의 위기 앞에서 덕만이 기존의 보수적 해법이 아닌 새로운 진보적 해법을 과감히 선택한 것이다.
귀족들의 매점매석으로 시장의 곡물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음에 따라 서민경제가 '바닥'을 쿵 치고, 이로 인해 많은 소농(小農)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여 귀족들에게 예속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거금을 주고도 곡식을 살 수 없는 기막힌 현실에 분노한 어느 백성이 곡물상점 주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여 신라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 같은 위기 앞에서 진평왕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덕만은 '말로만 서민을 위할 뿐, 실상은 기득권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여느 보수 정치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비축해둔 구휼미를 과감히 방출하여 시장의 곡물가격을 하락시킴으로써 서민경제의 숨통을 틔어주는 한편, '곡물 투기'로 이익을 꾀하는 귀족들에게 큰 손실을 안겨다 주었다.
드라마 속에 나타난 덕만의 태도는 단순히 '애민정신'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경제적 자원을 기득권층이 아닌 서민층을 위해 사용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기득권층을 견제하기 위해 시장에 과감히 개입하겠다는 덕만의 '진보적 색채'가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덕만은 기득권층의 반발에도 국가의 시장 개입을 통해 계층 간의 균형을 도모하려 한 셈이다.
서민경제를 크게 배려한 군주, 선덕여왕물론 위의 줄거리는 드라마 속 내용이다. 그래서 제38부에 묘사된 경제현상들 중에는 실제 역사에서 벗어나는 내용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상품경제의 발달 정도가 미흡한 7세기 전반의 신라에서 시장의 수요공급법칙에 의해 곡물가격이 그처럼 완벽하게 급반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작가적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 제38부는 진보적 색채를 '선덕여왕의 필수조건'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의 덕만공주 아니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은 어떠했을까? 실제의 선덕여왕도 드라마 속의 덕만처럼 진보적 색채를 띤 정치가였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이라는 것은 역대 신라 국왕들과 비교할 때에 상대적으로 더 나았다는 의미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삼국사기>와 필사본 <화랑세기>를 종합해보면,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이 이전의 신라 국왕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진보적인 정치가였다는 판단을 갖게 된다. 세 가지 측면에서 선덕여왕의 진보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선덕여왕은 서민경제를 크게 배려한 군주였다. <삼국사기> 권5 '선덕여왕 본기'에 따르면, 즉위 8개월 만인 선덕여왕 1년(632) 10월에 선덕여왕은 홀아비·홀어미·고아·외톨이로서 경제적 자활능력이 없는 서민들에게 무상으로 곡식을 분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