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숙소를 왜 마을 한복판에 지어요?

[가나, 교육원조사업 이야기 11] 콰후노우쓰 군 11개 학교 사업부지 인수인계

등록 2009.10.06 10:59수정 2009.10.0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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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람 플레인스 군 11개 학교 사업부지 인수인계를 마치고 다음 사업장인 콰후노우쓰 군으로 향했다. 아프람 플레인스로 가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배를 타고 가는 길 밖에 없다. 지도상으로 보면 분명, 육지에 속하는데 이 지역과 연결된 육로가 없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볼타 호수 황혼녘, 볼타호수의 화폭을 채운 조각배 하나

볼타 호수 황혼녘, 볼타호수의 화폭을 채운 조각배 하나 ⓒ 차동자


볼타호수 자전거, 아이들 그리고 고목, 이곳은 한 때 뭍이었습니다.

볼타호수 자전거, 아이들 그리고 고목, 이곳은 한 때 뭍이었습니다. ⓒ 차동자


은빛 비늘을 게으르게 움직이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봍타호수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사실 가슴 아픈 이주의 이야기가 있다.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의 독립영웅 콰미 은크루마가 초대 대통령으로 재직 시절 야심차게 벌인 사업이 바로 볼타강 하구 아코솜보 댐 건설사업이었다. 호주 기술자의 제안으로 시작하였다는 볼타호수는 원래는 볼타 강이었으나, 아코솜보라는 대규모 댐을 건설하고나서 이곳은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로 바뀌었다.

현지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수만 년 넘게 뭍이었던 곳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별안간 고향을 등지고 갑작스런 이주를 해야 했다고 하는데, 정부로부터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해서 아닌 밤중에 날벼락같은 재앙을 겪은 주민도 많다고 한다. 교통,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을 그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있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 이주가 얼마나 큰 사회적 변화였는지, 캘리포니아 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는 볼타호수의 이주문제만 별도로 연구자를 파견하여 다루고 있을 정도이다.

콰후노우쓰 군을 이렇게 배를 타고 가야만 하는 것도 바로 그 시절부터이다. 수심이 깊지가 않은지 곳곳에 그 때 침수로 인한 고목들이 여전히 지금까지 뼈를 앙상히 드러낸 채, '내가 여기 있었노라'고 힘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슬픔도 기쁨도, 결국 모두 지나가버린다. 이건 가장 불안하지만 가장 위로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볼타 강은 볼타 호수로 변하고, 지금은 호수 위, 작은 조각배에서 그물을 던지는 어부 가족들의 여유로운 풍경만이 화폭을 채우고 있다.

볼타호수 호수 위에선 어부 일가족이 조각배에 의지한 채 고기를 잡습니다.

볼타호수 호수 위에선 어부 일가족이 조각배에 의지한 채 고기를 잡습니다. ⓒ 차동자


호수를 건너고 하룻밤을 묵었다. 우리가 탄 배는 여기서는 판툰(거룻배)이라고 부르는데 차까지 운송이 가능할 정도로 꽤 크다. 배 한편으로 부두를 계속 오가며 사람과 짐들을 실어나른다. 건축업체와 이른 아침에 사업부지에서 만나기로 하여 학교로 향했다. 마침 군수, 교육청장 일행이 출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 사업현장에 방문하는 데 오늘 일정을 모두 할애했다고 한다.


11개 학교건축현장 중 몇 개는 도로가 물에 잠기었고, 또 3개는 역시 육로가 없어 다시 작은 배를 타고 5시간을 가야 한다. 조각배 꼬리에 작은 모터를 설치한 채 달리는 거라, 꽤 속도가 나가는데 운항 중 그물에 걸려 전복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고 하여 구명조끼를 착용하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폭우가 쏟아질 예정이라 하니 사업부지 인수인계용 방문을 취소하고 대신 지역주민 족장과 원로들을 불러서 면담을 갖기로 하고, 우선 방문이 가능한 학교부터 하나씩 부지인수인계를 하기로 했다.

지역주민 면담 학교사업 부지 선정을 위해 부족장 및 지역주민들과 면담을 실시하였습니다.

지역주민 면담 학교사업 부지 선정을 위해 부족장 및 지역주민들과 면담을 실시하였습니다. ⓒ 차동자


군수와 교육청장 및 주요 간부들의 차량들이 먼저 앞서서 길을 안내하고 그를 따라서 건축업체 대표 및 사장의 차량, 우리 월드비전 일행의 차량이 줄지어 시골길을 달리는데 뒤에서 보고 있으니 자동차 랠리를 보는 듯 했다. 주민들이 이야기하기를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이 때, 바로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라고 한다.


올 초 겨우 만여 표의 차이로 기존 집권당을 누르고 정권교체를 이룩한 존 아타 밀스 정부는 특별히 젊은 인재들을 많이 고용했다. 콰후노우쓰 군수는 언뜻 보아도 내 나이 정도로 보이는데, 지난 해 사업 준비를 위해 몇 차 방문하면서 이미 친숙한 사이이다. 군수와 주요 간부 일행이 직접 학교 현장을 찾아가 사업부지를 하나하나 따져보고 주민들을 만나는 모습을 보며, 젊음과 열정 그리고 그의 야망을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 생활 몇 개월 째 지나며 내가 가장 발견하고 싶어 했던 것이 바로 이 열정이었는데, 이 군수를 통해서 그 일부를 찾을 수 있었다. 내겐 아주 값진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사업부지 인수인계 군수, 교육청장 일행, 건축 업체 대표와 사장, 건축엔지니어, 주요 공무원 및 주민대표들이 모두 모여 학교건축 사업부지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업부지 인수인계 군수, 교육청장 일행, 건축 업체 대표와 사장, 건축엔지니어, 주요 공무원 및 주민대표들이 모두 모여 학교건축 사업부지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차동자


먼저 인접한 두 학교인, 콰시판테와 아샤난소 학교를 찾아갔다. 여기에는 교사숙소를 각각  여섯 가구씩 짓는다. 침실과 거실, 주방이 딸린 아주 평범한 숙소인데 주민들은 마을에 대단한 시설이 들어선다고 벌써부터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

숙소가 지어지기를 원하는 곳이 학교에서 한 300미터는 떨어져 있는 큰 길 어귀라 궁금한 마음에 물음을 던졌다.

"학교 앞마당에 지을 수도 있을 텐데, 걸어서 골목길을 지나야하는데 너무 멀지 않나요? 그리고 바로 앞은 시장이에요. 시끄럽지 않을까요?"

"마을 주민들은 이런 좋은 시설을 마을 가장 중심가에 짓고 싶어 해요. 마을이 발전한다는 것을 안팎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많지요. 그리고 시장도 바로 옆에 있어서 밤에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기거할 수 있지요. 학교 안뜰은 조금 외져서 오히려 기거하는 데에는 불편해요."

교사숙소 부지 마을 주민들이 미리 사업부지에서 풀베기를 진행하였습니다.

교사숙소 부지 마을 주민들이 미리 사업부지에서 풀베기를 진행하였습니다. ⓒ 차동자


마을 주민들은 이미 교사숙소가 지어질 장소를 마련하여 풀베기를 마치고 부지 다듬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가나 역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만 몰리고 있다. 보따리 하나만 달랑 맨 채 무작정 도시로 가고 보자는 대책 없는 이주도 있지만, 교사들 역시 유능한 인재일수록 도시로 몰려든다 하니 시골지역은 도시진입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이 주로 남아있는 곳이 되고 말았다. 이마저도 다시 도시로 나갈 기회를 엿보면서 세월을 보낸다고 하니, 교육의 질에 있어서의 도농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업에 학교 건축과 함께 교사숙소를 건축하는 것도 바로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농촌지역 발령을 꺼려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주요하게는 마땅한 숙소가 없기 때문이다. 농촌 밖의 세상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미 교육대학에 재학하면서 훌륭한 거주 시설을 갖춘 학교들을 많이 보아왔을 터라, 이들이 가급적 쾌적하고 안전한 숙소가 있는 학교에 발령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누가 무어라 할 수 있을까?

이번에 KOICA와 월드비전 협력사업으로 새로 짓는 교사숙소는 3가구 기준 8개동이다. 그러니까 24가구가 살 수 있는 숙소가 완공되면, 적어도 24명의 교사와 그 교사의 가족이 새 집에서 안전하게 기거할 수 있게 된다. 1가구 당 6인으로 생각하면 100명이 넘는 교사 일가족이 혜택을 받게 된다. 교사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그것은 학생들에게 또 바로 영향을 미칠 것이고 학생들이 더 질 높은 수업을 받게 되면, 학업성적이 좋아지고 훌륭한 인재들이 배출될 것이며 그들은 부족과 마을의 변화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의 고리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데 우리가 조금 더 그 발전의 사다리를 지지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가득하다.

교사숙소 부지인수인계를 마치고 학교로 갔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다 말고 오랜만에 보는 아브로니(백인)에게 다가오더니만 함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어디를 가든지 아이들은 경계를 풀어헤친 채 떠들썩하게 이방인을 환대한다.

환영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간단한 구호를 외치자 쉬지 않고 따라합니다.

환영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간단한 구호를 외치자 쉬지 않고 따라합니다. ⓒ 차동자


아이들은 급식으로 나오는 점심을 먹고 있었다. 콰후노우쓰에는 200개가 넘는 학교(유치원, 초등, 중등학교)가 있는데 그 중에서 이렇게 급식이 나오는 학교가 10개도 채 안 된다. 급식을 실시하는 몇 개 학교마저도 이제 겨우 시범사업으로 진행해보는 것이다. 삶은 콩에 옥수수와 플랜틴(바나나 종류로 매우 크고 굵음) 가루를 넣은 게 전부이긴 하지만, 끼니를 못 채우고 허기진 배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게는 꽤 괜찮은 영양식으로 보인다. 

점심시간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점심시간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 차동자


급식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급식입니다.

급식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급식입니다. ⓒ 차동자


"I Love Ghana!" "Beautiful Ghana!" "짝짝짝 짝짝!"

간단히 구호를 만들어서 가르쳐주는데, 별 것 아닌 이 응원구호에 아이들은 신나서 몇 번이고 따라한다. 놀이문화가 부족한 것인지, 처음 보는 아브로니의 장난에 신이 난 것인지 아이들은 급식 그릇을 손에 쥔 채 꽁무니를 졸졸 따라오며 매우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서 자라서 너희 부족과 너희 나라 그리고 너희 아프리카 대륙을 스스로 튼튼히 일으켜 세워가는 훌륭한 사람들이 되어라.'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나의 기원이 결코 부질없는 것이 아님을 유난히 까만 아이들의 눈동자가 대답해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009년 3월 ~ 2011년 2월까지 KOICA-월드비전 협력사업으로, 서아프리카 가나에서 교육원조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7월 말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노트북 및 관련자료 분실사건으로 연재 지연되었음에 양해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2009년 3월 ~ 2011년 2월까지 KOICA-월드비전 협력사업으로, 서아프리카 가나에서 교육원조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7월 말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노트북 및 관련자료 분실사건으로 연재 지연되었음에 양해바랍니다.
#가나 #교육원조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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