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건축사업 부지 인수인계를 진행하며

[서아프리카 가나, 교육원조사업 이야기 10]

등록 2009.08.13 08:43수정 2009.08.1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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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관리자로 가나에 파견 오기 전, 주한 가나 (대리) 대사 미스터 아지망을 만난 적이 몇 차례 있다. 대사관에서 만난 일 이외에 경기도 소재 작은 시의 한 초등학교에 함께 방문하였는데, 당시 지역 교육청에서 가나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1억이 훨씬 넘는 자금을 모은 장본인들은 다름 아닌 초등학교 학생들이었는데, 아이들은 월드비전에서 나누어준 작은 저금통에 동전들을 빽빽하게 모았고 그날은 아이들이 보낸 돈으로, 가나의 친구들을 위한 학교가 지어지고 있음을 아지망 대사와 함께 자세히 소개하는 날이었다.

5층이 넘는 학교 건물, 엘리베이터가 있고 음악실과 과학실 등 각종 특별활동실과 작은 식물원까지 딸려 있는 아주 예쁜 학교였다. 수도에서 벗어나, 한번도 그가 들어본 적 없었음직한 작은 도시에 있는 그 초등학교의 우수한 시설을 보며 그는 애써 놀라는 표정을 감추려고 했다. 시설 순회를 마치고 행사를 위해 강당에 들어섰을 때, 화려한 음향 및 조명시설과 영상 시스템을 보자 그는 끝내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다.

"우리는 풍부한 자원을 가졌지만 가난하고, 여러분들은 아무런 자원도 없으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가졌군요. 여러분들의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은 한국 초등학생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던지는 그 대사의 얼굴에서 부러움이 아닌 슬픔이 스쳐가는 것을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같은 태양과 같은 달을 밤낮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구의 이곳저곳에 사는 아이들이 매한가지이지만, 이 아이들 각자가 누리는 지구의 자원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정도를 넘어선 풍요와 정도를 넘어선 결핍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이 '동시대의 비동시성' 앞에 분노하는 것조차 부질없는 짓일까?

학교 건축을 위해 건축업체에 건축사업부지 인수인계를 진행하며 때로는 믿을 수 없는, 믿기조차 싫은 학교 시설들을 보면서 작년, 아지망 대사와의 그 일화가 계속 떠올랐다.

장관과의 면담을 마치는 즉시 나는 네 시간 남짓 차를 타고 판테아크와 군으로 와 사업부지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볼타호수를 건너 콰후노우쓰 군에 학교가 11개 지어지고, 여기 판테아크와 군에 학교 11개가 지어진다. 건축업체와 계약도 끝났고, 자꾸 곁다리를 거는 이런 저런 공무원들의 시비도 다 사라졌으니 이제부터는 사업에 가속을 더해야 한다.


우선 11개의 학교 중 9개 학교만 방문할 수 있었다. 멀리 있는 학교부터 먼저 방문하다보니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학교는 다음번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판테아크와 군 중심가인 베고로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트로트로가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서인지, 일부 구간은 잘 다져진 곳도 있었다. 나는 수첩과 핸드폰을 꺼내들고 차량 뒷좌석에 앉았다. 베고로 마을에서의 거리와 소요 시간들을 측정해야 할 것 같았다.

a 즉석 지도 차를 타고 학교를 방문하는 동안 주변 지형과 이동시간 등을 기록했습니다.

즉석 지도 차를 타고 학교를 방문하는 동안 주변 지형과 이동시간 등을 기록했습니다. ⓒ 차승만


판테아크와 군청에서 군청 소속 엔지니어인 앨버트를 만나 건축업체 대표와 사장과 동석을 시키고 길 안내를 부탁했다. 군청 소속 엔지니어인 앨버트는 본 사업을 위해 일정 부분 수고료(건축감리료)를 주어 함께 일하게 된다.


이렇게 건축사업부지 인수인계를 한 날부터 정확히 건축공사 기간을 계수하게 된다. 이번 사업에 학교건축 공사기간을 9개월로 계획하여 계약을 맺었으니 이번에 보는 9개 학교는 바로 오늘부터 9개월 안에 모든 건축공사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야 하는 것이다.

판테아크와 군을 비포장도로를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돌며 건축대상 학교를 하나씩 방문했다. 열악한 학교를 처음 본 것도 아니고, 이번 대상학교 중 일부는 익히 여러 본 보아온 터라 무심하게 될 만도 한데, 다시 보아도 학교상태가 정말이지 너무한다 싶다. 마침 수업 중인 학교가 많았는데, 이런 시설의 학교에 부지런히 등교해서 수업을 들어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맙고 기특하게만 느껴졌다.

흙벽이라도 그나마 벽이 있는 학교는 다행, 아예 벽이 없고 아주 가녀린 나무 가지에 의지한 채 지붕만 덩그러니 있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교실 사이 격벽도 없다시피 했다. 우기에 비가 많이 오면 바로 수업 중단으로 이어진다.

싸리울타리가 마치 닭이나 염소를 가두어 키우는 곳으로 착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유치원을 만났을 때는 한숨만 밀려나왔다. 수도 아크라에서 서너시간 떨어진 곳이 이 정도라니, 볼타호수를 배를 타고 열 두 시간을 건너야 한다는 북쪽 시골의 사정은 어떠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숨만 쉬며 절망스런 말만 늘어놓을 수는 없다. 한 삽 한 삽 터를 다지고 기둥을 올리고 벽돌을 쌓듯이, 도무지 답이 없을 것 같은 이 시골의 교육환경도 하나씩 오늘 주어진 걸음을 걷다보면 언젠가 이곳에도 밝고 쾌적하고 질 높은 교육환경으로 바뀌어있지 않을까?  다음은 내가 방문한 동선을 따라 신축 대상학교 혹은 부지의 현재 모습을 담아본다.

a 건축사업부지 인수인계 판테아크와 군을 반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사업부지 인수인계를 했습니다.

건축사업부지 인수인계 판테아크와 군을 반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사업부지 인수인계를 했습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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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로우어 보쏨츠웨 초등학교 가녀린 나무기둥이 겨우 지붕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로우어 보쏨츠웨 초등학교 가녀린 나무기둥이 겨우 지붕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 차승만


a 아다코페 초등학교 역시 벽이 없기가 매한가지입니다.

아다코페 초등학교 역시 벽이 없기가 매한가지입니다. ⓒ 차승만


a 아다코페 초등학교 교실 사이 구획이 너무 엉성하여 수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아다코페 초등학교 교실 사이 구획이 너무 엉성하여 수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 차승만


a 아다코페 가는 길 아다코페 가는 길에 길을 잃었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숲 터널을 만났습니다.

아다코페 가는 길 아다코페 가는 길에 길을 잃었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숲 터널을 만났습니다. ⓒ 차승만


a 아모타레 중학교 그나마 격벽이 있는 몇 안 되는 학교 중 하나입니다

아모타레 중학교 그나마 격벽이 있는 몇 안 되는 학교 중 하나입니다 ⓒ 차승만


a 아모타레 중학교 학교 주변은 참 아름다운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모타레 중학교 학교 주변은 참 아름다운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 차승만


a 아도크롬 유치원 저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던 아도크롬 유치원입니다.

아도크롬 유치원 저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던 아도크롬 유치원입니다. ⓒ 차승만


a 아시레부소 초등학교 튼튼하게 잘 지어진 이 학교 건물 뒤로 교사숙소를 지을 것입니다.

아시레부소 초등학교 튼튼하게 잘 지어진 이 학교 건물 뒤로 교사숙소를 지을 것입니다. ⓒ 차승만


a 미아소크로보 중학교 역시 벽이 없으며, 교실 간 격벽조차 없습니다.

미아소크로보 중학교 역시 벽이 없으며, 교실 간 격벽조차 없습니다. ⓒ 차승만


a 나마 구세군 유치원 왼쪽으로, 지붕만 있는 건물이 유치원입니다.

나마 구세군 유치원 왼쪽으로, 지붕만 있는 건물이 유치원입니다. ⓒ 차승만

덧붙이는 글 | 2009년 7월 2일 ~ 3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2009년 7월 2일 ~ 3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가나 #건축사업부지 인수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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