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바겐? 패키지 딜? 둘 중 하나 내려라"

[국감초점] '아마추어 외교' 성토장 된 외통위

등록 2009.10.05 21:56수정 2009.10.0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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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제안했다는 북핵 문제 일괄타결안인 이른바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 국정감사의 도마에 올라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국정감사 첫날인 5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외교통상부 국감에서는 '그랜드 바겐'의 실효성과 MB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의 정책효과를 두고 여야가 날선 공방을 벌였다. 특히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자세히 설명한 '그랜드 바겐'은 상임위원 27명 모두가 언급할 만큼 핵심 이슈였다.

1차 질의 마지막 두 번째 순서로 질문하게 된 남경필 의원은 "오늘 국감은 그랜드 바겐 국감이 되었다"면서도 역시 그에 대해 질의했다. 남 의원이 지적한 대로 그랜드 바겐은 정책적 의미 및 긍정성과 그 한계 및 문제점이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여야의 평가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컸다.

이회창 "그랜드 바겐, 나는 머리가 나빠서 이해가 안 간다"

먼저 민주당 박상천 의원(전남 고흥)은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 등의 말에 따르면 그랜드 바겐은 한미간에 협의해온 사안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데 이 대통령은 한미가 협의해온 사안을 새로운 것인양 발표했다"면서 "북핵문제에서 우리 목소리를 내려면 새로운 내용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지,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5개국과 협의해온 사안을 갖고 목소리 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지난 30일 방한 당시 '미국의 포괄적 접근(comprehensive approach)과 한국의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 차이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간 한미가 협의해 온 사안으로, 포괄적이고 결정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선진당 이회창 의원(충남 홍성-예산)은 "그랜드 바겐의 내용이 무엇이냐"며 "6자회담에서 정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일괄타결을 하려는 것이냐"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이에 외교통상부 유명환 장관은 "그동안 핵무기 폐기를 합의했어도 단계마다 보상을 해줬다"며 "이게 북한의 지연전술에 악용될 우려가 있어서 주요 사항을 일괄적으로 타결하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북한과 중요한 합의를 하고 나면 결국 이행은 쪼개지는 거 아니냐"며 "이런 포괄 패키지가 지금 실효성이 있으리라고 믿나"고 질타했다. 이 의원은 이어 "일괄타결, 포괄타결 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바 있고 최근 스타인버그 부장관도 말한 것인데 장관은 그랜드 바겐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 나는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이해가 안 간다"면서 "너무 그렇게 막 말하지 말라, 국민들이 믿지 않는다"고 꼬집어 말했다.

민주당 박주선 의원(광주 동구)은 "그랜드 바겐 정책은 전혀 새로운 정책도 아니고 실현 가능성도 없고, 6자회담 당사국과 사전협의도 없는 상태서 이 대통령이 불쑥 제기했다"면서 "6자회담의 혼선과 남북관계의 불신만 심화시키는 아마추어 병살외교"라고 포문을 열었다.


박 의원은 또 "(정부는) 시간만 끄는 비핵화 협상에 문제가 있어서 그랜드 바겐을 제안했다고 했는데 북한과 합의를 하고 서명만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그랜드 바겐이 사인이 되더라도 어차피 이행문제는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해결이 원샷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단계별로 시간을 두면서 해결하고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하는데 새롭지도 않은 이런 제안을 그랜드 바겐으로 묶어서 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랜드 바겐은 '원샷 딜'일까 '패키지 딜'일까

친박연대 송영선 의원(비례대표)도 "김정일이 그랜드 바겐으로 핵을 폐기할 것이라고 믿냐"고 묻고 "그렇게 유도하겠다"는 유 장관의 답변에 대해 "(그랜드 바겐은) 정치적 쇼에 불과한 제안"이라고 쏘아붙였다.

무소속 정동영 의원(전주 덕진)은 일문일답으로 유명환 장관을 몰아붙였다. 정 의원은 먼저 지난 18일 유 장관이 북한의 목표를 '적화통일'로 규정하고 북한의 핵이 '남한을 겨냥한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았다. 정 의원은 "국방부 장관이 (그런 말을) 해도 놀랄 일이다"며 "앞으로도 반공강연을 계속 하겠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유 장관은 "노동당 규약에 '적화통일'이 명시돼 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랜드 바겐에 대해서도 정 의원이 "그랜드 바겐을 '원샷 딜'(one shot deal)이라고 한 해석은 유효하냐"고 묻자, 유 장관은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빠져나갔다. 정 의원이 "그랜드 바겐은 포괄적 해법과 동일하다, 포괄적 해법이 원샷 딜이냐"고 재차 물었지만 유 장관은 이번에도 "그런 말은 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원샷 딜'은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러나 유 장관은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말로 빠져나갔다.

그랜드 바겐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당 의원들도 의심을 품고 질의를 이어나갔다.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인천 남구을)은 "미 국무부 대변인이 그랜드 바겐에 대해 '그의 정책'이고 '그의 연설'이라고 했다"며 "주변국들과 상의하지 않고 왜 이런 제안을 했느냐"고 따졌다. 이에 유 장관이 "스타인버그 부장관이 (한국에 와서) 말한 것을 참고해 달라"고 넘어가려 했으나, 윤 의원은 "스타인버그가 말한 것은 북핵문제 해결해야 한다는 데 한미간 이견이 없다는 것이지 실현방법의 차이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고 다그쳤다.

윤 의원은 유 장관이 미국의 '패키지 딜'과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의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고 답변했을 때도 "내가 볼 때 미국은 절대 여기에 동의 안했다"며 "미국이 생각하는 인권 문제, 미사일 문제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안전보장과 국제지원 해주겠다는 제안은 북한에 전혀 새롭고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다"라며 "그랜드 바겐은 관련국들과 더 협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익은 대외정책'을 '불쑥 제안'한 것에 대한 우려가 대세

중도개혁 성향의 같은당 권영세 의원(서울 영등포을)과 남경필 의원(수원 팔달)도 그랜드 바겐의 실효성과 문제점을 지적했다.

권 의원은 새로운 정책 환경의 변화가 없는데도 그랜드 바겐이라는 대북정책을 미국에 가서 발표한 이유와, 외교부가 이 정책 입안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에 대해 미심쩍은 눈으로 질의했으나 유 장관은 "오바마 행정부 등장 이후 북한 핵실험이 일어난 것에 대한 반성의 취지에서 새로운 접근을 하자는 것"이라며 "(외교부는) 초기 구상부터 관여했다"고 답변했다.

남 의원은 "6월 한미 정상회담 때 오바마와 이 대통령이 북핵 정책을 설명하는 가운데 그게 바로 '그랜드 바겐'이라고 말해 이 명칭을 쓰게 된 것인데 실무선에서 (관련 정보를) 공유되지 못해 불협화음이 일어난 것"이라며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랜드 바겐이 6자회담 입장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유 장관은 "패키지 딜과 그랜드 바겐은 내용이 같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랜드 바겐에 대한 일부 여당 의원들의 적극적인 옹호도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그랜드 바겐은 북한에 더 이상 농락당하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잘된 정책이다"(이범관 의원)거나 "그랜드 바겐에 대한 대외 홍보가 부족한 탓이다"(정의화 의원)는 진단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설익은 대외정책'을 '불쑥 제안'한 것에 대한 우려가 대세였다. 이를테면 중도개혁 성향의 한나라당 진영 의원(서울 용산)은 이와 관련 "불필요한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그랜드 바겐 세일이 되면 안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보수성향의 윤상현 의원조차도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고 뼈 있는 지적을 했다. 그랜드 바겐은 MB의 강박관념이 낳은 것이라는 추론이다. 역시 보수성향의 정진석 의원(비례대표)도 "이 대통령이 미국 가서 뉴욕타임스와 한 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고도 그랜드 바겐에 대해 혹평을 받았다며 왜 이런 외교적 기회의 망실(亡失)이 일어났냐"고 질타했다.

결국 그랜드 바겐은 청와대와 외교부의 해명과 달리 한미간은 물론 정부여당 내에서도 조율되지 않은 '불쑥 제안'이었음이 이번 국감을 통해서도 드러난 셈이다. 그랜드 바겐에 대한 유권해석(?)의 대미는 외교통상부장관 출신의 민주당 송민순 의원(비례대표)이 장식했다.

송 의원이 "그랜드 바겐이 포괄적 패키지 딜과 같은 것이냐"고 묻자 유 장관은 "그랜드 바겐은 5월부터 시작해 진화돼 왔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송 의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러면 (그랜드 바겐과 패키지 딜) 둘 중에 하나는 내려라. 그래야 혼선이 없다. 그런 말을 갖고 논란을 거듭하면 한미 간에도 안 좋다. 둘을 합치고 하나는 내려라."
#국정감사 #그랜드 바겐 #원샷 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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